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공범자들>의 흥행 기세가 만만찮다. <공범자들>은 MBC에서 PD로 일하면서 4대강 사업 문제점 등을 밝히다가 쫓겨나서 ‘뉴스타파’에 둥지를 튼 최승호 감독이 만든 작품으로 KBS와 MBC 등 공영방송의 언론 자유 억압 실상을 그렸다. 최근 MBC가 사장의 간섭과 통제에 대한 기자들의 불만으로 사장 사임을 요구하며 파업 수순을 밟고 있고, 문재인 대통령이 공영방송의 정상화를 언급하자, 이 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우리나라 공영방송은 원래 KBS 하나였다가 1980년 전두환 정부가 들어서면서 종교방송만 빼고 민간방송을 모두 공영방송으로 '접수'했다. KBS1은 원래의 KBS였으나, 삼성이 사주였던 TBC는 신군부의 강요로 KBS로 인수 합병되어 KBS2가 됐다. MBC도 경향신문사 소유였다가 역시 신군부에 의해 강제로 공영방송화됐으며 1988년 이후부터는 방송문화진흥회라는 공익법인의 지배를 받게 됐다.
그후부터 KBS와 MBC는 정권이 임명한 사장 따라서 정권의 나팔수가 됐다. 전두환 정부 때는 9시가 ‘땡’ 하면 “전두환 대통령은...”으로 뉴스가 시작됐다고 해서 붙은 ‘땡전 뉴스’ 방송 신세가 됐다. 1986년에는 국민들이 KBS가 해도 너무한다며 시청료 납부 거부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후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는 햇볕정책을 옹호하고 과거사를 캐는 진보 방송이 됐다가,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는 영화 <공범자들>이 지적한 것처럼 세월호 진실과 국정 농단 보도에 소극적인 보수 정부의 시녀가 다시 됐다. 이번에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으니, 이 정부와 공영방송은 코드가 또 한 번 잘 맞을 것이다. 그리고 5년 후 다시 정권이 바뀌면, 방송국의 성향 또한 바뀔 것이라는 예측이 맞을 확률은 99%일 듯하다.
정권을 잡으면 방송이 자동으로 ‘바이 원 겟 원 프리(buy one, get one free: 하나 사면 하나를 덤으로 준다는 세일 방법)’가 되는 이유는 법이 정한 공영방송 이사진 선임 방법 때문이다. KBS 이사회는 여당 추천 7명, 야당 추천 4명으로, MBC의 방문진 이사회는 여당 추천 6명, 야당 추천 3명으로 구성된다. 지난 정권의 KBS의 정연주 사장은 좌파의 낙하산이란 이유로, 현 MBC의 김장겸 사장은 우파의 낙하산이란 이유로 각각 퇴진 운동의 대상이 됐다. 따라서 장권이 바뀌면 정권 초기에 약간 소란스러울 수는 있어도 결국은 여당 추천 인사가 방송국을 장악하게 되어 있다. 국민들은 방송도 선거 승리의 전리품이라 생각하는 듯 공영방송이 자기 코드에 맞는 사장을 맞이하면 좋아한다.
공영방송이 정권과 한몸이 되는 연유로 시청료가 36년 간 동결되는 사태도 일어났다. KBS는 1981년에 정해진 한 달 2500원의 시청료를 현실에 맞게 올려달라고 매년 국회에 시청료 인상을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정당들이 자기네가 KBS를 장악했을 때는 시청료를 올리려고 하고, 야당으로 밀려 KBS를 빼앗기면 시청료를 못 올린다고 하는 ‘공수(攻守) 입장 바꾸기’를 매 정권마다 반복하는 바람에, 36년 간 시청료는 딱 그 자리에 멈춰 있다. 여야가 시청료를 놓고 초등학생들 기 싸움하듯 하니, 코미디가 따로 없다. KBS의 모든 프로그램 말미에 나오는 "이 프로그램은 시청자 여러분의 소중한 수신료로 제작되었습니다"란 자막이 바로 이런 속사정을 시청자들에게 하소연하는 것이다.
정권 교체 때마다 공영방송이 경영진과 기자들 사이의 갈등이란 진통을 겪다보니, 민주당이 야당이던 시절에 민주당은 소위 ‘언론장악방지법’이란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법안의 핵심은 각 공영방송사 이사 선임 비율을 여야 7 대 6으로 개편하고, 사장을 뽑을 때는 재적 이사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는 ‘특별다수제’를 도입한다는 것 등이다. 여야가 타협하지 않으면 공영방송의 사장이 선임되지 않게 하자는 안이다. 그런데 민주당이 여당이 되어 공영방송이 덤으로 오게 된 마당에 이 법을 국회에서 민주당이 앞장서서 통과시킬 것인가에 대해 최근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이사진 구성 방안을 고치면, 정권의 언론 장악이 완화될까? 여야나 보수진보라는 정치적 성향으로부터 중립적인 사장이 선임되면, 공영방송이 여야로부터 중립적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내 언론인들의 생각 자체가 당파적이라면 국내 공영방송의 보도와 논평은 여전히 정치권의 갈등과 연동할 가능성이 크다. 국내 언론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정당-언론 연계주의(party-press parallelism)'라 부르기도 한다. 언론이 지극히 당파적일 때를 가리켜 '언론과 정치인이 탱고를 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원래 보도와 논평을 객관적으로 수행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뉴욕타임즈는 진보적이고 월스트리트 저널은 보수적이란 평을 듣기는 하지만, 미국 언론들은 스스로 특정 정당과 생각을 맞춘다는 기자의 당파성, 혹은 정치적인 편협성을 경계한다. 심지어 기자들의 정치 활동을 회사 내규로 엄격하게 금지한다. 특정 정파와 숨겨진 교류에 의해 보도와 논평이 영향을 받는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다. 뉴욕타임스의 그린하우스라는 여기자 한 명은 1989년에 여성의 임신중절권을 찬성하는 시위에 참가한 것 때문에 징계를 받은 적도 있다.
결국 언론의 생명인 비판 능력이 관건이다. 동시에 그 비판 능력은 정파들 사이에서 중립적이라기보다는 독립적이어야 한다. 기자의 판단 이외의 그 무엇으로부터 언론인 활동이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언론인이 사회적 관계(사장이나 국장의 통제)나 자신의 이데올로기 성향으로부터 독립하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언론사에서 실제적으로 필요한 것이 ‘가이드라인’이다.
2002년 대선 때, 문화일보는 사주 정몽준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문화일보는 당시 대선에서 구조적으로 편파적일 것이라는 외부의 선입견을 극복하기 위해 100개의 가이드라인 안을 놓고 간부와 기자들 간의 격렬한 내부 토론을 거쳐 20개의 선거 보도 최종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실행했다. 이들은 승패를 미리 정해 놓고(간부의 지시와 이데올로기에 따른 편파성) 축구 경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합의된 가이드라인(축구 규칙 같은 것)에 따라서 축구 경기를 해서 승패를 가리려고 노력한 것이다. 이들의 선거보도는 기자협회와 시민단체들의 지지를 받았다. 언론인 스스로가 이런 식으로 노력하면 편집국의 사회적 통제나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다소 극복할 수 있다. 언론이 당파성을 탈피하고 객관성을 달성하는 것은 어려운 목표지만 객관적이려고 노력하는 '끊임없은 항해'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음 실화는 국내 언론이 회사 내 사회적 통제나 개인적인 이데올로기적 당파성을 벗어나도 진실 추구라는 언론의 사명이 추구되는 것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국내의 한 프리랜서 종군기자가 있었다. 그는 2005년 전 세계 수십 명의 종군기자들이 모여 있는 이라크 바그다드의 호텔에 머물면서 한국 기자로는 유일하게 이라크 전쟁을 취재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한국 외교부에 의해 이라크에서 강제로 끌려 나왔다. 한국으로 귀국한 그는 주류 언론사 기자들에게 개인 책임을 전제로 이라크 취재를 허용해달라고 정부에 공동으로 요청하자고 제안했지만, 주류 언론인들은 동조하지 않았다. 혼자 외롭게 진행된 그의 이라크 종군 취재 허용 운동은 허사가 됐다. 그는 여자였다. 그녀는 한국의 주류 기자들은 진실 추구에 관해 비겁하다고 한 잡지 기고문에 썼다. 당시 한국 기자들은 미국 CNN이 보여주는 이라크 전쟁 비디오와 미국이 제공하는 보도자료만 받아썼다. 국내 정치와 무관한 이라크 전쟁을 두고 그렇게 하라고 당시 정부나 방송국 사장이 지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같은 이라크 전쟁을 두고 최근 몇년 간 영국의 공영방송인 BBC와 영국 정부와의 갈등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BBC 사장인 그렉 다이크는 그의 친구인 당시 토니 블레어 수상으로부터 BBC 사장으로 임명됐다. 최근 다이크 사장의 BBC는 블레어 정부가 2003년 당시 이라크 참전을 결정한 뒤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수집한 정보를 과장하고 조작했다고 주장해서 영국 정부와 갈등을 빚었다. 결국 블레어 전 총리는 최근 의회에 출석해서 자신의 과오를 시인했다. BBC는 정권으로부터 독립적이며 동시에 진실 추구의 정신이 살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언론 제도는 정치가들이 만든다. 이사 선임 비율을 수선한 제도가 공영방송의 정상화를 보장하지 못한다. 언론의 비판 정신, 독립성, 그리고 진실 추구의 프로 정신을 지키는 것은 언제나 언론인들의 영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