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건우·윤정희 부부의 ‘인터뷰’ 열정에 감탄·감사
‘통’한 뒤 명함 전하며 “파리 오면 연락 달라” 초대
백건우-윤정희 부부를 최근 부산에서 몇 차례 만났습니다. 제가 맡고 있는 ‘부산이야기’의 인물탐구 코너 ‘차용범이 만난 부산사람’ 인터뷰 때문이지요.
백건우,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피아니스트입니다. 한 작곡가를 잡으면 최선을 추구하는 연주로, ‘건반 위의 순례자’ ‘건반 위의 구도자’ 같은 찬탄을 듣고 있지요. 윤정희, 한 시대를 풍미한 탑 스타입니다. 데뷔 후 7년 동안 300여 편에 출연하고, 큰 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만 24번을 수상했네요. 두 분, 1976년 프랑스 파리에서 결혼, 현재까지 서로의 매니저이자 예술의 동반자로 살고 있습니다. 휴대폰 하나를 둘이 ‘공유’할 만큼, 부러운 부부의 전형으로-.
두 분, 부산직할시 승격 50주년을 기념, ‘베토벤’으로 부산을 찾았습니다. 지난 24일 부산문화회관에서 정말 열광적 반응 얻으며 연주공연 마쳤지요. 저도 그 날 객석에서 공연 감상했습니다만, 과연 ‘백건우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관객들은 그를 또 얼마나 사랑하는지 절감하겠더군요. ‘굉장한 공연’ 즐긴 감흥, 아직도 아련합니다.
사실 저는 이 인터뷰 코너에 백건우를 한 번 모시려 마음 다잡고 있었습니다. 그가 어린 시절 부산에서 살며 예술적 감흥을 키웠다는 얘기 들은 터이고, 부산사람으로 ‘세계적 거장’ 위상을 누리고 있으니 당연한 생각입니다. 그 기회, 너무 쉽게(?) 왔습니다. 이번 부산공연 일정 잡힌 사실 알고 인터뷰 시도한 결과, 덜컥 인터뷰 시간 잡아 연락 온 것입니다. 우리 뉴스제작팀장의 일간지 문화부 기자 시절 인맥과, 부산시립교향악단 담당자의 적극적 의지가 결합, 단번에 백건우의 응낙을 받아낸 것입니다.
약속대로, 기본 질문지 전달한 뒤 장시간의 전화 인터뷰를 하구요. 백-윤 부부가 부산공연 리허설을 위해 부산에 왔을 때, 2차례 더 만나 답변을 확인, 조율하고 사진 몇 컷도 찍었어요. 그들 부부는 하나 같이 “정말 열심히 하신다”며 정겹게 맞아주면서도, 그러나 명함은 주질 않더군요. 크게 신경 쓸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들 부부는 아예 ‘명함이 필요 없는 존재’일 수 있고, 부부가 함께 쓰는 휴대폰으로 연락 주고받으니, 명함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기도 하고.
그러던 백-윤 부부가 공연 당일 명함을 전해 주더군요. 공연 당일 intermission 때 ‘백건우 대기실’에서였습니다. 인터뷰 이후 원고 정리과정에서, 윤정희 선생은 정말 지극정성으로 결과를 챙기더군요. 몇 차례 전화를 걸어오며 답변과 정리 내용을 확인하기도 하고.... 그 결과 이 날 대기실에서 한번 만나기로 약속을 했거든요.
윤 선생이 핸드백을 열며 그러더군요, “차 선생님, 제가 명함 안 드렸죠? 지금 드려야겠어요.” 저는 엉겁결에 “아, 두 분 명함 가지고 계신가요? 주시지 않아도 별 불편할 일은 없습니다만.” 윤 선생이 명함을 전하며 덧붙였습니다, “아, 인터뷰 결과 잘 챙겨 부쳐달라는 그런 부탁 때문은 아니구요. 파리 오시는 기회 있으면 꼭 연락주시라고....” 백 선생도 1부 공연을 마친 뒤끝 땀을 훔쳐내며 “파리 오시면 우리 집에 한번 오세요”라고 거드시고-.
부부의 얘기는 그랬습니다. 인터뷰는 자주 겪는 일상이지만, 이번 부산 인터뷰, 너무 열심히 진행해 주시고, 우리도 함께 큰 관심을 쏟고 그랬다면서, 너무 고맙게 해 주시는데 어쨌든 초대의 뜻이라도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역시, 그들 부부의 명함, ‘백건우’ 명의이되, 휴대폰 번호는 윤 선생이 걸어온 번호 그 하나, 같더군요. “휴대폰도 한 대를 공유한다”는 얘기, 확인한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 저 역시, 이 부부만큼 인터뷰 결과까지 정성껏 챙기는 예를 처음 겪는 듯 합니다.
부부의 정겨운 얘기 들으며 감격, 대기실 빠져 나왔습니다. 2부 공연도 끝까지 즐기며 박수 엄청 쳤습니다. 관객들의 콜이 7-8차례 이어질 땐 합세해서 ‘앙코르’ 고함도 지르고 그랬습니다. 마치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의 소년과 소녀 같은 부부, 색깔은 달라도 각자의 색깔이 더 선명하게 빛날 수 있도록 서로 배려하는 부부, 서로 그렇게 일상에서도 완벽한 화음을 이루며 사는 부부. 백건우는 말합니다, “우리 부부는 원래부터 정해진 짝이 아닌가 싶다”고-.
생각해 보면, 아마도 부부는 이 인터뷰의 구성과 초점잡기 방식에 큰 흥미를 느낀 듯 합니다. 처음엔 그저 부산공연 맞은 계기성 인터뷰인 줄 알았다가, ‘피아니스트 백건우에게 음악의 길을 묻다’ 같은 주제로, 그 ‘길(road)'을 훑는 인물탐구 형식에, 신경 많이 쓰인답니다. 실제 이 인터뷰 제목 한번 보세요.
“음악으로 청중과 함께, 나누고 소통할 때, 난, 가장 행복하다
부산은 ‘마음의 고향’... 가난했으나 아름답던 시절 늘 기억 ...“
이런 제목에 전문 제시하며 인터뷰를 진행했으니, 더러 부담 있었을 터구요. 개인적으로도, “이미 ‘걸어온 길’ 정리하려면 정확하게, 탄탄하게 하자”는 생각도 들었으리라 봅니다. 그래서, 서로의 ‘열정’을 나눠가며 의견을 주고받고, 또 주고받고, 200자 80매 분량의 원고 가다듬기 작업을 함께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글 쓰는 중, 윤정희 선생 또 전화 주셨네요. “Mr. 백의 의견이니 이 부분 좀 보완해 달라”며 몇 가지 코멘트 덧붙입니다. 전화 끝엔 “잠깐 기다리시라”더니 또 백건우 선생 바꿔 인사 나누게 하시고..., 곧 있을 울릉도 저동항과 통영 사량도의 섬마을 콘서트 앞두고, 서울 어느 음악 홀에서 한창 작품 연습 중이랍니다. 이래저래 만난지 그리 오래지 않은 분들과 전화 나누는 재미도 괜찮네요. ‘당대 스타’들의 숨은 속살을 보는 기분도 들고....
그 백건우, 곧 7순 바라보는 나이지만, 앞으로도 빛나는 찬사들을 들어가며 세계최고 피아니스트의 길을 당당히 걸어가기를 기원 드리면서, 명함 한 장 얘기 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