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편의점 천국이다. 어딜 가나 편의점이 눈에 띈다. 편의점은 이제 ‘국민슈퍼’가 됐다. 그 편의점엔 어김없이 아르바이트 생, 즉 ‘알바생’이 있다. 다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학생이 대부분이다. 한 편의점에서 시간대별로 알바생을 따로 두다보니, 한 편의점에 종사하는 알바생은 적게는 대여섯 명, 많게는 열 명도 넘을 수 있다. 편의점 알바가 ‘국민알바’가 됐다.
한국편의점협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4년 현재 우리나라 편의점 매장 수는 2만 5000개를 돌파했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편의점 간의 과열 경쟁이 문제가 되자, 2012년 말 공정거래위원회는 편의점 출점 제한 거리 기준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 기준은 250m 안에 동일 브랜드의 편의점 진출을 금지하는 것으로 이 거리 이내에 다른 브랜드의 편의점 신설을 막지는 못한다. 결국 출점 거리 제한 이후에도 수많은 편의점이 생겼다. 그만큼 국민슈퍼 편의점의 국민알바생도 급증하고 있다. 덩달아 편의점 알바생이 겪는 문제도 늘고 있다.
“주인이 제 부모님 욕까지 해요. 당장 앞치마 던지고 화내고 싶은데, 그러면 동시에 일도 잘리는 거니까 참을 수밖에 없죠. 고등학생들이 담배 안 판다고 욕하는 건 예사에요.” 부산시 북구 덕천동에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던 유동철(22) 씨 얘기다.
편의점 알바생도 감정노동자다. 편의점 이용 고객은 연령대 제한이 없다. 즉석식품을 먹고 치우지 않는 초등학생, 물건 값을 깎으려는 주부, 술에 취한 중년 등 알바생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사람들은 부지기수다. 부산시 남구 문현동에서 편의점 알바를 한 이영아(21) 씨는 고객들에게 무시당하는 일에 익숙해졌다. 이 씨는 “무시당하는데 이골이 났어요. 이제는 그러는가보다 싶어요. 점장님도 제 편이 아니에요. ‘너는 직원이고 여긴 직장이니까 참아야한다’고만 하시죠. 오히려 ‘그렇게 약해서 사회생활을 어떻게 하겠냐’고 해요”라고 말했다.
편의점 알바생들은 감정만 위협 받는 게 아니다. 인적이 드문 심야시간대에 만나는 취객은 신변 안전을 위협한다. 올 1월 14일부터 시행된 가맹사업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라, 6개월 이상 적자가 나는 편의점은 새벽 1시에서 6시 사이의 심야시간대에 영업을 중단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편의점이 적자가 나더라도 매장 이미지를 위해 쉽사리 심야영업을 중단하지 않고 있다.
부산시 사하구 하단동에서 편의점 새벽 알바를 해봤다는 강다현(20) 씨는 취객만 생각하면 지금도 몸서리친다. 강 씨는 “술을 사더니 종이컵을 공짜로 달라고 했어요. 안 된다고 했더니, 옆에 물건들을 던지고 욕을 하는데, 너무 무서워서 말도 제대로 못 했어요”라고 말했다. 강도 침입 등 위급상황 시 버튼만 누르면 112신고센터에 신고가 접수되는 ‘폴리스 콜’이 편의점에 생겼지만, 취객을 대상으로는 폴리스 콜을 누르지 말라고 점주들로부터 교육을 받는단다.
편의점 알바생은 내부에서도 위험 요소를 만난다. 대부분의 편의점은 매장에 많은 상품을 진열하기 위해 창고가 작다. 작은 공간에 물건은 높게 쌓이게 마련이다. 키 작은 여자 알바생들은 좁은 창고에서 높이 있는 상자를 내리다 다치기 일쑤다. 실제로 키가 160이 안되는 김혜지(23) 씨는 상자를 내리다가 머리를 다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김 씨는 “사다리가 있긴 하지만, 급할 때는 까치발을 들고 상자를 내릴 때가 많아요. 그러다 보니 심심찮게 상자가 머리를 박죠”라고 말했다.
화장실 갈 시간이 없는 것도 편의점 알바생에게는 고통이다. 간혹 화장실이 내부에 있는 편의점도 있지만, 대부분은 화장실이 외부에 있어, 알바생들은 편의점 문을 잠그고 나가야 한다. 경남 진주시 가좌동에서 편의점 알바를 하고 있는 장샛별(21) 씨는 화장실을 가려고만 하면 들어오는 손님 때문에 볼일을 3시간 이상 참은 적도 있다. 장 씨는 “아, 이제 다녀와야지 하면, 딸랑하고 문소리가 들려요. 손님 앞이라 이를 꽉 깨물고 참았죠. 거의 울 지경이었어요”라고 말했다.
최근 편의점들이 로또 판매를 겸하면서 알바생들의 ‘볼일’ 문제가 더 심각해졌다. 특히, 로또 1등이나 2등이 나온 ‘로또명당’ 편의점의 토요일 알바생은 화장실은커녕 앉을 틈도 없다. 경남 김해시 동상동에서 편의점 알바를 한 권혜진(21) 씨는 주말 하루에 700만 원 어치의 로또를 팔아봤다. 권 씨는 “사람들이 줄까지 서서 로또를 사요. 제가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7시까지 일했는데, 자리에 앉기는커녕 화장실도 못 갔어요, 그 날은 물을 안 마셨어요”라고 말했다.
편의점 알바생은 무엇보다도 시급 때문에 맘고생이 심하다. 정부가 발표한 2014년 최저임금은 시간 당 5,210원이다. 정부는 여기서 노동자의 인턴기간 3개월 동안은 최저임금의 10%를 고용주가 삭감할 수 있고, 야간 아르바이트 시는 수당의 1.5배를 지급하도록 했다. 하지만 편의점 임금은 점주의 재량이 심한 게 현실이다. 부산시 북구 구포동에서 편의점 알바를 한 정주영(19) 군은 3개월 동안 시급 3,500원을 받고 일했다. 정 군은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점장이 여기는 편하니까 시급 가지고 신고할 생각은 하지도 말라고 했어요. 신고하고 싶어도 나중에 점장이 알게 되면, 불이익을 받을까 봐 못 했죠”라고 말했다.
편의점 사업주들도 나름 고충이 있었다. 부산시 북구 덕천동에서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종은(54) 씨는 편의점 경영주가 되기 전에 직접 편의점 알바를 해봤다. 김 씨가 실제로 편의점을 운영하면서 느낀 것은 편의점 알바생에게 제대로 시급을 지급해 주고 싶어도 적자가 나면 어쩔 수 없다는 점이었다. 김 씨는 “시급을 제대로 챙겨주려고 노력해요. 하지만 알바생 월급보다 제 수익이 덜 나는 것이 현실이죠. 수익이 안 나는 곳은 울며 겨자 먹기로 영업하는 거죠”라고 말했다.
실상이 이렇다 보니, 편의점 알바는 대학생들 사이에서 기피 대상이다. 구직 기회는 많으나 선호도는 낮다. 경남 마산합포구 월영동에 사는 대학생 전다빈(21) 씨는 안전과 시급 등 복합적인 이유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꺼린다. 전 씨는 “웬만하면 하기 싫어요. 음식점, 의류 매장 등 많은 알바가 있지만, 편의점 알바는 감정이 많이 상해요. 아무리 돈을 버는 일이라도 그렇게 무시당하며 일하긴 싫어요”라고 말했다. 또, 덕천동 구대민(23) 씨는 편의점 알바가 미래 경력에 별다른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구 씨는 “막노동이나 물류센터 일보다 몸은 편하겠죠. 하지만 제가 앞으로 나가고 싶은 길에 아무 도움이 안 되는 거 같아요. 담배 이름 하나는 많이 외울 거 같아요”라고 말했다.
편의점 알바생을 보는 일반인들의 느낌도 동정 일색이다. 부산시 해운대구 우동에 사는 한예슬(20) 씨는 “저도 여러 가지 알바를 해본 사람으로 돈을 받고 하는 일이지만, 편의점 알바생들은 안 됐다 싶어요. 알바생이 고객에게 인사해도 무시하거나 빨리 해달라고 재촉하는 사람들을 보면 왜 저럴까 싶죠”라고 말했다. 김해시 삼방동에서 편의점 알바를 했던 고예린(21) 씨는 “업주들과 손님 모두가 편의점 알바를 무시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자신이 겪을 일이 될 수도 있고, 자식들이 겪게 될 일일 수도 있잖아요. 지켜야 할 것만 지켜주면 알바들이 덜 힘들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