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잡, 쓰리잡...본업 외에 부업 시도하는 N잡러 늘어
젊은층들 "돈 있어야 산다" 인식... 소액 투자 플랫폼도 등장
“머니 파이프라인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여러 개 일수록 좋고 굵을수록 좋다.” 이런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파이프라인은 원래 원유의 수송을 위해 만들어진 송유관이다. 즉 원유를 돈에, 파이프라인을 돈이 들어오는 창구에 비유해 돈이 들어올 수 있는 라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세대를 불문한 사람들이 파이프라인을 만들어 월급 이외의 수익을 쫓고 있다. 이렇게 돈을 쫓는 현상을 ‘머니 러시’라고 한다. 머니러시는 과거 미국 서부에서 금광이 발견되자 광부들이 금을 캐기 위해 몰려들었던 현상인 ‘골드러시’에서 파생돼 나온 단어다. 머니러시는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의 전망을 담아낸 책 ‘트렌드 코리아 2022’의 키워드 중 하나로 소개됐다.
사실 돈을 쫓는 것은 새로운 현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과거에도 가난한 집안이든 부자 집안이든 돈을 더 벌기 위해 애썼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전미영 연구위원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요즘 소비자들의 새로운 특징은 N잡, 투잡, 쓰리잡 등의 직업 형태를 만들어 내고 각종 투자활동도 열심히 한다”며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많이 벌 것인가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투잡, 쓰리잡...N잡러의 등장
월급 이외의 수익을 만들고자 하는 ‘N잡러’는 증가하는 추세다. N잡러는 2개 이상의 복수를 뜻하는 ‘N’과 직업을 뜻하는 ‘job’, 사람이라는 뜻의 ‘러(-er)’가 합쳐진 신조어다. 본업 외에 여러 개의 직업을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 취업 플랫폼 잡코리아가 직장인 93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38.5%가 ‘현재 본업 외에 알바나 부업 등의 N잡을 한다'고 응답했다.
대학교 휴학생 이하윤(22, 부산시 사하구) 씨는 투(two)잡러다. 카페에서 정직원으로 일하면 또 다른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이 씨는 “본업 수입만으로는 내 집 마련은커녕 사고 싶은 것도 못 산다”며 “몸은 힘들어도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아야 미래가 안정적일 것 같다”고 말했다.
회사를 다니며 N잡을 준비하는 사람도 있다. 권지선(24, 서울시 광동구) 씨는 네이버 블로그로 월급 이외의 수익 창출을 기대하고 있다. 권 씨는 “개인 블로거도 블로그 관리를 제대로 한다면 광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며 “방문자 수 유입을 위해 꾸준히 포스팅 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트코인, 예술작품, 음악 저작권 등 투자 열풍
2021년은 투자의 해였다. 24시간 하루종일 코인 시세만 들여다보는 ‘코인좀비’, 코인으로 부자 된 사람을 말하는 ‘코인부자’, 한국의 암호화폐 시세가 외국보다 높은 것을 말하는 ‘김치 프리미엄’ 등 암호화폐와 관련된 신조어들이 나왔다. 코인 외에도 주식은 물론 미술품에 투자하는 플랫폼 ‘아트투게더’와 음악 저작권에 투자하는 ‘뮤직카우’, 문화콘텐츠에 투자하는 ‘펀더풀’ 등 MZ세대를 겨냥한 새로운 재테크 방식도 등장했다.
빛을 내서 투자하는 경향도 늘었다. 빚을 내서 주식에 투자(빚투)와 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영끌)하는 규모가 가파르게 상승했다. 6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5일 기준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23조 51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신용거래융자란 증권사가 고객의 보유 주식 및 현금 등을 담보로 잡고 일정 기간 주식 매수 자금일 빌려주는 대출이다. 2020년(1월 2일 기준) 9조 2000억 원 이후 2021년(1월 4일 기준) 19조 3500억 원까지 1년 새 10조 원 가까이 불어나더니 2022년에는 4조 가까이 늘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등장한 소비트렌드 ‘보복소비’
이런 머니러시가 발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비대면 사회로 SNS는 나를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 됐다. 멀리 있어도 나와 관심사가 같다면 얼마든지 친구가 될 수 있는 SNS의 순기능도 있지만 부작용도 있다. 바로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는 ‘포모증후군(FOMO Syndrome)’이다.
각종 SNS에서 비싼 물품을 구매하고, 좋은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저기에 동참하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은 생각과 함께 상실감, 박탈감을 호소하면서 동시에 더 많은 수익을 벌어야겠다는 강박관념을 주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보복소비를 가져와 돈을 벌게끔 하고 머니러시로 이어진다.
김예지(22, 부산시 북구) 씨는 “금수저들의 돈 자랑을 보면 나도 많은 돈을 벌고 싶다고 가끔 생각한다”며 “SNS에서 유명한 건 나도 따라 자랑하기도 한다. SNS를 즐기지 못 하고 보여주기 위해 하는 것 같아 한때는 삭제하기도 했었다”고 복잡한 심경을 털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