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박모(27) 씨는 요즘 남자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 마냥 행복하지 않다. 남자 친구에게서 ‘데이트 통장’을 이용하자는 이야기를 듣고부터다. 일정 금액을 같은 통장에 넣어 놓고 데이트할 때 쓰자는 것. 사실상 데이트 비용을 ‘반반씩’ 부담하자는 의미였다. 박 씨는 “남자 친구가 경제적으로 부담을 느꼈나 하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계산적인 것 같아 기분이 이상했다”고 말했다. 박 씨는 데이트 통장에 대한 동의를 유보한 상태다.
회사원 정모(28) 씨는 여자 친구를 만나는 게 부담스럽다. 한 번 데이트할 때마다 몇 만 원씩 지출해야 하는 경제적인 부담이 그 이유. 정 씨는 “여섯 살 연하인 여자 친구에게 데이트 비용을 내라고 하는 것도 그렇고, 쥐꼬리 월급에 매번 몇만 원씩 지출하는 것도 부담스럽다”며 “데이트 통장을 만들고는 싶은데 속 좁은 남자처럼 보일까 봐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데이트 비용으로 고민하거나 갈등을 겪는 젊은 커플이 늘고 있다. ‘데이트 비용’이란 주제는 모든 온라인 커뮤니티의 공통적인 관심사다. 구글 검색창에 ‘데이트 비용’을 검색하면, "남자 친구가 더치페이 하자는 데 사랑이 식은 것 아닌가요," "여자 친구가 데이트할 때 돈을 안 써요" 등의 고민 상담이 줄을 잇는다. 나이 차와 월급, 직장인과 학생 등 다양한 관계에 따른 데이트 비용을 어떻게 부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실제 젊은 연인들은 데이트 비용 문제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응답자의 71.1%는 “데이트 비용 문제 때문에 연인과 헤어질 수도 있다”고 대답했다. 10명 중 7명꼴인 셈이다. 특히 남성(63%)보다는 여성(78%)이 데이트 비용에 민감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전체 응답자의 73%는 “연애할 때 데이트 비용이 스트레스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데 동의했다.
남녀 모두 더치페이의 필요성에는 공감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결혼정보업체 가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데이트 비용’을 주제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1%가 “남녀 절반씩 똑같이 내야한다”고 대답했다. “성별에 상관없이 여유 있는 사람이 조금 더 내야한다”는 20%, “남성이 여성보다 더 많이 내야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5%로 집계됐다. “남성이 모두 부담해야 한다”는 2%에 그쳤다.
하지만 현실에서 남녀가 같은 비율로 데이트 비용을 부담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더치페이 문화가 과거에 비해 많이 정착됐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사회에서는 남자가 조금 더 많이 내야 하는 부담감을 안고 있다. 대다수 네티즌은 보통 남자가 여자보다 연상인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네이버 아이디 tfgse** 씨는 “보통 연인 관계에서는 남자가 여자보다 연상인 경우가 많다. 연장자가 경제적인 부담을 더 많이 지는 한국문화 특성상 데이트에서도 자연스럽게 남자가 더 많이 내게 되는 것 아니겠느나”며 “일반적으로 남자가 연봉도 더 높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데이트 비용에 대한 경제적인 부담을 일방적으로 남성에게 지우는 것은 연인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현대사회문제연구소 김준호 연구원은 "'누가 더 많이 내야 한다'고 한 사람에게 일방적인 경제적 부담을 지우기 보다는, 연인 간 상황에 맞게 정하는 게 가장 좋다"며 "상대를 배려하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