5x10 규칙 따라 격자무늬 적용하면 투명창 충돌사고가 현저히 줄어
새들은 세로 5cm, 가로 10cm 미만 공간은 통과 시도를 하지 않아
도심지 유리 건물 많아 조류 충돌 사망 늘어나면 개체수 감소 우려돼
“저는 그냥 지나가고 있는데 뭔가에 부딪혔어요! 앞은 분명히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었는데 말이죠. 저는 그 자리에서 머리에 피를 흘리면서 기절했어요. 제 주변에도 허공에 머리를 박고 죽은 친구들이 많이 있어요. 뭔가 투명한 벽이라도 있는 걸까요? 우리가 지나다니는 길에 왜 투명한 벽을 만들었을까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느낌이었어요. 너무 무서워요. 언제 어디서 투명한 벽을 만날지 모르니까요.”
이것은 유리에 부딪힌 새의 이야기다. 환경부에 따르면 투명창에 충돌하여 폐사하는 새가 연간 800만 마리에 달하고 있다. 새들에겐 생활 속 공간인 하늘에서 보이지 않는 장애물을 맞닥뜨려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는 셈이다.
새들은 왜 유리창을 보지 못할까?
어떤 조건 하에서는 건물의 투명한 유리조차도 거울처럼 보일 수 있으며 하늘, 구름, 혹은 인접한 서식지가 유리에 반사돼 새들에게는 마치 실제같이 보인다. 유리에 반사된 자연환경은 새들에게 아주 위험하다. 새는 반사되는 유리에 가까이 날거나, 유리를 통과해서 날아가려고 시도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유리는 새들에게 큰 위협이 된다.
새들이 가진 시각적인 구조도 유리 충돌에 한몫을 하고 있다. 사람이나 많은 육식 동물은 전면에 눈이 위치해있고 좋은 거리 감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맹금류를 제외한 대부분의 새들은 눈이 머리 양 옆에 붙어 있어 전면에서 거리감을 느끼기 어렵고 시야는 앞과 옆, 뒤쪽을 향한다. 이는 자신을 공격하려는 포식자를 감시하기 위함이다. 새들은 날아갈 때 스스로의 속도를 자신의 옆을 지나는 물체를 보고 인식하기 때문에 날고 있을 때 시선이 꼭 앞으로만 향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유리창에 충돌할 위험이 더욱 커지는 것이다.
새들이 중력을 이기고 날아가기 위해서는 평균 시속 36~72km 정도의 빠른 속도가 필요한데 이때 유리창과 충돌하게 되면 그 충격이 매우 커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다. 소형 조류의 두개골은 계란을 깰 수 있는 정도의 충격만으로도 깨지기 때문에 유리창에 충돌한 새들은 대부분 충격에 의한 뇌 손상으로 죽음에 이르게 된다. 설령 새가 목숨을 부지했더라도 부리가 부러지거나 깃털이 빠지고 눈 손상을 입는 등 큰 부상을 입어 더 이상 자연에서 살아가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새의 유리창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가장 확실한 방법은 건물을 지을 때 유리 사용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유리를 사용하고 싶다면 패턴, 불투명도, 색깔 등을 활용해 조류가 통과를 시도하지 않도록 설계해야 한다. 실제로 불투명 유리, 색유리, 유리블록 등의 활용은 조류 충돌 사고를 막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자외선을 조류들은 볼 수 있으므로 자외선 반사패턴이 들어간 특수 유리를 사용해도 효과가 있다.
유리창 바깥 면에 10cm 간격으로 로프나 밧줄을 늘어뜨려 조류가 유리창으로 접근하는 것을 막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이 방법은 아주 저렴하면서도 손쉽게 할 수 있고 효과도 좋다. 가정에서 적용할 때는 3mm 정도 굵기의 적당한 로프나 줄을 이용하고 수축이 발생하지 않는 줄을 사용해야 한다.
유리를 통해 식물이 보이면 새들이 자연환경으로 착각하고 날아올 가능성이 크다. 만약 유리창 안쪽이 조경 식물로 장식돼 있다면 다른 것으로 바꾸거나 블라인드, 커튼 등으로 가리는 것도 좋다.
5x10 규칙이란 것이 있다. 대부분의 조류는 높이가 5cm, 폭이 10cm 미만인 공간의 경우 그 사이를 통과해서 날아가려도 시도하지 않는다는 특성을 일컫는 말로 미국 조류보전협회를 통해 알려졌다. 5x10 규칙을 따라 무늬를 적용하면 조류의 투명창 충돌사고가 현저히 줄어든다고 한다. 국립생물자원관에 따르면 진한 회색, 오렌지색이 가장 효과적이고, 흰색이 효과가 덜하다고 한다.
새 충돌 방지를 위해서 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버드세이버라고 불리는 맹금류 스티커를 부착하는 일이다. 하지만 새들은 버드세이버를 천적이나 자연 물체라고 생각하지 않고 조금만 피해서 날아가도 되는 장애물 정도로만 인식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버드세이버는 큰 효과가 없다고 한다.
대학생 홍아영(22, 경남 양산시) 씨는 얼마 전 무인 아이스크림 판매점을 갔다가 깜짝 놀랐다. 출입문을 통해 우연히 들어온 참새 한 마리가 나가는 길을 찾지 못하고 매장 안에서 방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가기 위해 유리창으로 돌진했다가 머리를 세게 박고 기절한 참새는 한참 후에나 정신을 차렸다. 홍 씨는 “새가 유리창에 머리를 박고 기절한 것을 보고 충격받았다”며 “내가 내보내줬기에 망정이지 아무도 없었더라면 새는 또다시 나갈 길을 못 찾고 헤맸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조류들이 자연재해나 포식자에 의해서 사라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유리창 충돌은 살아남아 번식할 수 있는, 강하고 건강한 조류까지 죽인다. 생태계 내에서 어린 동물이 번식 가능한 성체까지 생존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번식 성체가 무의미하게 폐사한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개체 수가 영향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서둘러 대책을 세우지 않을 경우 조류 개체 수는 심각하게 줄어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