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대를 사지 못하는 저소득층 소녀들이 깔창이나 휴지 등을 생리대로 쓴다는 사연이 널리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가슴 아파했던 게 지난해의 일. 이런 뉴스의 영향으로 재사용 가능한 여성용품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 빨아서 다시 쓰는 할면 생리대, 체내 삽입형 생리대인 탐폰과 월경컵 등이 주목을 받았다.
그 중 체내 삽입이 가능하면서 반영구적으로 사용 가능한 월경컵에 대한 관심이 특히 뜨거웠다(본지 2016년 7월 27일자 보도). 월경컵은 일회용 생리대나 면 생리대보다 착용감이 쾌적하면서도 탐폰의 치명적인 단점인 독성쇼크증후군이 없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월경컵이 생산되지 않아서 월경컵을 사기 위해서는 해외 직구를 통해야 한다. 하지만 해외 직구를 통해서 구입하는 월경컵은 사이즈를 정확하게 확인할 수 없고, 구매 후 반품하거나 환불 받으려면 절차가 복잡하다.
이러한 여성들의 불편함을 덜기 위해 월경컵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를 시작하려는 사람이 있다. 바로 저소득층 여성들의 여성용품을 지원하는 소셜 벤처 기업 이지앤모어 대표 안지혜(31) 씨다.
안 씨가 여성용품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자신의 돈으로 생리대를 구입하면서부터. 그 전에는 어머니가 매월 사다 줬기 때문에 생리대는 그의 큰 관심사가 아니었다. 2009년 독립하면서 처음 생리대를 구입해 봤다는 안 씨는 동네 마트를 갔다가 예상보다 비싼 가격에 놀랐다고. 비싼 가격이 부담스러웠던 그는 싼 제품을 사 썼다가 따갑고 불편해서 남은 걸 생리대를 다 버렸다. 안 씨는 “처음 구매했던 제품을 버린 이후로 여러 가지 생리대를 사서 써 보면서 가격 대비 나에게 잘 맞는 제품을 찾아보려고 노력했다”며 “당시에 여러 브랜드 제품을 사용하면서 여성용품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안지혜 대표는 2004년부터 5년 동안 대학 생활을 하면서 국토대장정, 8개월간의 해외 거주, 광고 대행사 인턴 경험 등 많은 활동들을 적극적으로 했다. 사회에 나와서도 다양한 회사 생활을 하고 싶었던 안 씨는 패션회사 홍보팀에서 외식업 프랜차이즈 사업기획 및 마케팅 부서로 이직하기도 했다. 그가 이처럼 다채로운 경험을 한 이유는 창업의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잦은 이직으로 부모님의 속을 썩이기도 했지만 그 때 배웠던 노하우들이 지금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했다.
안 씨가 운영하고 있는 이지앤모어는 소셜 벤처 기업이다. 소셜 벤처 기업이란 사회문제를 해결하거나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이다. 이지앤모어에서 구매하고 활동하는 소비자들을 ’모어‘라고 칭한다. 모어들이 여성용품을 구매하면 기부 포인트가 적립된다. 기부 포인트가 일정 수준 이상 모이면, 기부 포인트는 저소득층 여성들에게 기부된다. 현재 이지앤모어에서는 431명의 저소득층 소녀에게 2개월에 1번씩, 생리대 2개월분을 전달하고 있다.
좋은 취지로 시작한 회사지만 힘들었던 적도 있었다. 지난해 5월 저소득층 소녀들의 여성용품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자, 안 씨의 회사도 관심을 받게 되었다. 당시에는 대리점과 계약을 맺어서 생리대를 구입해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온라인 최저가에 비해 가격이 높은 것이 문제가 됐다. 이러한 가격 차이로 인해 “아이들 팔아서 장사한다”, “회계 장부를 공개하라” 등 온·오프라인에서 항의가 빗발쳤다. 안 대표는 “오해할만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해는 했지만, 이 때가 가장 심적으로 힘들었던 시기였던 것 같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안 대표는 가격에 대한 오해를 풀기 위해 생리대 본사와 빠르게 협상을 진행하여 가격을 낮췄다. 회사 운영을 투명하게 하기 위해 매월 적립 수량과 배송 수량을 소비자들과 함께 공유하기도 했다.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생리대가 전달될 때는 구매해준 고객들에게 1:1로 송장이 첨부된 문자메시지를 발송하고 있다. 안 대표는 “오해를 빨리 풀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다”며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그런 오해가 서비스를 안정화시키는 데 큰 원동력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지금 안 대표가 가장 공들이고 있는 프로젝트는 ’월경컵 프로젝트‘다. 안 대표가 직접 여성용품에 대해 공부하고 해외제품들을 알아보니, 해외에서는 70년 전에 개발이 되었고, 이미 30여 개가 넘는 브랜드가 있었다. 그는 월경컵을 직접 사용해 보고 난 후 월경컵을 국내에 알려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월경컵은 찝찝하거나 냄새가 나는 일회용 생리대의 단점이 없고 탐폰에 비해 위험성도 크게 낮았기 때문이다.
월경컵의 장점을 직접 체험한 안 대표는 국내에서 월경컵이 보편화되지 않은 이유를 알아봤다. 우리나라에선 월경컵이 의약외품으로 지정돼 있어 식약처에 허가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허가를 받은 제품이 없다. 그래서 처음 월경컵 제조를 시작하는 회사는 안전성 실험에 약 2억 원 가량의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월경컵 국내 출시가 계속 미뤄지고 있는 것.
해외에서 구입하는 월경컵은 해외 사용자 기준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국내 사용자는 크기가 맞지 않아 불편하거나, 해외 구매로 인한 제품 교환 및 반품에 대한 어려움들이 있다. 안 대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월경컵을 알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월경컵의 불편함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고, 그 결과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국내 첫 월경컵 허가를 위한 프로젝트를 계획하게 됐다.
안 대표는 월경컵 크라우드 펀딩의 성공 여부에 관계없이 계속 프로젝트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크라우드 펀딩이 실패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그의 생각. 크라우드 펀딩에 성공한다면 후원자들과의 온·오프라인 모임을 통해 개선 사항을 수집한 다음 5월 중순엔 허가를 위한 시제품을 개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독성 실험을 시작으로 안정성 검사, 임상실험 등 식약처에서 제시한 실험들이 내년 초에 모두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예상대로 진행된다면, 내년 6월 쯤 국내 첫 월경컵이 출시될 것으로 그는 전망하고 있다.
월경컵에 대한 안 대표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해외 직구를 통해서 월경컵을 사용해본 적 있는 사람들의 응원과 지지, 체내에 삽입해야 하는 월경컵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사람들의 호기심 등 두 부류로 나뉘어 있다. 안 대표는 ”월경컵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수집하고 공유해 많은 여성들에게 알리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앞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여성들이 응원하고 지지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안 대표의 꿈은 한국 여성들이 건강하게 월경을 처리할 수 있는 상품을 개발하는 것. 그는 “이런 상품들을 개발해서 발생한 수익으로 더욱 많은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생리용품을 지원하는 것이 목표”라며 “아이들도 자신이 선택한 상품으로 건강한 월경을 보낼 수 있는 날을 꿈꾼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