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11-01 16:59 (금)
야구 즐기며 돈벌고... 은근한 관중 시선엔 무감각
상태바
야구 즐기며 돈벌고... 은근한 관중 시선엔 무감각
  • 취재기자 최위지
  • 승인 2014.08.26 09: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빅 기자의 배트걸 체험기. 그라운드에서 미끌어져 '낭패' 경험도
올해 프로야구 시즌이 시작되었던 5월, 기자는 일일 배트걸로 활동했다. 배트걸이 어떤 직업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5월 16일 시빅뉴스에 자세히 소개한 적이 있다. 이후 석 달이 지나, 8월에 접어들면서 기자는 다시 배트걸이 되어 사직구장을 몇 차례 밟게 됐다. 야구장의 꽃으로 불리는 직업은 단연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는 치어리더지만, 그라운드의 홍일점이 되어 경기에 직접 그라운드를 밟고 다니는 배트걸도 무척 매력있는 직업이다. 실제로 주변에서 배트걸이 되고 싶다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구인구직 사이트에서도, 야구장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배트걸을 구한다는 공고는 없다. 지난 2012년, 부산 사직구장에서는 롯데자이언츠의 마스코트로 불렸던 신소정 씨가 배트걸 업무를 도맡아 했다. 귀여운 외모로 큰 인기를 끌었던 신 씨는 롯데자이언츠 소속 강민호 선수가 경기에서 홈런을 치고 돌아오면 덕아웃 앞에 서서 하이파이브하면서 더 큰 유명세를 얻었다. 당시 배트걸이 홈런 타자와 하이파이브하자는 것은 롯데 김시진 감독의 아이디어였단다. 하지만 그녀가 배트걸 일을 그만두게 되면서, 그 자리는 공석이 됐다. 인터넷에는 그녀의 행방에 관한 궁금증을 묻는 글들이 많이 올라왔다. 사람이 힘들거나 하기 싫으면 그만 둘 수도 있는 일인데, 이 일은 네티즌들이나 관중들이 야구 경기와 선수들 못지않게 ‘은근히’ 배트걸에 시선을 많이 준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후 롯데자이언츠 측에서는 배트걸을 따로 뽑지 않았다. 대신, 치어리더들이 경기마다 돌아가면서 배트걸 역을 맡았다. 하지만 일손이 모자랄 때는 일일 배트걸을 ‘아름아름’으로 찾아 세우기도 한다. 그때 선택된 일일 배트걸은 주로 치어리더들의 지인들이나 지인의 지인들이다. 별다른 선발 기준은 없다. 그냥 키가 너무 작으면 안 되고, 잘 뛸 수 있으면 된다. 그리고 배트걸 유니폼 여벌이 없기 때문에, 지나친 글래머는 사양이란다. 기자도 롯데자이언츠 치어리더인 김진아(23) 씨의 부탁으로 배트걸에 입문(?)했다. 그게 5월이었는데, 그후 경력이 생겨서 따로 교육시킬 성가심이 없어서인지, 기자는 이후에 종종 일일 배트걸 제의를 받게 됐다. 기자는 평소 야구를 좋아해서 야구장을 자주 찾았는데, 야구를 즐기면서 돈도 벌 수 있으니, 배트걸은 이제 기자의 투잡(?)이 되어 버렸다.
▲ 지난 달 31일, 롯데-두산 전에서 홈런을 친 황재균 선수에게 홈런 인형을 전달하고 있는 시빅기자 배트걸(화면 캡처: 채널 XTM)
배트걸은 1루와 3루에 각각 한 명씩 배치된다. 1루 배트걸은 심판에게 줄 야구공과 선수들에게 줄 로진(선수들이 미끄럽지 않도록 손이나 배트에 묻히는 송진가루)을 챙겨야 하고, 타자가 치고 던진 배트를 주워 덕아웃으로 날라야 해서 무척 바쁘다. 하지만 원정 팀 3루 배트걸은 배트 줍는 일만 하면 돼서 훨씬 수월하다. 지난번에도 소개했지만, 1루 배트걸은 홈팀 선수들과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게 금기(?)다. 아무래도 청춘남녀 사이니까, 홈 게임마다 만나게 되면? 이런 그렇고 그런 이유로 그런 금기가 생겼다고 막연히 추측된다. 그러나 3루 배트걸이 되면, 원정팀 선수들은 말도 잘 걸어주고 배트를 대신 주워서 건네주는 친절을 베풀기도 한다. 그래서 3루 배트걸과 원정팀 선수들 사이의 분위기는 사뭇 부드럽다. 그렇다고 해서 사담을 많이 나누면 아마도 뒷감당(?)이 버거울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데 8월 24일 롯데와 LG 전에서 기자는 3루 배트걸 임무를 맡았다. 그날 LG가 이기다가 롯데가 역전해서 앞서나가는 상황이 전개될 때였다. LG의 한 선수가 기자가 대기하고 있는 쪽으로 와서 선수들이 타석에 들어섰을 때 음악 소리를 낮추든지, 틀지 말든지 가서 당장 이야기하라고 역정을 냈다. 기자는 말하는 척 흉내만 내고 말았다. 롯데구장은 원래 응원열기 빼면 아무것도 없는데, LG 선수가 경기가 잘 풀리지 않으니 괜한 화풀이하는 것 같았다. 배트걸이 그라운드에 나가서 배트를 주어올 때는 전속력으로 달려 나갔다가 돌아와야 한다. 자칫 머뭇거리다 경기에 지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 배트걸의 총총 걸음을 멈추게 하는 방해꾼들이 있다. 야구장의 암적 존재, 술 취한 아저씨들이다. 그들은 이유도 없이 “야! 배트걸!” 하며 고함을 치고, 야구공을 하나만 던져달라고 외치기도 한다. 같이 일했던 고참 볼보이는 “처음에는 일일이 상대했는데, 무시하는 게 상책”이라고 조언해줬다. 이날 롯데와 LG 전에서, 기자에게 '대형' 사건에 터졌다. 이날은 경기 시작 직전까지 비가 세차게 내려서 우천취소가 될 뻔 했지만, 무사히 경기가 시작됐다. 비가 온 탓에 그라운드의 인공잔디가 축축했다. 그게 화근이었다. 이 날 기자는 컨디션이 별로 안 좋아 다리에 힘이 자꾸 풀렸다. 그러다가 7회 초에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배트를 주우러 그라운드로 뛰어나갔다. 그러다가 잔디위에서 보기 좋게 쭉 미끄러지고 말았다. 순간 너무 아찔했지만, 너무 창피하다는 생각에 재빨리 일어나 대기하는 곳으로 돌아와서 얼굴을 감싸고 말았다. 일을 마치고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여러 문자 메시지들이 와있었다. 텔레비전으로 야구 중계를 보던 지인들이 기자가 미끄러지는 것을 봤다면서 괜찮으냐는 안부 문자였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서 야구 중계를 돌려보다가 화들짝 놀랐다. 기자가 넘어진 장면과 대기하는 곳에 돌아와 계면쩍게 웃고 있는 장면 등 기자의 단독 샷이 3분 넘게 중계에 잡힌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인터넷은 더 난리가 났다. 다음날 포털 사이트 다음 스포츠 섹션에 인기 하이라이트 동영상에 기자가 넘어지는 장면만 편집된 동영상이 올라왔다. 그 동영상은 조회수가 무려 30만이 넘었고, 댓글도 100개 가까이 달려 있었다. 악플이 반이었다. "야! 뛰는 연습 좀 해라," "넘어지는 배트걸, 물러가라!" 등등. 배트걸도 공인인가? 갑자기 무서워졌다. 공인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보다.
▲ 시빅기자가 일일 배트걸이 되어 그라운드에 나가서 배트를 주워 돌아오고 있다(화면 캡처: XTM).
야구경기가 마무리되면 배트걸의 하루도 끝난다. 하지만 9회 말에도 승부가 나지 않아 경기가 연장전으로 이어지면, 야구장에 있는 모든 관계자들이 지치기 시작한다. 왕복달리기를 수없이 많이 해야 하는 배트걸도 기진맥진 힘에 부치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경기가 승리로 마무리 될 때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보람을 느낀다. 일일 배트걸로 활동하고 있는 김민아(22, 경남 김해시) 씨는 “힘들어서 배트걸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다가도 또 야구장을 찾게 된다. 배트걸 일은 정말 중독적이다”라고 말했다. 아무튼, 그라운드에서 넘어지고, 악플도 받고, 이날 배트걸 체험은 신나면서 약간 무섭기도 한 경험이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