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많은 부산의 한 지하철역에서 “혼자 여행 왔어요. 여행 경비가 필요하니 도와주세요”라는 서툰 한국말이 들린다. 최근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부산 해운대, 광안리, 서면, 사상터미널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이처럼 유동 인구가 많은 역에서는 서양인 여행객들이 자신이 찍은 사진, 엽서를 펼쳐놓고 판매하거나, 공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여행객들을 ‘베그패커(begpacker)’라고 부른다. 베그패커는 구걸한다는 뜻의 ‘beg’와 배낭 여행객을 뜻하는 ‘bagpacker’의 합성어다.
하지만 베그패커가 친절함을 베푸는 아시아인들의 특성을 악용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혼자 여행 온 서양인 여행객들의 물건을 구매하고 응원하는 등 친절을 베푸는 것에 대해 오히려 이들이 구매를 강요한다는 것이다. KNN의 보도에 의하면, 얼마 전 부산에서 서양인 베그패커들이 택시 운전사의 손에 강제로 깃발을 쥐어주며 돈을 요구한 일이 있었다.
이런 일은 서양인 여행객들이 상대적으로 형편이 좋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아시아권 나라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다. MBN에 의하면, 태국 현지 언론이 최근 방콕 시내 관광지 짜뚜짝 공원에서 서양인 여성이 남편에게 버림받은 자신과 딸이 귀국할 비용이 필요하다며 사진을 판매하는 일이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여성이 며칠 뒤 남편과 함께 태국 유명 관광지에서 다시 구걸하는 모습이 적발됐다고 MBN은 보도했다.
이처럼 강매 수준에 이른 베그패커들의 구걸 행태에 대해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박민정(27, 부산시 동래구) 씨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큰 지하철역에서 베그패커를 흔히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몰려 있는 것을 보고 호기심에 가서 보곤 했지만, 허가 없이 역의 한 길목에서 물건을 파는 것은 민폐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최상훈(53, 부산시 해운대구) 씨는 “얼마 전 뉴스에서 물건을 사줄 때까지 사람을 붙잡고 있는 경우를 봤는데 남의 나라에 와서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동남아 여행에서 봤던 모습을 부산에서 보고 있으니 황당하다”고 얘기했다.
반면, 이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다. 강세형(26, 부산시 연제구) 씨는 “젊은 나이에 저렇게 용기 내서 공연하고 여행 경비를 버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나도 언젠가 무전여행을 떠나서 한 번쯤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일부 네티즌들 역시 베그패커들을 보며 ‘푸른 눈의 청춘’이라고 칭하며 이를 응원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네티즌과 시민들은 베그패커의 도 넘은 구걸 행각에 대해 법적인 제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 네티즌은 “남의 나라에서 베푸는 호의를 우습게 여기고 이를 악용해 돈을 쉽게 벌려고 하다니 화가 난다. 마냥 가만히 둘게 아니라 법적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도 계속해서 이런 일이 잇따르자, 일부 동남아 국가에서는 입국 거부 및 단속 조치를 내렸다. MBN의 보도에 따르면, 태국 이민 당국은 외국인의 구걸 행위가 사회적 문제가 되자 올해 중순부터 자국에 입국하는 서양인 관광객들이 1인당 1만 바트(약 33만 원) 이상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지 단속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