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친구로 지내온 두 남녀가 있다. 티격태격 싸우기도 하며 동성 친구 같은 면모를 과시하지만 사실 둘 사이에는 애매한 감정이 싹터 있다. 사랑과 우정 사이를 오가는 이들은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이어가는 중이다.
2030세대의 새로운 연애 키워드인 ‘남자 사람 친구’, ‘여자 사람 친구’를 소재로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일명 ‘남사친’, ‘여사친’은 이성 간에 연인 관계가 아닌 친구 사이로 지내는 남자·여자를 일컫는 말이다.
결혼 정보 회사 듀오가 지난달 20~30대 미혼 남녀 6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83.8%가 남사친·여사친과의 연애를 상상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남성이 여사친을 정의하는 기준은 ‘사귀기 전 어장 관리 중인 이성 친구’가 28%로 1위이고, 이어 ‘여럿이 만나는 자리에서만 만나는 이성 친구’가 25.6%로 2위를 기록했으며, ‘동성 친구처럼 편히 이야기할 수 있는 이성 친구’가 15.6%로 3위를 차지했다.
여성이 남사친을 정의하는 기준은 ‘스킨십을 하지 않는 이성 친구’가 32.3%로 1위를 차지했으며, ‘연인에게 소개할 수 있는 이성 친구’가 27.2%, ‘동성 친구처럼 편히 이야기할 수 있는 이성친구’가 22.8%로 뒤를 이었다.
요즘 신세대들의 연애사(史)에서는 ‘남사친과 여사친의 모호한 관계’, ‘신경 쓰이는 내 연인의 남사친·여사친’ 등이 주된 고민으로 떠오르고 있어 이러한 소재가 프로그램의 흥행 보증 수표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11일 인기리에 종영한 KBS 드라마 <쌈, 마이웨이>는 ‘사람 친구’를 소재로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제대로 파고든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는 20년 지기 친구인 동만과 애라가 서로에 대한 감정에 눈을 떠 우정에서 사랑으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불러 모았다. <쌈, 마이웨이>는 13.8%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호평 속에서 막을 내렸다.
이러한 독특한 소재는 드라마를 넘어 예능에까지 퍼지면서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어당기고 있다. 얼마 전 SBS가 새롭게 선보인 예능 프로그램 <미안하다 사랑하지 않는다-남사친 여사친>은 오랜 세월 친구로 지낸 두 남녀가 신혼 여행지로 유명한 곳을 함께 다니며 벌어지는 일을 담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또, 연애 오락 전문 채널 Mnet이 방영 준비 중인 <내 사람 친구의 연애>도 ‘사랑보다는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남사친과 여사친의 진짜 사랑 찾기 여행’이라고 소개되며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대학생 김호연(22, 부산시 수영구) 씨는 “주변에만 해도 남사친, 여사친 문제로 갈등을 겪는 커플이 많았는데 처음으로 이런 소재를 다룬 드라마라 신선했다”며 “앞으로도 새로운 키워드를 소재로 한 프로그램이 자주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직장인 이병주(30, 서울시 마포구) 씨는 “출연자들이 연애 감정이라고는 1도 느껴지지 않는 ‘진짜’ 친구 사이 같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며 “프로그램을 보면서 내 여사친과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됐다”고 말했다.
네이버 이용자 tjal****는 “프로그램을 보면 다 큰 남녀가 한 침대에서 같이 자는데 그래도 아무런 심경의 변화가 없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며 “이성 간에도 진짜 친구가 존재하는구나”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이용자 woal****는 “예전에 남자 친구와 이성 친구 문제로 다툰 적이 있는데 이런 프로그램이 나오니까 솔직히 헷갈린다”며 “이성 친구와의 접촉을 어디까지 허용해야할지 고민된다”고 말했다.
반면 프로그램 소재로 이용되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있는 사람도 있다. 네이버 이용자 lkko****는 “요즘 남사친, 여사친이 친구의 의미도 있지만 연인 관계로 가기 전인 썸으로 통용되는데 이런 소재가 자꾸 프로그램에 등장하니까 걱정된다”고 우려를 표했다. 또 다른 이용자 sofl****는 “연인들이 남사친·여사친이라는 애매한 관계 때문에 마음 고생 많이 하는 걸로 알고 있다”며 “이런 관계를 미화하는 프로그램이 자꾸 등장하면 모호한 관계의 사람들이 이런 걸 보고 힘입어 더 기세등등해질 것 아니냐”고 불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