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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의 역발상...'캘리그라피'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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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의 역발상...'캘리그라피' 열풍
  • 취재기자 김민지
  • 승인 2014.04.03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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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책 제목 등 컴퓨터 아닌 손글씨로...손편지도 재등장
“꿈으로 가득 찬 설레이는 이 가슴에~ 사랑을 쓰려거든 연필로 쓰세요~” 1980년대 아이돌 스타 전영록은 사랑을 쓰려거든 연필로 쓰라고 노래했다. 그러나 사랑을 전하기 위해 직접 손 편지를 쓰는 사람은 요즘 거의 ‘멸종’되다시피 했다. 카톡과 문자메시지가 소통을 대신하는 디지털 시대에 필기구는 키보드나 스마트폰 자판으로, 편지지는 모니터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직접 붓과 펜을 들고 손 글씨로 마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바로 이색 취미 ‘캘리그라피(calligraphy)’가 등장한 것이다. 캘리그라피란 아름다움을 뜻하는 캘리(calli)와 글씨를 뜻하는 그래피(graphy)의 합성어로 아름다운 글씨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국내에서 퍼지고 있는 캘리그라피는 주로 붓과 펜을 사용하는데, 그렇다고 서예와는 같지 않다. 요즘 유행하는 캘리그라피는 일종의 산업디자인이고 상업적인 서예라고 보면 된다. 캘리그라피의 필기구에는 제한이 없다. 붓과 먹뿐만 아니라, 나무젓가락, 크레파스, 화장용 붓, 페인트 롤러 등 손에 쥐고 쓸 수 있는 물건은 모두 훌륭한 캘리그라피의 필기구가 된다. 현대인들이 잘 쓰지 않는 먹이나 잉크는 글씨 안료가 된다. 1990년대 후반, 캘리그라피는 우리나라에 IQ(지능지수)보다는 EQ(감성지수), 정보 전달 마케팅보다는 고객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감성마케팅이 유행하면서 등장했다. 획일화된 모양의 단조로운 컴퓨터 글씨체의 새로운 대안으로 등장한 캘리그라피에 사람들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컴퓨터 글씨체가 자로 잰 듯 반듯하고 깔끔한 것이 특징이라면, 캘리그라피는 독창적인 스타일로 쓰는 사람의 감정과 함께 글씨가 지니는 느낌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사람들의 감성과 소통하는 캘리그라피는 요즘엔 다양한 분야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영화 남자가 사랑할 때 포스터 ▲KBS-2TV 드라마 비밀 포스터 (사진출처: 영화 <남자가 사랑할 때> 공식 홈페이지) (사진출처: KBS 드라마 <비밀> 공식 홈페이지)
최근 2~3년 사이에 TV 광고나 옥외 간판, 영화 포스터, 책 표지, 방송 프로그램 타이틀 등에 캘리그라피를 사용하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이는 영화나 책 내용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기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KBS 드라마 <비밀>, <상어>, <굿닥터> 등의 타이틀 역시 캘리그라피로 표현되었다. 지난 1월 개봉된 영화 <남자를 사랑할 때>는 배우 황정민이 직접 쓴 손 글씨로 포스터가 제작되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상업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초대장, 메뉴판, 청첩장, 선물에 넣는 메모나 편지 등에 캘리그라피가 사용되면서, 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 캘리그라피가 사용된 다양한 소품들 (사진 제공: 한국캘리그라피센터 강사 송은하)
캘리그라피 전문가들이 설립한 한국캘리그래픽디자인센터의 부산지부 송은하 씨에 따르면, 최근 센터를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사람이 캘리그라피를 배우기 위해 센터를 찾아오지만, 이를 배우는 이유는 제각각이다. 대개 젊은 층은 취업과 연관된 디자인 직무 능력 향상을 위해, 중년층은 창업을 위해 캘리그라피를 배운다. 악필을 교정하기 위해서 오는 학생들이나 직장인들도 있고, 캘리그라피 작품을 이용한 창업이나 공방을 열기 위한 목적으로 오는 수강생도 있다.
▲ 한국캘리그라피디자인센터 부산지부에서 수강생들이 캘리그라피 수업을 하는 모습 (사진 제공: 한국캘리그라피센터 강사 송은하 )
서울의 대학생 노한얼(24) 씨는 취미로 캘리그라피를 배우고 있다. 평상시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던 노 씨는 캘리그라피에 대한 호기심으로 학원 강좌를 수강했다. 한 달이 지난 지금, 그녀는 글의 뜻을 쉽게 전달하면서 미적인 아름다움까지 주는 캘리그라피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녀는 “글자마다 모두 다르고 매력이 있다. 강좌를 들으면서 한글 자체에 대한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고 말했다. 캘리그라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를 배우는 통로도 학원, 온라인 강좌, 카페, 블로그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서적과 인터넷 카페를 통해 캘리그라피를 독학하고 있는 대학생 최푸름(24) 씨는 요즘 지인들에게 직접 쓴 손 글씨를 선물하는 재미로 하루하루가 즐겁다. 처음엔 학생 신분으로 캘리그라피에 필요한 도구 구입이 부담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전문가용 붓이나 재료를 따로 사지 않고 문구점에서 파는 초보자용 딥펜(흔히 나무펜대에 촉이 끼워 있어서 잉크를 찍어서 사용하는 펜)과 붓펜 등으로도 충분히 캘리그라피를 즐길 수 있었다. 최 씨는 마음에 드는 시 구절이나 노래 가사를 엽서에 쓰다 보면 글자마다 자신의 마음도 담기는 것 같다고 느낀다. 그녀는 “내가 속으로 생각하는 것들을 감성적으로 나타낼 수 있으니까 마음 정리도 되고 스트레스도 해소되는 것 같다. 친구들이 내가 쓴 손 글씨를 받고 기뻐하면, 나도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송 씨는 캘리그라피는 스트레스 해소뿐만 아니라 집중력 향상과 감성지수 발달, 창의력 발달과 심신 안정 등에도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배우 조달환 씨는 한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난독증(일상적인 언어생황에 문제가 없으면서도 단어난 철자를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하는 일종의 학습장애) 해결을 위해 ‘캘리그라피’를 배웠다고 고백했다. 그는 붓의 움직임과 글자 모양에 집중해야 하는 캘리그라피를 하면서 차분해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그 프로그램에서 전했다. 초등학생의 정서지능 향상과 감성 표현에 캘리그라피가 도움이 된다는 교육학계의 연구논문도 있다. 송 씨는 “글씨를 쓰면서 내 생각을 담고 집중하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글씨를 쓰면서 호흡을 조절해야하는데, 태교를 위해서 캘리그라피를 배우는 임산부 수강생도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엔 캘리그라피 관련 국가공인 자격증이 없다. 다만, 민간 전문가들이 모여 만든 단체인 한국캘리그래픽디자인센터가 캘리그라피 민간 자격증을 부여하고 있다. 그들은 캘리그라피 작품 활동을 하는 사람을 ‘캘리그라퍼’ 혹은 ‘캘리그라피 작가’ 등으로 부른다. 송 씨는 캘리그라피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있다면 누구나 좋은 글씨를 쓰는 캘리그라피 작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개인의 기본 소양과 전공보다는 장기적인 훈련과 고도의 연습량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녀는 “손 글씨를 통해 내 마음과 생각을 전달하는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다. 소소하게 작은 엽서와 편지에 내 마음을 담아 전달하는 것. 이것이 캘리그라피의 시작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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