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천연비누 제조사 대부분 관련자료 공개 기피....국내선 함량 인증기준도 없어 / 신예진 기자
여드름으로 고민하던 직장인 유모(28) 씨는 최근 인터넷에서 어성초 비누를 구매했다. 어성초와 월계수 분말이 함유돼 문제성 피부를 개선해준다는 설명에 마음을 뺏겼다. 천연제품이라 부작용도 없을 것이라 믿었다. “사용해보니 좋더라”는 주위의 입소문도 한몫했다.
그러나 상품을 받아본 유 씨는 황당했다. 어성초 비누 포장 어디에도 천연성분 함량이 표기돼 있지 않았기 때문. 평소 유 씨는 민감한 피부 때문에 화장품의 성분과 함량을 꼼꼼하게 따져왔다. 유 씨는 “온라인에서 유명한 제품을 구매했는데 성분 표시가 없어 놀랐다”며 “효과 여부를 떠나서 사용하기 찜찜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최근 일상생활에서 노출되는 화학성분 위해성을 우려해 천연 제품, 특히 천연비누가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대부분 천연비누에 성분 함량 표시가 없는 등 부실하게 관리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천연비누는 아토피나 여드름 환자가 증가하면서 예민한 피부에 자극이 될 수 있는 일반 세안용품 대용으로 쓰이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은 오픈마켓 판매 천연비누 24개 제품의 천연 성분 함량 등을 조사한 결과를 16일 발표했다. 그 결과 천연비누 24개 중 8개는 ‘천연’이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20개는 ‘천연 원재료명을 제품명에 사용했다. 예컨대 ’파프리카 비누‘, ’어성초 비누‘ 등이다. 또, 7개 제품은 천연비누에 함유된 천연성분의 효능·효과를 광고했다. 그러나 이 모두 천연성분 함량을 표시하지 않았다.
문제는 대부분 제조사가 천연성분 함량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비자원이 관련 자료를 요청한 결과, 단 2곳만 제품의 성분 및 함량에 대한 명확한 자료를 제출했다. 16곳은 자료가 불충분하거나 회신하지 않았다. 기존 비누베이스에 일부 천연성분을 첨가하는 방식으로 천연비누를 제조한 6곳도 비누베이스 성분을 공개하지 않았다. 비누베이스는 비누의 60~90%를 차지한다.
현재 국내에는 천연화장품 인증기준이 없다. 천연비누는 공산품으로 취급되기 때문. 미국, 유럽 등 주요국은 천연화장품에 대해 민간 인증기관의 인증제도를 활용한다. 인증마크 부착이 의무는 아니지만 시장 경쟁력이 있어 사실상 필수 요건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미국의 ‘The NPA Natural Seal’은 수분을 제외하고 제품의 95% 이상 천연성분을 사용했을 때 천연 인증마크를 부여한다. 프랑스의 ‘ECOCERT’은 제품의 95% 이상 천연성분 사용, 5% 이상 유기농 원료 함유가 기준이다. 또, 독일의 ‘BDIH’는 자연 유래 원료만을 사용해야하고 합성 색소·향료·방부제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도 개선의 여지는 있다. 오는 2019년 3월부터 천연제품도 ‘화장품법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화장품으로 전환된다. 이 때 천연화장품 인증제도도 도입된다.
소비자원은 한류 열풍으로 한국 화장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는 요즘 천연화장품 인증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소비자원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소비자 인식에 부함하고 주요국 기준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인증기준을 만들도록 요청할 예정”이라며 “관련 업체에 제품의 필수 표시사항 준수를 권고했고 해당 업체들은 이를 수용하기로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