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대학교 신문방송학과가 창설 15주년을 맞아 ‘세계화와 지역 언론’이란 주제로 국제 세미나를 개최하는데 그 세미나를 주관해달라는 부탁이 왔습니다. 이 세미나를 위해 내가 미국의 존 메릴(John Merrill) 교수, 프랑스의 클로드 장 베르트(Claude-Jean Bertrand) 교수를 초청했으며, 그들은 즉각 참가하겠다고 답신이 왔습니다. 일본의 상지대학 히데오 다께이치 교수도 초청했으나, 못 온다고 해서 대신 요시히로 오토 교수를 초청했습니다. 이렇게 나까지 포함해서 4인의 외국 교수가 참가하는 국제 세미나가 1996년 11월 22 일부터 3일간 광주에서 개최됐습니다.
전남대는 미 국무성에 미국 원로 언론학 교수를 한국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파견해 달라고 요청했으며, 미 국무부는 해외 파견 교수에 경비를 보조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나의 한국행 여비와 체재비를 전남대를 통해 나에게 지급했습니다. 마침 그때, 나의 둘도 없이 가까운 친구인 유만조로부터 환갑을 맞아 하와이로 같이 여행 가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유만조는 나보다는 한 살 많은 병자년 생입니다. 나는 광주 가기 일주일 전에 아내와 같이 하와이에 가서 유만조 부부와 하와이 관광을 하고, 나는 광주로, 그리고 유만조 부부는 서울로, 그리고 내 아내는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는 안성마춤 계획을 세웠습니다.
요즈음 환갑은 별로 희소가치가 없어서 그런지 옛날처럼 잔치를 크게 벌이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래도 그냥 보내기 섭섭하다고 해서 자녀들이 주선하는 해외여행을 하는 게 추세인 것 같습니다. 유만조도 자녀들이 보내주는 해외여행에 우리 부부가 동참할 것을 제안한 것이었습니다.
여행 장소인 하와이는 우리에게는 정말 최상의 휴양지였습니다. 왜냐하면 하와이는 골프의 천국이고, 유만조와 나는 골프광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친구 부인 홍 집사도 3년 전에 시작한 골프에 푹 빠져 있었고, 나의 처도 10여 년간 본업이 골프라고 할 만큼 열성 골퍼여서 우리 모두 큰 기대를 가지고 하와이 여행을 학수고대하게 됐습니다. 미국 본토에서는 찬바람이 슬슬 불고 눈서리가 서서히 내리기 시작하는 11월 중순에 하와이로 골프 휴가를 간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신나는 일이었습니다.
유만조 내외와 우리 부부는 하와이에서 11월 12일 만나서 19일까지 함께 머물기로 했습니다. 하와이의 체제 비용과 항공료 부담이 제법 되었지만, 가장 친한 친구의 환갑을 같이 보내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평소부터 언젠가 한 번은 겨울에 하와이로 골프 여행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에 흔쾌히 하와이 행을 결정한 것이었습니다.
11월 12일, 우리는 아침 8시에 미주리 콜롬비아 집을 떠나 세인트 루이스에서 하와이행 TWA 비행기를 탔고, 유만조 내외는 서울에서 대한항공 편으로 거의 같은 시간에 하와이로 출발했습니다. 시차로 하와이보다 5시간 앞서가는 서울에서 출발한 유만조는 아침 8시에 호놀룰루에 도착했고, 5시간을 늦게 가는 미주리에서 출발한 우리는 오후 3시반 경에 도착했습니다.
호놀룰루를 구경한 적이 없는 유만조 내외를 위하여 좀 비싼 하와이언 레전트 호텔(Hawaiian Regent Hotel)에서 묵었으나, 저녁은 KAL 호텔의 동백장에서 한식을 먹었습니다. 특히 도미 생선찌게는 일품이었다. 식사 후 우리는 호텔 방에서 1주일 계획을 의논했습니다. 유만조 내외는 모두 독실한 기독교인들이지만 가끔 맥주를 한두 잔 했는데, 이제는 간도 나쁘고 혈압도 안 좋아 약까지 먹는다며 일체의 술을 마시지 안았습니다.
도착 다음날은 하와이의 우기인 듯 마치 미국 북서부의 겨울처럼 비가 오락가락했습니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날에는 큰 비가 왔다고 이곳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하와이 주에서 제일 큰 도시인 호놀룰루는 90만 정도의 인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섬에는 여러 가지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많습니다. 우리 일행은 이 섬을 일주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패키지 여행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여기에는 한국 여행사가 20여 개나 있고, 또 한국인 여행객도 많은 편인데, 우리가 머무는 동안에 한국 여행객을 몇 사람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 여행사들이 우리를 고객으로 모시려고 졸졸 쫓아다녔지만, 전에 한국 여행사를 따라 관광했다가, 시끄럽기 짝이 없고, 여기저기 쇼핑센터로 손님들을 몰고 가는 게 싫어서, 우리는 미국 여행사를 택하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하루 종일 섬을 일주하면서, 수영도 했고, 이 섬에 대한 지리와 역사 공부를 하면서 즐겁게 여행했습니다.
셋째날인 14일, 우리는 호놀룰루 숙소를 떠나서 비행기로 30분 정도 가면 나타나는 카우아이(Kauai) 섬으로 출발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나머지 일정을 묶게 되어 있는 패키지 여행권을 구매했습니다. 이 섬은 하와이 군도의 사람이 사는 섬 중에서 제일 위에 있는 곳으로 '정원 섬’이라고도 불립니다. 이 섬은 아직 개발이 덜 되었지만, 해수욕장이 특히 유명하고, 화산으로 이루어진 산의 자태가 준수하며, 멋진 폭포수가 흐릅니다. 이곳에는 하와이에서 제일 좋다는 프린스 골프 코스를 비롯하여 7개의 골프장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5박 6일 머무르는 가간 중 4곳의 골프장에 각각 매일 10시에 부킹을 해 놓았습니다. 카우아이 섬의 비행장이 있는 레후이(Lehui)에 1시 반경에 도착한 우리는 바로 예약된 렌트 자동차로 우리가 머물기로 한 하날라이(Hanalei)로 향했습니다. 그림 같은 태평양 연안을 끼고 돌면서 50마일 가량 북쪽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여러 개의 작은 해변도시들을 지나야 했는데, 시간은 좀 걸렸지만 아직도 외부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덜 받은 순박한 하와이 원주민을 만날 수 있어서, 이곳은 정이 가는 면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묵게 된 하날라이에 있는 프린스빌 리조트는 하날라이 베이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우리는 방 두개에 부엌과 거실이 있는 스위트룸에 들었습니다. 이 스위트룸은 대나무로 싸여 있어서 뱀부 유니트라고 불렸습니다.
우리가 산 골프 패키지 여행권에는 숙박, 자동차 렌트, 4번의 골프 비용, 아침과 저녁식사, 그리고 술 두 잔 정도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패키지의 1인당 비용이 860불로 다른 것보다 비싼 편이었지만, 우리는 회갑 여행이란 점에서 기꺼이 비용을 지블했던 것이었습니다.
체크인을 하고 우리는 바로 그 동네에 있는 식료품에 들려서 우리 입맛에 맞는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여기에는 세탁기와 전기 건조기까지 준비되어 있어서 해변에 내려가 수영을 하고는 바로바로 세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뷰익 센추리라는 큰 렌트카를 가지고 있으니 근처의 호텔이나 명승지를 직접 몰고 다닐 수 있어서 좋았고, 머무는 동안 매일 청소를 해주는 룸서비스도 아주 좋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호놀룰루처럼 큰비는 없어도 소나기가 자주 오는 것이 불편한 점이었고,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모기들이 많아서 모기에 물리는 것이 큰 불만이었습니다.
하날라이로 돌아오는 길에 카파라는 동네에 들러서 해물 시장을 돌아 보았습니다. 우리는 한국 식당이나 일본 식당에서 회를 먹을 수 있나 찾았으나 불행히도 찾질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많이 잡히는 아히(Ahi)라는 생선은 회로 먹을 수 있다고 이야기를 들은 바가 기억이 나서 우리는 아히를 사다가 회로 먹었는데, 참치보다 연해서 마치 아이스크림을 먹는 듯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게를 몇 마리 사다가 저녁에 쪄 먹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날은 포이프 지역에 있는 키아후나(Kiahuna) 골프 코스에서 골프를 쳤습니다. 이곳은 태평양을 바라 보면서 공을 칠 수 있는 아름다운 코스였습니다. 유만조는 밤에 잘 때 담요를 잘 덮지 못해서 감기 기운이 있다고 하면서 마지막 날에도 좋은 골프 성적을 내지 못했고, 오히려 홍 집사가 94타를 쳤다고 기분이 좋아서 저녁을 내겠다고 했습니다. 저녁에는 프린스빌을 나와서 북쪽으로 7마일쯤 가는 하날라이 시에서 제일 큰 돌핀식당으로 가서 아히 구이와 새우 구이로 저녁을 먹었습니다. 우리는 칵테일을 마시면서 이번 골프 여행의 마지막 밤을 아쉬워했습니다.
하와이 여행을 마치고, 우리는 예정대로 세 그룹으로 나누어 헤어져야 했습니다. 유만조 내외는 서울로 가는 대한항공으로, 나는 동경을 거쳐서 서울로 가는 유나이티드로, 그리고 나의 처는 미주리로 가는 TWA로 나뉘어 헤어져야했습니다. 우리는 각자 다른 비행기 출발 시간에 맞춰 새벽같이 하와이 섬을 떠났습니다. (14)-2 세계화와 지역 언론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