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의 중심 공간이 이동하고 있다. 원래 부국제는 부산의 전통 도심 남포동에서 태동했다. BIFF 광장도 그래서 남포동에 있다. 2011년 16회 때 거대하고 화려한 부국제 전용극정인 '영화의 전당'이 해운대 센텀시티 지역에 들어섰다. 그후 부산국제영화제의 공간 '권력'이 남포동에서 해운대로 급속하게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4일, 제19회 부국제가 첫 주말을 맞이했다. 금요일인 개천절부터 3일의 황금연휴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영화제를 찾았다. 과연 남포동과 해운대에서는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해운대 '비프 빌리지'는 해운대 해수욕장 한 가운데 위치한 야외무대와 전시장 등 이벤트 장소다. 야외무대에서는 쉴 틈 없이 영화배우들이 등장해 무대인사를 하고 일반인들과 오픈 토크를 진행했다. <명량>의 최민식, <우아한 거짓말>의 김희애, <마담 뺑덕>의 정우성이 비프 빌리지 야외무대에 섰다. 이날 이곳에서는 12회에 걸쳐 각각 다른 배우들이 무대에 섰다. 많은 관객들은 미동도 않고 비프 빌리지 야외무대 근처를 지켰다. 괜히 왔다갔다 했다가는 자리를 뺏기기 때문이었다. 영화배우들이 등장하고 그들이 한 마디 할 때마다 열광적인 함성이 해운대 비치를 가득 채웠다.
야외무대 바로 옆에는 10개 정도의 2층 짜리 비프 빌리지 가건물들이 있다. 이들 가건물들 1층에서는 각종 무료 이벤트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실제 차량에 탑승해 시뮬레이션 화면을 보며 레이스를 펼치는 자동차 게임 체험, 방문객과 해당 업체의 마크가 함께 담긴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면 팝콘을 제공하는 이벤트, 해수욕장 위에 설치된 간이 실내영화관, 사탕 뽑기 기계 등이 비프 빌리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모두가 무료여서 사람들은 한 쪽에 줄을 섰다가 경품을 받으면 또 다른 쪽에 줄을 섰다. 모든 건물의 2층은 바다가 잘 보이는 전망대였다. 의자나 쇼파가 배치돼 있어 사람들은 편하게 앉아 휴식을 취하거나 전망을 즐겼다. 요즘 유행하는 셀카봉을 저마다 손에 들고 삼삼오오 모여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비프 빌리지에서 관객들은 영화의 전당, 벡스코, 여러 영화관 및 호텔을 10분 간격으로 순환 운행하는 무료 셔틀버스를 탈 수 있다. 해운대 어디를 가든 자원봉사자들이 배치돼 있어, 궁금증이나 문제가 생기면, 관객들은 곧바로 이들의 도움을 받아 해결할 수 있었다. 해운대 주위 식당이나 술집, 카페도 자리가 없어 한참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주말을 이용해 부국제가 한창인 해운대를 찾은 직장인 박영일(29, 경북 문경시) 씨는 “탁 트인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멀리서도 영화배우를 볼 수 있는 점이 무척 좋다”며 “비프 빌리지에서 많은 이벤트를 개최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영화 관련 체험을 해볼 수 있는 점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대학생 강정윤(25, 경남 진주시) 씨도 “타지에서 와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익숙지 않은데 무료 셔틀버스가 운행돼 걱정 없이 영화제 행사가 진행되는 여러 곳을 다니며 즐기고 있다" 고 밝혔다.
반면, 남포동은 영화제의 열기가 그리 뜨겁지 않았다. 몇 년 전만 해도 영화제 기간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다가갈 엄두조차 낼 수 없었던 남포동 비프 광장은 조용하다 못해 쓸쓸했다. 광장 중심부에 무대가 설치돼 있었지만, 행사가 진행되는 시간보다 비어있는 시간이 많았다. 이날 비프 광장에서 진행된 영화배우 무대인사는 고작 두 번 뿐이었다. 낮 1시에 하나, 저녁 8시에 나머지 하나의 무대인사가 진행됐다. 행사 간격이 길다보니, 해운대처럼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도 드물었다. 기다려야 할 시간이 너무 길어 잠시 기다리다가 금방 자리를 떠나는 이들도 많았다. 남포동 비프 광장 사거리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빈 무대는 사람들의 통행에 불편을 주는 애물단지 같았다.
남포동에서 영화제와 관련된 행사는 영화기록물전시회가 전부였다. 자원봉사자도 남포동에서는 간혹 한 명씩 보이는 정도였다. 비프 광장에서 한 골목만 벗어나도 남포동에서는 영화제 분위기가 보이지 않았다.폐막 전야제 날, 남포동에서 대규모 플래시몹이 개최된다고는 하지만, 이런 상황이 지속됐다가는 그 행사마저 사람들의 관심을 얻기가 힘들어보였다.
해운대 지역의 영화의 전당과 비프 빌리지에 먼저 갔다가 남포동 비프 광장을 찾은 직장인 강수미(31, 경남 김해시) 씨는 “남포동에 영화제 행사가 너무 없어서 놀랐고 조금 실망했다”며 “해운대에서 대부분의 행사가 진행되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지역의 균형 발전이나 영화제의 역사적인 측면을 생각한다면 영화제의 시작점인 남포동에 지금보다 많은 행사를 분배해 부산 전체가 진정한 영화의 도시로 거듭났으면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