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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밤 KTX, SRT 연착 사고가 나던 시각에 나는 서울 수서역에 있었다. 이날 사고 이후, 30일 낮에는 연착 사고에 대한 각종 비난과 지적 사항들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내가 수서역에서 경험한 지연 연착 사고의 왕짜증 내막은 이렇다.
내가 탈 차는 29일 밤 10시 40분 수서발 부산행 SRT 열차였다. 나는 그날 밤 10시경 수서역 지하 대합실에 들어섰다. 지하철을 타고 수서역에 도착한 승객들은 지하철에서 바로 연결된 수서역 지하 대합실로 오게 돼 있다. 근데 작은 그곳을 사람들이 꽉 메우고 있었다. 그리고 열차 출발 안내판에는 밤 9시 30분 출발 열차가 70분 늦게 지연돼서 출발한다고 적혀 있었다. 가족들의 문자가 오기 시작했다. SRT가 천안 지역 통신장애로 전체 열차들이 지연된다는 뉴스가 뜨는데 내 기차는 이상 없냐는 거였다.
그 순간 10시 40분 내 열차가 2번 홈에서 출발한다는 메시지가 대합실 안내판에 떴다. 내 기차는 통신장애와 상관없이 제 시간에 떠난다는 안도감과 함께 시간을 보니, 시계는 딱 10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기차를 놓지지 않으려고 플랫폼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달려갔으나, 열차가 없었다. 플랫폼 안내판을 보니 그새 10시 40분 기차의 출발 메시지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때부터 분노가 치밀기 시작했다. 정시에 출발한다는 안내판 메시지는 무엇이었나? 메시지가 잘못 떴다면, 왜 정정 안내 방송은 없었나? 그런데 사실은 안내 방송이 있었다. 그러나 스피커가 더위를 먹었는지, 고장이 났는지, 원래부터 볼륨이 그런지, 모기소리만큼 작았다. 안내 방송을 알아들을 수 있는 승객은 아무도 없었다.
지하의 좁은 대합실은 시끄럽고, 덥고, 방송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재빨리 위층 커다란 지상 대합실로 올라갔다. 무언가 그곳이 더 나을 것이란 순간적 판단으로. 그러나 여기도 덥고, 스피커 소리는 역시 아련했으며, 승객들은 승무원들과 고함지르고 싸우고 아우성이었다. 겨우 대합실 빈 의자 하나를 발견하고 앉아서 땀투성이 몸을 식히고 있는데, 대합실 안내판에 다시 10시 40분 열차가 출발한다는 메시지가 떴다. 사람들이 우르르 아래층 기차 타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또다시 열차는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도 안내판 메시지는 다시 어느새 사라졌고, 무언가 안내 방송이 스피커로 나오는데, 그 까마득한 소리를 알아들을 수는 도무지 없었다.
두 번째 허탕을 치고 다시 1층 대합실로 올라온 사람들은 흐르는 땀을 식히며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었다. 안내판이 승객을 완전히 가지고 놀고 있었다. 시간은 벌써 11시를 넘었다. 드디어 직원 한 사람이 대합실 이곳저곳을 돌며 육성으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안내방송이 승객들에게 전달되지 않음을 그제서야 깨달은 모양이었다. 직원은 10시 40분차가 곧 2번 홈에 지연 도착할 예정이며, 열차 내 청소가 끝나는 대로 손님을 탑승시켜서, 11시 40분경에 출발한다고 대합실을 돌아다니며 외쳤다. 안심이었다. 오늘 밤 안으로 부산에 가긴 갈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그런데 왜 그놈의 스피커는 모기소리만 했을까? 그 남자 직원에게 물었으나, 고장이라고만 했다. 대합실 에어컨은 왜 그날따라 그리 더웠을까? 원래 그랬나? 폭염에, 연착에, 찜통 대합실에, 엉터리 안내판 메시지에, 모기소리 안내방송에... 한 시간 동안 수서역 SRT 대합실에서 승객들은 치솟는 혈압에 분을 삭여야했다.
1시간 지체된 기차를 타고 부산 집에 도착하니, 무려 30일 새벽 3시였다. 1시간 이상 지연된 SRT는 다음 기차요금 100%를 할인해 준다(현금 반환은 50%)는 안내문이 왕짜증 중 위안이 됐다. 열차 고장도 문제지만, 사고 대처와 관리는 더 큰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