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10-28 17:07 (월)
케인즈, 뉴딜, 증세…문재인의 ‘사람 중심의 경제’
상태바
케인즈, 뉴딜, 증세…문재인의 ‘사람 중심의 경제’
  • 편집국장 강동수
  • 승인 2017.08.01 22: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투리 시사인문⑤ 문재인 ‘제이노믹스’의 정치경제학 / 편집국장 강동수

1.

1929년 10월 24일.

편집국장 강동수

불과 한 달 전 381.17로 최고 기록을 경신했던 뉴욕 다우존스 지수가 하루아침에 21% 급락했다. ‘검은 목요일’이 바로 그날이다. 이어 10월 29일의 ‘검은 화요일’에는 시가 총액이 추가로 23% 폭락했다. 이렇게 해서 1932년 7월 8일 드디어 최저치인 41.22까지 내려앉았다. 주가 폭락은 실물 경제로 급속히 파급돼 재고가 쌓이고 물가가 폭락했다. 거리에는 일자리를 찾지 못한 실업자가 넘쳐나 1932년에는 그 수가 1300만 명에 달했다. 국민총생산은 1929년 수준의 56%로 떨어졌다. 미국을 강타한 대공황 이야기다.

실업자들은 거리의 쓰레기통을 뒤졌고, 농장주들은 오렌지를 땅에 묻거나 석유를 뿌려 썩이느라 골치를 앓았다. 같은 시간 농장 밖에서는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들이 오렌지를 훔치다 경비원의 총에 맞기도 했다. 오랜 세월 순항하던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이 극명하게 드러난 순간이었다. 풍요 속의 빈곤….

미국의 1933년 대공황 시기에 실업자들이 연방 정부의 구제 일자리를 얻으러 노동청 앞에서 긴 줄을 서고 있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대공황의 근본 원인은 생산과 소비의 불균형이었다. 물건은 차고 넘치는데 그걸 사 줄 사람이 없었던 거다. 제1차 세계 대전 후 미국은 유럽 여러 나라에 돈을 빌려 주었고, 해마다 엄청난 무역 흑자를 올려 세계 최고의 경제력을 자랑했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증권 시장에 드나들었고, 여자들은 유행에 맞춰 옷과 신을 바꾸었다. 기계는 쉬지 않고 돌았고, 공장에는 생산품이 쌓여만 갔다. 그러나 호황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임금은 크게 오르지 않았다. 따라서 소비는 점차 생산을 따라갈 수 없게 되었다. 재고가 쌓이자 기업들은 생산량을 줄였고,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1933년 제32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루스벨트는 실업과 경제 위기를 해결할 대책으로 공공 주택, 도로 건설, 전력망 확충 등에 대규모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는 케인즈의 제안을 채택했다. 실업보험·노령자 부양보험·극빈자와 장애인에 대한 부조 제도 도입 등을 위한 사회보장법도 시행했다. 이른바 ‘잊힌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정책, 뉴딜(New Deal)’이 바로 그것이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강력한 뉴딜 정책을 실시해서 미국의 대공황을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우리가 두려워 해야할 유일한 두려움은 두려움 그 자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루즈벨트 식 새로운 처방의 요체는 그의 취임 후 의회를 통과한 18개 경제 법안과 이에 기초한 '구제와 부흥' 정책이었다. 생산 제한을 통해 공산품 가격의 안정을 꾀하고 농업 조정법을 기초로 주요 농산물의 경작을 제한함으로써 농산물 가격을 제1차 세계대전 이전 수준으로 회복한다는 것. 공공사업국(PWA), 연방긴급구제국(PERA), 상품금융공사(CCC) 등을 설치, 광범위한 실업 구제 사업을 벌인다는 계획도 포함됐다

공공사업을 통한 고용 창출의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완성된 후버댐. 투어 코스를 통해서 댐의 내부까지 들어가 구경할 수 있다(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1기 뉴딜은 후버댐 공사, 테네시강 유역 개발공사(TVA) 등 대규모 토목공사와 공공일자리 정책이다. 2기엔 복지 정책 확충, 최저임금제 도입, 노조의 교섭권을 인정과 대기업의 횡포, 반칙에 대한 철저한 규제 등이 시행됐다. 그동안 철저히 소외됐던 노동자, 서민, 약자들에게 처음으로 국가가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 다르게 표현하자면, 뉴딜은 ‘억강부약(抑强扶弱)’이며 ‘불환빈 환불균(不患貧 患不均)’의 치세 이념이랄까. ‘억강부약’은 강한 자를 억누르고 약한 자를 북돋운다는 뜻이며, ‘불환빈 환불균’은 ‘가난한 것을 걱정 말고 골고루 돌아가지 않음을 걱정한다’는 뜻이다. 어쨌거나 루즈벨트의 뉴딜은 대성공을 거둬 미국과 세계를 대공황의 늪에서 건져냈음은 다 아는 바다. 그 뉴딜의 사상적 기초가 바로 케인즈 경제이론이었음도 상식에 속한다.

 

2.

영국 출신의 존 메이너드 케인즈(1883~1946년)는 20세기를 대표하는 경제학자 중의 한 사람이다. 애덤 스미스 이후 가장 위대한 학자 중의 한 사람을 꼽으라면 대부분의 경제학자는 케인즈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을 거다.

존 메이너드 케인즈(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케인즈 이론의 핵심은 정부가 대공황 타개를 위해 민간 경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간섭하는 한편 정부 지출을 늘려 유효 수요를 창출함으로써 대량 실업을 없애고 완전 고용을 이루자는 것이다. 케인즈 경제학은 시장과 민간 부문이 국가의 간섭이 없는 상태에서 가장 잘 작동한다고 주장하는 경제적 자유주의를 반박한다.

고전학파는 상품 가격 하락은 시장 안에서 수요 증가를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물건이 잘 안 팔리면 자연히 가격이 내려가게 되고, 가격이 내려가면 사는 양이 늘어나기 마련이라는 거다. 이것은 노동시장도 마찬가지. 임금이 높아지면 기업이 고용을 줄여 실업자가 늘어나지만, 실업자가 늘어나면서 임금 수준이 다시 낮아진다는 것. 실업자의 입장에선 그 낮은 임금을 받고서라도 일을 하려고 하므로 다시 고용이 늘어 실업 사태가 해소될 것이라는 거다. 쉽게 말해 모든 것은 아담 스미스의 주장대로 ‘보이지 않는 손’이 결정한다는 거다.

하지만 케인즈의 시각으로는 이런 주장은 엉터리다. 상품 가격이 하락해도 부의 양극화 현상이 해소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란 것. 자산가 또는 고소득층, 기업가들이 버는 대로 다 쓰지 않고, 번 돈의 상당 부분을 쟁여놓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축을 많이 하면 할수록 생산된 재화 가운데 더 많은 몫이 팔려나가지 않는 일이 벌어진다. 그래서 ‘소비가 미덕’이란 말이 나온 거다. 대중의 주머니가 비어 있으면 사회 전체적인 구매력이 늘어나지 않아 수요가 창출되지 않는다는 것. 임금도 마찬가지다. 임금은 생계비의 개념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노동조합 등의 반대 때문에 실업자가 늘어난다고 해서 한 번 오른 임금은 좀처럼 도로 깎이지 않는다는 거다. 케인즈는 그걸 ‘임금의 하방 경직성’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시장에만 맡겨둘 게 아니라 정부나 공공 부문이 나서서 유효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는 것. 정부가 재정 지출을 통해 고용을 늘리고, 늘어난 고용으로 얻어진 소득으로 다시 소비에 나서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거다. 쉽게 말하면 ‘소득 주도 성장론’인 셈이다. 어쨌든, 케인즈주의는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에 의한 ‘뉴딜’ 정책의 성공으로 크게 빛을 보았다. 그리고 1960년대까지 30년간 세계 경제의 모범 답안으로 통했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하지만 1970년대 들어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시작되면서 케인즈식 처방은 한물 간 것으로 치부됐다. 그리고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경제이론이 판을 쳤다. 하이에크는 1930년대의 대공황의 와중에서 세계 각국 정부가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취한 적극적 시장 개입 조치에 반대하면서, 기업 및 금융 시장 규제 도입과 소득세 및 법인세 증세, 사회복지 확대와 노동권 강화 등이 결국은 ‘노예로의 길’을 열 것이라고 맹렬히 비판한 사람이다. 인공적인 경기부양책으론 경기 부양효과는 일시적일 뿐 결국 인플레이션을 일으킨다는 거다. 통화 가치를 유지하고 시장 질서를 지키는 것이 결국은 정답이란 게 하이에크의 지론이다.  1980년대 레이건과 대처식 자유주의 경제 정책이 도압되면서 세계 경제의 답은 하이에크에 있다는 인식이 풍미했다.

그런데, 세상은 돌고 도는 법. 구관이 명관이랄까, 한물 간 것으로 여겨졌던 케인즈식 경기부양책이 다시 빛을 본 것은 2008년 세계를 휩쓴 금융 위기 때였다. 미국 국책 모기지 업체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이 파산하면서 미국의 금융 자이언트들이 연쇄 도산했다. 미국 4위 투자은행인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했고, 3위 투자은행인 메릴린치가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에 인수 합병됐으며, 헤지펀드에 투자해 대규모 손실을 본 월가의 5위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는 이미 300억달러의 정부 구제금융이 투여돼 주당 10달러에 JP모건 체이스 은행에 인수됐던 거다. 금융위기는 이에 그치지 않고 영국과 독일의 상업은행들도 잇따라 도산하는 등 위기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은 그 상황을 “미국에서 1929년의 대공황 이래 가장 거대한 금융위기”라고 불렀다.

신자유주의적 금융시장의 파산 앞에 미국 등은 금융기관에 대한 구제금융 제공 등에 나섰다. 다시 말해 금융시장에서의 케인즈 주의가 구원투수로 긴급 등판한 것. 부시행정부는 재정적자에 시달리면서도 700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내놓았다. 대신 주요 금융기관을 부분 국유화했다. 오마바도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내놓았다. 그리고 금융위기는 일단 잠잠해졌다. 당시 파이낸셜 타임즈는 ‘로널드 레이건 시대가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고 선언했고 월스트리트 저널도 ‘미국 금융자본주의가 결정적인 전환점을 만들고 있다’ 고 주장했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시장을 조작하려는 정치적 힘이 문제다’는 하이에크, ‘방치된 탐욕(금융 자본주의)이 문제의 원인이니 규제가 필요하다’는 케인즈. 과연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지금도 케인즈와 하이에크는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그들의 충실한 후계자들을 통해서. 누가 맞고 누가 틀렸는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3.

내가 이렇게 장황하게 케인즈와 하이에크를 들먹이는 까닭을 눈 밝은 독자는 바로 알아차렸을 거다. 그렇다. ‘여기 지금(hic et nunc)’을 이야기하려는 거다. 2017년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쩐의 전쟁’ 말이다.

마르크스식으로 말하자면, 지난 대선에서 한국 유권자들은 세 개의 유령(?)이 배회하는 것을 지켜봤다. 문재인을 등에 업은 케인즈, 홍준표의 입을 빌린 하이에크, 그리고 안철수의 옷을 빌려 입은 슘페터.

‘사람 중심의 경제’를 표방한 문재인은 케인즈 이론의 충실한 집행자다. 나중에 따로 좀 더 이야기하겠지만 재정 지출 확대를 통해 고용을 창출하고 창출된 고용으로 얻어진 소득을 다시 소비에 돌리는, 이른바 ‘소득 주도 성장’이란 문재인의 방식은 케인즈 이론과 맞닿아 있다.

대선 당시 홍준표는 “기업에는 자유를, 서민들에게는 희망을”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그는 “경제 정책의 기본은 기업의 기를 살려주는 것”이라면서 “부자의 것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것은 잘못된 복지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기업과 부자들에 대한 세금을 줄이고 기업에 대한 규제를 풀면 기업들이 신나게 투자를 늘리니 좋은 일자리가 많아질 것이다, 민주노총과 전교조 같은 노동조합과 좌파 시민운동을 척결해 법질서를 단호하게 세우면 기업들이 더더욱 신바람이 나서 투자를 늘려 일자리를 늘린다고도 했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이 지난 10년간 주장하고 실천해왔던 것이며 전경련, 뉴라이트 지식인들이 뒷받침해온 주장이다. 그리고 그 뿌리는 하이에크에 있다.

조지프 슘페터(사진: 구글 무료 이미지)

그렇다면 안철수는? 4차산업혁명을 입버릇처럼 앞세웠던 그는 ‘중소벤처 창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거듭 주장했다. 기술창업 등 창업을 활성화하려면 그것을 가로막는 쓸데없는 규제들을 풀어야 한다고 하면서 이를 위해 ‘규제 프리존 설치’ 같은 시장주의(신자유주의) 정책도 마다할 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기업 규제 완화를 외치는 대목에선 하이에크가 연상되지만 새로운 창업가 정신을 외치는 데선 슘페터의 모습이 엿보인다. 슘페터는 경기변동이란 것은 기술혁신에 의해 기존의 기술, 제품, 시장 관행 등 낡은 것이 파괴되고 새로운 것이 탄생함으로써 끊임없이 시장질서가 변화하는 과정이라고 한 사람이다. 낡은 것은 계속 파괴하고 새로운 것은 계속 창조하면서 끊임없이 경제구조를 혁신해 가는 산업 개편을 계속해야 한다는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가 바로 슘페터의 대표 브랜드가 아니었던가. 그렇게 보면 안철수는 영락없는 슘페터의 후예인 거다.

미국의 시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가 있다.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후략)"

지난 대선에서 한국 사회는 세 개의 길이 있었다. 케인즈, 하이에크, 슘페터…. 그리고 유권자들은 케인즈의 길을 선택했다. 글쎄, 어떤 길이 더 좋은 길인지는 아직 잘 모른다. 일단 걸어봐야 알아질 것이다.

 

4.

이제 본격적으로 ‘문재인의 길’을 이야기 해 보자.

문재인 정부가 시행하는 경제 정책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이니셜 중 가운데 글자인 'J'와 경제학을 뜻하는 '이코노믹스(economics)'를 합성한 게 이른바 ‘제이노믹스’다. 그 요체는 이미 알려진 대로 △일자리위원회를 통한 정부 주도 일자리 창출,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통한 4차 산업혁명 대비, △중소ㆍ벤처기업 육성, △대기업 지주회사 요건 및 징벌적 손해 배상제 강화, △세재 개편을 통한 소득 재분배 등이 주 내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당시 '향후 5년간 세수 자연증가분에서 50조 원을 조달하여 일자리 창출과 4차 산업혁명 등 10대 핵심 분야에 투자한다고 약속했다. 국가 재정 지출 증가율을 현행 연평균 3.5%에서 7%로 확대해 육아와 교육, 복지, 주택, 보건의료 등 사회복지 분야에 사용하겠다고도 했다.

그리고 지금 문재인은 그 길로 가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11조원 규모의 추경예산안이 통과돼 집행을 앞두고 있다. 중앙과 지방의 공공 일자리를 늘려 청년 실업 문제에 대처하는 한편 일자리 창출을 위한 여건 개선에 쓰겠다는 게 그 지출 세목이다. 사회안전망 확충에도 돈을 쓰겠다고도 했다. 뿐만이 아니다. 임기 5년간 필요할 것으로 추정되는 170조 원 규모의 재정 수요를 채우기 위해 지금 증세 문제도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추경은 일단 통과됐지만 증세 문제는 앞으로 여야 간에 치열한 공방이 예고돼 있다. 자유한국당 등 보수야당의 주장은 문재인 식 재정 지출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거다. 나아가, 법인세율 인상 등은 사실상 기업에 대한 징벌적 규제로 작용해 투자 의욕을 꺾어놓을 것이라고도 한다. 이같은 야당의 주장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발목잡기가 아니냐는 지적도 있긴 하다. 최근 자유한국당의 담뱃값 도로 인하 주장을 보면 문재인 정부에 대한 어깃장 놓기란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하지만 근원을 놓고 보면, 문재인과 홍준표의 2라운드는 케인즈주의자들과 하이에크 추종자들의 대결이다.

글쎄, ‘고용 없는 성장’이란 주장으로 요약되는 근년의 한국 경제를 보면 문재인식 진단에 일리가 있어 보이기는 한다. 국민생산의 대부분이 삼성, 현대 같은 재벌에 의해 창출되고 있다. 하지만 재벌기업들의 고용은 썩 흡족하지 못하다. 30대 기업의 사내유보금이 754조 원을 기록했다고도 한다. 돈을 벌어도 고용에 쓰거나 투자하지 않고 저축(?)에 나서면 수요가 창출되지 않는다는 케인즈의 주장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대기업의 몸집불리기와 고소득자 창출이 소비 및 투자 확대로 이어져 궁극적으로 저소득층의 소득을 증가시킨다는 이른바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는 한국에선 이미 용도폐기됐다는 사정을 따져보면 정부라도 나서서 수요를 창출해야 하지 않느냐는 케인즈식 진단에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 기업이 움켜쥐고 있는 사내유보금을 투자와 고용 등에 쓰게 만들려면 기업에 대한 규제를 줄이고 기업 활동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이 있긴 하다. 하지만, 이래도 저래도 기업이 돈주머니를 풀지 않을 바에야 정부가 증세를 통해 강제로 빼앗아(?) 와서 대신 돈을 풀겠다는 거 아닌가.

정부가 주도하는 재정 지출 증가를 통해 고용과 소득을 늘리겠다는 제이노믹스가 소기의 효과를 창출할지, 아니면 국민의 세금 부담과 인플레만 불러일으킬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일단은 소신대로 해 보라고 지켜봐야 할 일이겠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잊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정부 만능주의가 돼선 안 된다는 것. 정부가 나서 투자를 확대하되 민간의 몫까지 정부가 다 하려고 해선 안 된다는 것 말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다. 당시 프랑스는 생필품 가격 상승으로 국민들의 고통이 심각했다. 혁명을 주도한 로베스피에르(1758~1794년)는 어느 날 '반값 우유' 정책을 발표했다. 우유 값을 내리지 않으면 단두대로 보낸다는 엄포도 놓았다. 그러자 전혀 예상하지 못한 현상이 나타났다. 축산 농가들이 젖소 사육을 포기한 것. 적자가 불을 보듯 뻔하자 소를 도축해 고기를 내다 팔았다. 젖소가 사라지니 오히려 우유 값이 폭등했다.

이렇게 되자 로베스피에르는 건초값을 내리라고 명령했다. 낙농민들이 비싼 건초값 때문에 폐업한다고 잘못 판단했던 거다. 똑 같은 현상이 또 발생했다. 건초 생산이 축소돼 가격이 되레 폭등했다. 건초와 우유 공급이 줄어들자 우유 값은 예전 가격의 10배까지 치솟았다. 이렇게 돼 국민 불만이 더 들끓으면서 로베스피에르의 인기는 추락했고 결국 그는 정적들에게 패배해 단두대에서 처형당하고 말았다.

말 난 김에 하나 더. 중국 공산화에 성공한 마오쩌둥이 어느 날 참새 박멸을 지시했다. 농촌을 시찰하다가 참새가 곡식 낟알을 먹는 모습을 보고 참새를 없애야 식량을 증산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국 대륙 전역에서 대대적인 참새 소탕작전이 벌어졌다. 어른은 물론 아이까지 새총을 들고 다니며 참새를 쏘아 죽이는 일에 동원됐다. 그리고 1년 동안 참새 약 2억 1000만 마리를 잡았다. 그런데 새로운 재앙이 발생하고 만다. 천적 참새가 없어지자 해충이 대량 번식해 곡식을 갉아먹은 탓에 희대의 흉작을 맞았다는 거다.

전문성이 없는 정부의 개입으로 거꾸로 시장이 망쳐졌다는 이야기. 문재인은 로베스피에르와 마오쩌둥의 옛 이야기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거다. 케인즈식 경제운용을 하더라도, 슘페터와 하이에크의 길도 아예 내버리지는 말아야 할 일이다. 결국 경제는 균형이 아닌가.

앞에 소개했던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의 마지막 대목은 이렇다.

"나중에 나중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면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