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체 장애 걸인들도 알고보면 멀쩡한 비장애인
부산 도시철도공사, 2월부터 대대적 단속 나서
“본 제품은 추운 날씨에 딱 맞는 목 토시로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좋습니다.” 지하철에 오른 시민이라면 간간히 이런 잡상인 소리를 듣는다. 어느 누가 제품 좋다며 지갑을 열면, 대개 다른 승객 몇 명이 구매에 가세한다. 그 승객들은 대부분 노년층이다. 인터넷 가격비교 사이트까지 훤하게 꿰고 있는 젊은 층이 지하철에서 환불도 안되고 할인 카드 혜택도 없는 이런 제품을 구매할 리 만무다. 이번에는 한 장애인이 지하철 차안 복판에 섰다. “저는 지체장애인 2급으로...100원이라도 보태주시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장애인은 애절한 멘트로 승객들의 동정을 유발한 다음, 승객들에게 작은 소쿠리를 내민다. 이번에는 젊은이들 몇이 마지못해 동전을 소쿠리에 넣는다. 특히 젊은 여성의 호응이 눈에 띈다. 지하철 상행위나 구걸 행위는 불법이다. 이들을 대하는 지하철 승객들 맘도 편치 않다. 부단한 단속에도 불구하고, 부산 도시철도의 잡상인과 걸인은 근절되지 않고 있다.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부산 시민 김지영(29) 씨는 “출근할 때 본 걸인을 퇴근할 때 본 적도 있다”며 당국이 이들을 막아 주길 바라고 있다. 대학생 박태민(22) 씨도 지하철에서 상인이나 걸인을 만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는 “조용한 지하철 안에 잡상인이 등장하면 정적을 깨 정신이 사납다”며 소음 문제를 지적했다. 부산교통공사에는 도시철도 내 잡상인과 걸인을 단속하고 질서유지를 담당하는 부서가 있다. 이를 ‘영업처’라 부른다. 영업처의 분석에 따르면, 도시철도 내에서 오전에는 잡상인이, 오후에는 걸인들이 기승을 부린다. 잡상인들은 일명 ‘노인 알바’라 불리는 사람들과 함께 움직이는데, 잡상인이 차내에서 물건을 홍보하면 같은 차에 승객으로 가장해 타고 있던 노인 알바들이 물건을 달라고 소리치면서 옆 승객의 구매를 유도한다. 이 수법은 꽤 효과적이다. 지하철을 타본 사람이라면 이런 장면을 한두 번 목격할 수 있을 정도다. 다만, 처음 물건을 사자고 소리치는 사람이 상인과 한통속인 점만 일반 승객들이 몰랐을 뿐이다. 직장인 박지현(31) 씨는 잡상인들의 물건을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 노인들이란 점을 상인들이 노리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들이 주로 물정이 어두운 노인들을 ‘타겟’으로 해서 지갑을 열게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도시철도 잡상인 중 특히 음악 CD 판매자들이 CD 음악을 크게 틀면서 영업행위를 하는 바람에 승객들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한다. 영업처 대리 조정대 씨는 CD를 파는 잡상인을 적발했더니 “너희는 툭하면 파업을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뭘 잘 한 게 있다고 나를 단속하느냐”며 되레 큰 소리를 치는 바람에 곤란에 처한 적이 있다. 대개 CD를 파는 사람들이 소음 문제는 물론이고 행동이 거칠고 과격해서 단속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단속반원들이 말한다. 영업처 단속반들은 잡상인보다도 구걸행위를 하는 걸인들의 문제가 심각하다고 증언한다. 걸인들은 장애가 있는 것으로 위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들의 배후에 ‘어떤’ 조직이 있다고 한다. 직접 돈을 구걸하는 걸인과 그 주위에서 ‘감시’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한 단속반원은 팔이 없는 장애 걸인을 적발했을 때 겪은 황당한 상황을 전했다. 그는 “단속된 장애인에게 신상을 적으라고 했더니, 붕대 속에서 멀쩡한 팔이 나오더라”며 장애인으로 위장한 걸인들은 대부분 적발이 돼도 전혀 당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들은 단속반에 걸리면 무조건 단속반 요원들에게 안겨버리던지 누워버려, 단속반원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고 한다. 지하철을 자주 이용하는 주부 이민정(34) 씨는 “걸인들을 보면 돕고 싶은데, 팔이나 다리에 붕대를 감은 게 진짜인지 의심을 하게 되는 게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대학생 김민경(21) 씨 또한 “팔, 다리를 다친 걸인들은 모두 가짜라고 들었다”며 “측은한 마음보다는 기분이 먼저 상한다”며 고개를 저었다.
원래 작년 10개월 동안 외부 직원을 고용해 도시철도 내 질서유지를 전담했던 도시철도 ‘보안관’ 제도가 있었으나, 예산 문제와 법적 지위 문제가 발생해 현재는 폐지된 상태다. 도시철도공사는 제도적 보완을 거쳐 올 3월부터 보안관 제도를 재시행할 것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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