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자 © CIVICNEWS(시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우리가 많이 보았고, 흔히 들었던 ‘영웅’이 나오는 이야기들은 영웅이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어떤 방법으로 위기를 풀어나가는지에 초점이 맞춰진 경우가 많다. 수퍼맨, 헐크와 같이 일반인에게는 없는 초능력을 가진 영웅들은 초자연적이거나 평범한 사람을 크게 웃도는 능력으로 악당을 제압한다. 이순신 장군은 뛰어난 통솔력과 남해의 해류를 이용한 지략으로 승리를 거머쥔 영웅이다.
이러한 구성은 영웅이 등장하는 영화에서도 널리 쓰이는 소재이다. 영웅이 어떤 능력을 사용하는지, 어떻게 극적으로 승리하는지는 영화의 특징인 시각적, 청각적 표현을 최대한 이용하여 관객에게 보여주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많은 영웅 영화들이 시청각적 표현에만 매달려서 영화를 개봉하게 되었고, 결국 직접적인 표현을 잘 한 영화일수록 경쟁력이 높게 되었다. 관객들은 영화를 선택할 때, 얼마나 영상미가 있는가, 컴퓨터 그래픽을 얼마나 섬세하고 현실감이 있도록 표현하는가를 필수적으로 알아차린다.
<다크나이트>는 이러한 일반적인 틀을 깨고 영웅 영화판에 새로운 한 획을 그었다. <다크나이트>의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은 기존의 영화 <배트맨(Bat Man)> 시리즈를 리메이크하며 시청각적 표현이 아닌 영웅과 악당의 캐릭터에 더 집중했다. 감독은 대립할 수밖에 없는 영웅과 악당에게 철학을 더해서 새로운 모습의 캐릭터를 만들었다. 철학을 가진 악당과 철학을 가진 영웅의 대립은 직접적인 표현만 신경 쓴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 희대미문(稀代未聞)처럼 다가온다.
<다크나이트>의 악당 조커(Joker)는 다른 영화의 악당과는 사뭇 다른 캐릭터다. 돈을 목적으로 은행을 털고, 마약을 파는 마피아나 권력을 목적으로 삼는 악당들과 조커는 행동하는 이유부터가 다르다. 조커는 돈도, 권력도, 다른 어떤 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사람들이 겁먹고, 비명을 지르고, 공포에 휩싸이는 것을 보고 싶어 한다. 다른 영화의 악역들은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악을 행하는 범죄자라고 한다면, 조커는 악을 행하는 그 자체에 목적을 둔 악당이라고 할 수 있다.
조커는 개인적인 유희, 오락을 즐기기 위해 사람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그는 폭약을 가득 실은 선박 두 대에 사람들을 태우고, 양 쪽 배에 탄 사람들 모두에게 서로 다른 배의 폭탄을 터뜨릴 수 있는 기폭장치를 주며, 오직 한 쪽의 배에 탄 사람만 살 수 있다고 말한다. 한 쪽이 죽고 싶지 않으면 어서 다른 쪽 배의 폭탄을 터뜨려야 하는 상황 속에 놓인 사람들의 혼란과 공포를 지켜보는 것이 조커의 즐거움인 것이다.
조커는 스스로를 ‘혼돈의 전도사’라고 소개한다. 그는 철저한 계획을 세우며 사는 검사 하비 덴트에게 화상을 입히고 그의 여자 친구를 죽인다. 덴트가 크게 낙심하고, 복수의 칼날을 갈며 입원 치료를 받고 있을 때, 조커가 그를 찾아간다. 악당은 검사에게 “사물의 본질을 통제하려는 너의 시도가 얼마나 딱한 건지 알려줄게”라고 말하며, 자기만의 작은 세상을 통제하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부질없는 일이라 설명한다. 그리고 그는 “혼돈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고 덴트에게 말해 선량한 사람의 깊은 분노를 광기로 바꿨다. 젊고 유능한 검사인 하비 덴트는 투 페이스(Two Face)라는 이름의 악당으로 변모했다.
전례 없는 악당을 마주하게 된 배트맨의 고뇌가 짐작될까? 배트맨은 도시에 떳떳한 영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언제까지고 밤의 자경단이 되어 범죄자들을 소탕할 수는 없었다. 그는 시민들이 배트맨을 의지하는 것보다는 경찰과 검사를 의지하는 것이 더 질서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가면을 벗고, 기업가 브루스 웨인의 모습으로 하비 덴트에게 모금회를 열어주는 등 물질적, 사회적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조커가 떳떳한 빛의 영웅을 악당으로 만들어 버렸다. 배트맨이 계획한 질서들을 조커가 모두 무너뜨렸다.
영웅은 선택해야 한다. 악당에게 굴복할 것인가, 도시의 질서를 지킬 것인가를. 배트맨은 도시의 질서를 지키는 것을 선택한다. 그는 기나긴 접전 끝에 조커를 제압하고, 새로운 악당 투 페이스의 행적을 좇아, 동료 경찰을 협박 중인 덴트를 만나게 된다. 배트맨은 빛의 기사였던 덴트에게 정신을 차리라고 회유하지만, 광기에 사로잡힌 그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
투 페이스가 배트맨이 보는 앞에서 동료 경찰의 아이를 죽이려는 찰나, 배트맨이 그를 덮쳐 아이를 구하고 악당과 난간 밑으로 떨어지게 된다. 배트맨은 살아났지만 투 페이스는 그러지 못했다. 이 상황에서 배트맨은 다시금 질서를 잡는 선택을 한다. 그는 투 페이스의 악행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것을 이용해서 하비 덴트를 빛의 기사로 남기려 한다. 영웅은 옆에 있는 경찰에게 배트맨 자신이 하비 덴트를 죽인 것이라고 세상에 알리도록 부탁한다. 그리곤 자신은 멀리서 들려오는 경찰견 소리의 반대 방향으로 도망치기 시작한다.
선택의 결과는 그의 바람대로 이루어졌다. 시민들은 도시를 위해 희생한 젊은 검사를 기념하는 ‘하비 덴트 법’을 만든다. 그리고 빛의 기사를 죽인 배트맨을 잡기 위해 수사망을 펼친다. 그리고 사람들은 경찰을 더욱 신뢰하게 되고, 도시의 질서가 다시 잡혔다.
악당으로서 완전함을 추구했던 조커와 영웅으로서 완전함을 추구한 배트맨. 이 영화는 격 있는 악당과 격 있는 영웅이 대립하기 때문에 매력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다크나이트>에 열광하는 이유는 배트맨과 조커를 보며 선과 악에 대해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완전한 악과 완전한 선을 보고 난 관객들은 세상을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한지, 자신은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를 생각하며 창문 밖을 바라보고 한 없이 고뇌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