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식사량 차등에 "여성성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 탓"...업주는 "음식쓰레기 때문" 난감 / 정인혜 기자
일부 식당에서 손님의 성별에 따라 제공하는 밥의 양에 차이를 두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같은 돈을 받고도 남녀에 따라 제공하는 양이 다르다는 점에서 성차별 논란으로 비화할 조짐도 보인다.
직장인 이유정(28, 충남 천안시) 씨는 얼마 전 점심 시간에 식당을 찾았다가 불쾌한 일을 겪었다. 밥이 수북이 쌓인 남자 동료의 밥 공기에 비해 자신의 밥 공기에 담긴 밥이 눈에 띄게 적었던 것. 식당 종업원을 불러 따지자, “손님은 여자이잖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같은 돈을 주고도 차별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이 씨는 종업원에게 밥을 더 달라고 요구했다. 떨떠름한 표정의 종업원이 밥을 새로 가져다주긴 했지만, 이 씨는 그 식당을 다시는 찾지 않을 생각이다. 이 씨는 “같은 돈을 내면서 왜 차별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여자는 무조건 적게 먹으라고 강요하는 것 같아 불쾌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같은 주장은 실험 카메라로도 증명됐다. 지난 16일 MBN <황금알>이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제작진이 찾은 대부분의 식당에서는 여성들에겐 남성보다 적은 양의 식사를 제공하고 있었다. 방송이 끝난 직후 해당 프로그램을 소개한 기사 댓글란에는 “나도 저런 경험이 있다”는 여성 네티즌들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식당의 이같은 처사에는 여성은 적게 먹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밑바탕에 깔렸기 때문이란게 네티즌들의 반응이다. 실제로 식사량이 많은 여성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편견이 만연한 것이 사실. 지난해 캐나다 맥마스터대의 심리학 연구팀은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여성들은 본인의 양보다 항상 적게 먹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식사량으로 남녀를 구분하는 것은 또다른 성차별이란 주장이 나오고 있다. 대학생 이선경(26, 부산시 영도구) 씨는 군인인 남동생보다 자신의 식사량이 훨씬 많다며 식사량은 개인별로 얼마든 다를 수 있는데도 미리부터 남녀별로 제공하는 밥의 양에 차이를 두는 건 성차별이라고 주장한다. 이 씨는 “남자와 여자의 밥을 아주 당연한 듯 달리 주는 식당이 많은데, 말도 안 되는 여성성을 강요받는 것 같아 굉장히 불쾌하다”며 “이런 사소한 것에서부터 남녀차별을 받는 게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이같은 이유로 일부러 프랜차이즈 식당을 찾는다는 여성도 늘고 있다. 일반 식당에서 식사량으로 차별을 당할 바에 메뉴가 정량으로 나오는 프랜차이즈 식당이 편하다는 의견이다. 직장인 최정민(30, 부산시 진구) 씨는 “똑같은 돈 내고 더 달라고 말하기도 싫고, 더 달라고 요구했을 때 이상한 여자로 취급하는 식당은 더 싫다”며 “속 편하게 프랜차이즈 식당을 찾아다니는 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성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반박하는 측도 있다. 남성과 비교하면 일반적으로 여성이 훨씬 음식을 많이 남기기 때문에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는 것. 직장가에서 백반 식당을 운영하는 김순영(62) 씨는 “여자 손님들은 대부분 밥을 남겨서 많이 줄 수가 없다”며 “남기면 그게 다 쓰레긴데 어떡하냐”라고 되물었다.
식당들의 식사량 차별을 법적·행정적으로 제지할 방법은 아직 없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이같은 유형의 차별에 대해선 직접적인 시정조치나 일괄적 제재를 가하기가 어렵다”며 “업주 측에서 고객들의 의견을 수렴해 시정을 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