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취 여성만 520만 명 "불안해서 못 살겠다"...안전 대책은 걸음마 수준 / 정인혜 기자
신변 위험을 호소한 한 네티즌이 “제발 살려달라”는 글을 남겨 온라인이 떠들썩하다. 그는 낯선 남성이 창문으로 집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며 다른 네티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지난 17일 네이트판에는 ‘창문 밖 낯선 그 사람, 제발 살려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그는 본인을 자취 생활 3년차 여성이라 소개하며 얼마 전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현재 건물 1층에 거주 중이라는 그는 “집에 들어왔는데, 창문에 사진처럼 낯선 남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어 사진을 찍어 경찰에 신고했다”며 “혼자 사는 걸 알고 창문을 들여다봤을 텐데, 신상 정보를 알고 있는 건 아닐까 너무 걱정된다”고 호소했다.
이어 그는 본인이 촬영했다는 사진을 공개했다. 공개된 사진에는 창문 너머로 한 남성의 얼굴이 또렷하게 보인다. 붉은색 계통 상의를 입었으며, 얼굴을 창문에 밀착한 채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이다. 다행히 글쓴이가 있는 방 안쪽 창문은 잠겨있는 상태였다.
아울러 글쓴이는 창문 앞에서 발견했다는 벽돌 사진을 공개했다. 그는 문제의 남성이 이 벽돌을 쌓아 밟고 올라서서 창문 안을 들여다봤을 것으로 추측했다. 글쓴이는 해당 벽돌을 발견한 이후 경찰에 이를 치워줄 것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글쓴이는 인터넷에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그는 “경찰에 신고했지만, 신고한 지 20분 넘어서 도착한 데다 집 번지수까지 말해줬는데 집도 못 찾더라”며 “무서워서 창 밖을 제대로 못 봤다는 사람한테 피의자 얼굴을 봤는지, 키는 몇인지 어이없는 질문만 퍼붓고 갔다. 경찰은 정말 도움이 안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경찰 측에 보낸 신고 문자를 공개하기도 했다.
논란은 일파만파 커졌다. 해당 게시글은 올라온 지 하루 만에 조회 수 47만을 돌파했으며, 댓글만 1188개가 달렸다. 네티즌들은 “절대 혼자 집에 들어가지 마라”, “부모님 집으로 도망가라”, “최대한 빨리 이사해야 한다” 등의 댓글을 남기며 그의 안위를 걱정했다.
SNS에서는 ‘#이게_여성의_자취방이다’라는 해시태그가 화제로 떠오르기도 했다. 네티즌들은 해당 문구를 공유하며 자취하는 여성들이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호소했다. 이웃 사람이 성범죄자였던 사례, 집주인이 마음대로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왔던 사례 등 충격적인 이야기가 다수 공유됐다.
YTN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 혼자 거주하는 여성은 520만 명에 달한다. 이 중 10명 중 4명(35.3%)이 주거지 불안을 느낀다고 대답한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의 설문 조사 결과도 있다. 설문에 참여한 대다수는 ‘여성을 노린’ 각종 범죄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고 대답했다.
특히 저층 주택에 홀로 거주하는 여성이 주요 피해 대상자인 것으로 보인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지난해 2월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의 한 연립주택 1층에서 샤워를 하고 있던 여성을 화장실 창문 너머로 몰래 훔쳐본 70대 노인이 경찰에 붙잡혔다.
지난 2015년에는 인천시 부평구의 한 빌라 담을 넘어가 열려 있는 반지하 창문 사이로 20대 여성을 훔쳐본 구의원이 경찰에 덜미를 잡힌 적도 있다. 같은 해 부산시 부산진구 가야동에서는 창문 너머로 물소리가 들리자 여성이 샤워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가스 배관을 타고 샤워실 내부를 몰래 들여다보려던 대학생이 경찰에 체포된 사례도 있다.
건물 1층에서 자취한 경험이 있다는 여성 직장인 이모(26, 부산시 동구) 씨는 당시 경험을 떠올리며 몸서리쳤다. 어떤 남성이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기에 너무 놀라 창문을 닫은 후 현관문을 잠갔는데, 문이 열리지 않자 우유 넣는 구멍으로 손을 넣어 괴상한 소리를 내면서 이 씨를 위협했다고 한다. 부모님과 떠러져 살고 있던 이 씨는 친구 두 명에게 부탁해 그 집에서 한 달가량 함께 생활했는데, 한여름인 당시에도 창문도 열지 못하고 숨죽인 채 살았다고 말했다.
이 씨는 “그 일 이후로 주변에 혼자 산다는 여자가 있으면 여자는 절대 혼자 살면 안 되고, 어쩔 수 없이 혼자 살아야 하는 경우라면 무조건 고층으로 옮기라고 신신당부한다”며 “그때 생각만 하면 온몸에 소름이 돋고 눈물이 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이 같은 불안감을 호소하는 여성들이 늘자, 경찰에서는 여성 1인 가구나 1인이 운영하는 업소가 밀집한 취약 지역을 대상으로 여러 시책을 추진하고 있다. 경찰은 해당 지역 건물 내부에 창문 열림 경보기를 달고, 외부에 LED 보안등이나 여성 안심 거울, 112 신고 위치표지판을 무료로 부착하고 있다.
하지만 다수 여성들은 이를 체감하지 못한다는 반응이다. 대학생 최주연(24, 부산시 남구) 씨는 “주변에 혼자 산다는 친구들은 하나같이 ‘경찰은 못 믿겠다’는 말을 한다. 경찰이 내놓는 정책, 사고 후 대처 방법이 그만큼 못미덥다는 뜻 아니겠냐”며 “매일 올라오는 사건 사고 소식을 보면 여자 혼자 사는 게 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여성들이 믿을 수 있는 제대로 된 대책이 하루빨리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