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6월 12일은 나에게 너무도 벅찬 회갑 행사가 있던 날이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김흥규 교수가 중심이 되어, 박영상, 양휘부, 고흥길, 고 양재흥, 이장한 등 나로부터 학위를 받았거나 내가 주관한 미주리 한국 언론인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국 '미주리 마피아' 조직이 동갑인 우리 내외의 회갑 잔치를 준비한다는 연락이 미국으로 왔습니다. 나는 한사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사양했지만, 준비를 진행하는 측에서는 이미 준비가 많이 직척됐고, 이런 기회에 미주리 저널리즘 출신이 다 모일 기회도 되니 '강행'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여러 제자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서 자식들이 회갑 기념으로 유럽 여행을 준비한 게 있어서 그것으로 조용히 지내려 한다고 버텨보았지만 막무가내였습니다.
하는 수 없이 초청에 응하고 서울로 와서 행사장에 도착하니, 그렇게 큰 잔치가 벌어질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회갑연 장소는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이었는데, 300명의 손님을 모시고 거창한 회갑연이 벌어진 것이었습니다. 비용도 적잖게 들었을 것 같아서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자들이 회갑 기념논문집 <언론학의 지평을 넘어>라는 645쪽의 책을 만들어 나에게 증정하고 참석한 손님들에게 골고루 나눠어 준 것입니다. 후학들의 귀한 논문과 미주리 컬럼비아에서 1년을 보낸 한국 언론인들이 쓴 수필들을 모은 회갑 기념 논문집은 나에게 아주 귀한 선물이 되어 지금도 틈틈이 즐겨 읽습니다. 제자들은 이날 회갑연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하이 닥터 장>이라는 나의 자서전도 한 권씩 참석한 손님들에게 배포해 주었습니다.
캐나다에 있는 딸 혜경이가 두 살짜리 손자 에릭을 데리고 왔고, 큰 아들 철준 내외와 작은 아들 유진 내외도 각각 미국과 독일에서 서울로 왔습니다. 내 자식들은 우리 내외 회갑연 선물로 유럽을 한 바퀴 도는 여행 비용을 모아서 주었습니다. 당시 여름에는 마침 유진이 내외가 독일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유진이는 예일대학에서 유럽 문학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이수했는데, 당시에는 박사 학위 논문을 작성하기 위해 독일에 체류 중이었던 것입니다. 원래 유진이는 프랑스 문학이 주 전공이어서 불어에 능통했으며, 유진이 처는 부모 따라서 독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또 독일 문학을 전공해서 독일어에 능통했습니다. 프랑스어와 독일어에 능통하고 유럽의 역사와 문화에 해박한 지식으로 무장된 작은 아들 내외를 대동하고 유럽을 여행한다는 것은 대단한 혜택이었습니다.
서울에서 회갑연을 끝내고 며칠 더 머무른 다음, 우리 내외는 7월 14일에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하여 공항에서 기다리던 유진이 내외를 만나 바로 하이델베르그(Heidelberg)로 갔습니다. 이곳에서 유서 깊은 하이델베르그 대학을 돌아보고 대학 맞은편 산 길에 조성된 '철학자의 길'을 걸어보았습니다. 이 길은 야스퍼스와 하이데거 같은 하이델베르그 대학이 배출한 철학자들이 산책했다는 길이었습니다. 이 도시는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의 배경이 된 맥주집도 있어서 우리는 이 대학 타운에서 하루를 보내고 그 다음에는 파리로 행했습니다.
파리는 국제회의 참석 차 몇 번 가본 적은 있지만 관고아 목적으로 온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더구나 우리 부부와 작은 아들 내외 이렇게 넷이서 조용히 며칠을 파리에서 보낸다는 것은 꿈만 같은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파리 외곽에 숙소를 정하고 렌트한 차로 파리를 골고루 돌아다녔습니다.
파리에는 볼 곳이 너무 많았습니다. 우선 베르사유 궁전을 봤고, 그 다음은 루브르 박물관을 4시간 정도 구경했습니다. 저녁에는 센 강의 바토뮤슈(Bateaux Mouche)라는 유람선을 한 시간 정도 타면서 파리의 야경을 즐겼습니다.
다음 날, 우리는 노트르담 대성당과 몽마르트르 사원을 보았고, 이 사원 뒤쪽으로 내려가서 사원의 뒤편에 예술가들의 광장으로 유명한 떼아뜨르(Place Tertre)로 갔습니다. 이곳에서는 거리의 예술가들이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려줍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들의 초상화를 부탁했습니다. 이곳에는 유명한 물랭 루주라는 나이트 클럽이 있는데 낮이라서 쇼는 보지 못했습니다.
저녁 때가 되어서, 우리는 마르스 광장(Champs de Mars)으로 가서 에펠탑 위로 올라가 보았습니다. 이번에는 파리의 화려한 야경을 높은 곳에서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대강 이렇게 우리는 파리 여행을 마쳤습니다. 언제 다시 시간을 내어 천천히 파리는 물론 프랑스 이곳저곳을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15)-2 넘치는 축복의 회갑연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