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 6개 프로젝트에 35억 지원....조선수리업 불황 여파 벗어나 '제2감천문화마을' 기대 / 박상민 기자
‘깡깡이 마을'을 아시나요?
부산 영도구 남항동에는 근대 조선 수리업의 메카였던 일명 ‘깡깡이 마을’이 있다. 이름만큼이나 생소한 이곳은 선박에 붙은 녹이나 조개류를 제거하기 위해 망치로 두드릴 때 나던 '깡깡' 소리를 본 따 깡깡이 마을로 불린다. 조선경기 불황과 인구 고령화로 날로 퇴락해 가던 이곳이 지금 문화마을로 변신하고 있다.
부산 중구와 영도구를 잇는 영도대교로 영도로 넘어가면, 시원한 바다 내음과 함께 색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인파로 붐비는 남포동과는 달리 영도대교 맞은편인 영도 경찰서 인근 마을은 다소 한적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영도 경찰서 담벼락을 쭉 따라 걷다 오른편에 들어서면 오래된 배들이 정박해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소형 선박들이 일렬로 접안돼 있는 부두와 그 인근에는 조선 수리공장이 빼곡히 들어 있다. 이곳이 바로 깡깡이 마을이다.
깡깡이 마을의 시작은 구한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옛 이름은 대풍포(待風浦). 바람에 대비하는 포구라는 뜻. 부산으로 건너왔던 일본 어민들이 어선을 수리하기에 적합한 곳으로 여겨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1887년 일본인 '다나카'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조선소를 지었던 것. 해방 후인 1970~80년대에 우리나라의 원양어업이 도약하면서, 깡깡이 마을은 큰 호황을 맞게 된다.
그러나 조선경기 불황이 닥쳐오자, 깡깡이 마을은 큰 위기를 겪게 됐다. 마을을 떠나는 사람은 늘고 이사 오는 사람은 줄면서, 마을이 고령화 시기로 접어들고 낙후된 건물이 늘어나는 등 활력을 잃게 된 것. 지난 30년 사이에 실제 마을 인구는 절반으로 줄었다. 게다가 마을 인구 2771명 중 65세 이상 노인이 25%가 넘은 694명으로 고령화 마을이 됐다. 몇몇 건물은 사람들이 살지 않고 조선 수리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쉼터로 활용되고 있다.
마을에서 조선 수리업에 종사하고 있는 이모(62) 씨는 “예전에 이곳이 조선 수리업으로 알아주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마을에 늙은 사람들이나 외국인 노동자밖에 없다”며 “젊은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런 깡깡이 마을에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 찾아왔다. 바로 ‘깡깡이 예술마을 조성사업’이 그것이다. 부산시가 문화예술형 도시재생 프로젝트 사업으로 감천문화마을에 이어 두 번째로 깡깡이 마을을 선정한 것. 깡깡이 예술마을사업단 송교성 사무국장은 “2017년까지 깡깡이 마을에 총 35억 원이 투입된다. 마을에 문화예술을 심어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사업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 국장에 따르면, 깡깡이 마을에 추진되는 사업은 크게 여섯 가지. 끊어진 영도 뱃길을 복원해 옛 향수를 되살리는 영도 도선 복원 프로젝트, 예술가와 협업을 통해 공공시설을 조성하는 퍼블릭 아트 프로젝트, 깡깡이 마을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마을 박물관 프로젝트, 마을 주민들과 함께 마을을 꾸며나가는 문화 사랑방, 공공예술의 성과를 기반으로 개최되는 공공예술 페스티벌, 마을 고유의 브랜드를 개발하여 지역 고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깡깡이 크리에이티브 등이 그것이다.
이 같은 사업에 발맞춰 현재 마을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아직까지 사업이 완료되진 않았지만, 이곳저곳 돌아다니면 예술마을로 바뀐 모습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송 국장은 “아직까지 전체 사업의 3분의 1밖에 진행되지 않았다”며 “늦어도 올해 10월까지는 모든 사업이 완료될 것 같다”고 밝혔다.
‘깡깡이 예술마을 조성사업’을 가장 반가워 하는 사람들은 이 마을에 오랫동안 거주했던 주민들이다. 마을 주민들은 마을을 가꿔나가는 문화사랑방에 적극 참여했다. 문화사랑방은 작년 8월 17일부터 10월 26일까지 매주 수요일마다 열린 '시즌 1'이 펼쳐졌으며, 현재는 '시즌 2'가 진행 중이다. 시즌 2의 주된 활동으로는 마을의 역사를 듣고 배우는 마을 해설사 동아리, 마을을 가꾸는 마을 정원사 동아리 운영 등 크게 두 가지.
마을 정원사 동아리에 참여해 쌈지공원 조성에 참여한 서만선(79) 할머니는 “마냥 노는 것보다 일 시켜주니까 좋다. 내 나이가 내일이면 80인데 마을을 위해 내가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서 할머니는 마을이 완공되면 많은 시민들이 찾아주길 기대했다. “사람들이 마을에 들어와 사는 건 바라지도 않지만, 외지인들이 '한 번쯤 와볼만한 곳이구나' 하고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미 깡깡이 예술마을 사업으로 유명인사가 된 이도 있다. 이 마을에서 오랜 세월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한귀선(80) 할머니는 퍼블릭 아트 사업의 일환인 페인팅 시티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것이 곧 유명세를 타 한 할머니는 TV나 매스컴에 종종 등장했던 것. 할머니는 “손주들이 할머니 TV에 나온다고 말해준다”며 “늙은 나이에 부끄럽다”고 수줍은 미소를 띠었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그려나가고 있는 깡깡이 마을. 오는 10월이면 깡깡이 마을에서 깡깡이 예술마을로 새롭게 태어난다. 깡깡이 마을에서 토박이로 자고 나란 마을회장 이양완 씨는 “마을이 어둡고 침침했는데 깡깡이 예술마을 사업을 통해 좋은 환경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