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11-07 16:37 (목)
[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백건우 편②] 백건우 음악, ‘반짝 빛나기’보다 ‘철학과 감수성’ 추구
상태바
[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백건우 편②] 백건우 음악, ‘반짝 빛나기’보다 ‘철학과 감수성’ 추구
  • 차용범
  • 승인 2018.10.16 21: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건반 위의 구도자’ 피아니스트 백건우에게 음악의 길을 묻다 / 차용범
[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백건우 편①]에서 계속

피아노 신동에서 ‘건반 위의 구도자’까지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1946년 5월 10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교회의 오르가니스트, 교사였던 아버지는 서양문화에 조예가 깊은 아마추어 음악가였다. 일찍부터 서양음악에 친숙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8세 때 부산에서. 10세 때 최초의 독주회를 가졌고, 당시 국립교향악단과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으로 협연무대를 가졌다. 15세 때 미국으로 건너가 줄리어드에서 공부했고, 나움베르크 콩쿨, 레벤트리트 콩쿨, 부조니 콩쿨 등의 국제콩쿨에 입상하여 세계적 연주가로 도약할 발판을 다졌다. 1972년 라벨의 피아노 독주곡 전곡연주를 통해 세계무대에 알려졌다. 한 작곡가씩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전곡연주 등의 심도 있고, 무게 있는 연주회를 주로 갖고 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고향인 부산에서 2017년 부산시립교향악단과 특별연주회를 준비하고 있다(사진: 차용범 제공).
Q. 피아노를 익힌 계기는? A. "어렸을 때 부산에서 살며, 서양음악에 친숙한 부모님의 영향으로 피아노를 배웠다. 서양음악에 많은 지식을 갖고 계신 아버님 덕분에, 고전 뿐 아니라 현대곡도 듣고, 음악과 현대무용까지 접촉했다. 프랑스 발레단의 발레도 본 기억이 있다. 피아노를 남보다 쉽게 치고 곡도 빨리 배웠던 듯하다.“ Q. 미국 줄리어드에서 공부하게 된 계기는? "15세 때 미국의 드미트리 미트로폴로스 콩쿠르에 참가, 연습실에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3번을 연주하고 있었다. 이를 우연히 들은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이 콩쿠르 주최 측에 ‘저 아이를 도와주라’고 말했단다. 이후 전액 장학금을 받고 줄리아드 음악원에 입학, 미국에서 음악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Q. 어린 시절 천재성을 감안하면, 젊은 시절부터 권위 있는 상을 휩쓸며 화려한 경력을 쌓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A. “난 그런 것이 참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요즘 너도나도 빨리 성공하고, 빨리 돈 벌고, 빨리 이름을 알리는 것을 좋아한다. 당장 눈에 보이니까. 그러나 그건 마치 파우스트가 자기 영혼을 팔아버리듯 (세속의) 흐름에 휘말리는 거다. 현실적으로 화려할지는 모르지만 거짓된 삶이다.”  

세계적 연주가? ‘자기만의 음악’ 특히 중요

Q. 세계적 피아니스트, 재능인가? 노력인가? 무엇이 필요한가? "사실대로 말하면, 정말 뛰어난 재능을 갖고 음악을 시작해야 한다. 워낙 경쟁이 심하고 나날이 경쟁은 더 심해질 것이니. 재능 위에,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운도 좋아야 좋은 선생님을 만날 수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음악이 있느냐 없느냐다. 음악, 취미로는 권하고 싶어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Q. 미국에서 활동하다가 프랑스로 옮겨 간 이유는? A. “어린 나이에 많은 연주를 하다 보니 내 음악세계에 대해 깊이 생각할 기회 없이, 스스로 모방하는 그런 쪽으로 가더라. 내가 창작가가 되려면, 정말 예술가로서 자기 세계가 뚜렷한 사람이 되려면 이 줄을 끊어야겠다 싶어 유럽으로 갔다.” 파리에서의 첫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그는 프랑스 작곡가 라벨의 곡을 뛰어나게 해석, 또 한 번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젊은 동양인 피아니스트가 선보인 풍부한 레퍼토리와 고전적인 기교, 힘과 서정성을 조화시킨 깊이 있는 연주는 당시 유럽 음악계의 큰 이슈로 떠올랐다. Q. 리스트를 연주하면서 또 한 번 전환점을 맞이했다는데. A. "그렇다. 리스트가 한 개인으로서 성장하는데 굉장히 큰 도움을 줬다. 나는 직접 나서는 것보다는 오히려 관찰하는 그런 스타일이었던 것 같다. 리스트라는 작곡가는 자기 자신을 나타낼 수 있는 그런 성격의 작곡가고. 리스트를 연주함으로써 심리적 변화를 겪었고, 삶에 있어서도 큰 도움을 줬다. 음악적 치료를 받은 셈이다.” 리스트를 통해 한층 성장한 그, 좀 더 폭넓은 음악세계를 청중들과 나누기 시작했다. 청중에게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주고 싶다는 열망이 담긴 그의 음반들은 프랑스의 최고 음반상을 석권하며 대중과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디아파종 상 1992, 1993년, 누벨 아카데미 뒤 디스크 상 1993년).  

학구적·철학적 연주로 ‘건반 위 구도자 ’찬탄

백건우는 한 작곡가의 곡을 깊이 파고드는 연주자로 유명하다. 한 작곡가를 선택하면 철저하게 파고드는 학구적이고 철학적인 연주 스타일.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전곡 연주에 대한 도전으로 이어졌다. 그는 보통 연주자들은 시도조차 꺼리는 베토벤 전곡 연주에 성공하며 세계의 음악계를 다시 한번 놀라게 했다. 콧대 높은 유럽 음악계에서도 이제 그를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인정한다(프랑스 예술문화 기사훈장, 2000년). 하지만 그는 새로운 베토벤, 새로운 리스트는 항상 존재할 수 있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본다. Q. 한 작곡가를 파고드는 이유는? 특별한 계기가 있나? A. “음악은 늘 한 발짝 앞서 나간다. 내가 알고 있는 음악이 이만큼이라면 공부를 하다보면 음악은 더 앞에 가있고, 더 커지고, 더 찬란하고, 더 웅장하고, 그러면서 성장한다. 이제는 나 자신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자신이 생겼고, 진실된 노력의 대가는 틀림없이 있는 것이더라.” 백건우는 어떤 것이든 묘사가 가능한 소리의 세계가 참 신비스럽다고 했다. 새 작곡가의 작품을 하는 이유는 음악세계를 넓혀가고 싶기 때문. 하지만 브람스를 한다고 해서 베토벤을 떠나고 싶은 건 아니다. 베토벤 안에서도 늘 새로운 베토벤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의 말처럼, 그는 늘 평생을 음악 속에서 산다. Q. ‘건반 위의 순례자’ ‘건반 위의 구도자’라고 불린다. 어떤 느낌인가? A. "음악에 종사하는 사람은 누구나 구도자다. 한 작곡가를 탐구할 때는 관련 영화와 책, 그림까지 섭렵할 정도로 몰입한다. 1972년 뉴욕에서 라벨의 독주곡 전곡을 완주한 것을 시작으로 그동안 스크리아빈, 라흐마니노프와 포레, 부조니 등을 연구했다. 2005년부터 3년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곡의 녹음을 완성한 후 7일간 전곡 연주 대장정을 가졌다. 지금은 슈베르트 피아노곡을 재발견 중이다. 슈베르트 음악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곡들이다." 해외언론들이 그에게 붙이는 찬사는 그저 허사일 수 없다. "진정한 비르투오조(Virtuoso: 탁월한 기량을 지닌 연주 명인)", "전설의 유령을 부르는 천둥을 이끌어내는 능력을 지닌 피아니스트", "부조니(독일의 명피아니스트, 작곡가)의 환생".... 프랑스 음악학자 레미 스트리커는 그의 연주를 풀어 평가한다. “그의 테크닉은 완벽하고 그의 연주는 힘이 있다. 그리고 그의 소리는 매우 따뜻하고 아름답다.”  
백건우의 연주는 단순한 건반의 울림을 넘어, 그의 인생관과 음악철학을 아우르는 메시지다(사진: 차용범 제공).

백건우 음악, ‘반짝 빛나기’보다 ‘철학과 감수성’ 추구

백건우, 그에게 유럽 음악계가 깜짝 놀란 사건은 적지 않다. 세계적으로 리스트의 후기 곡들이 연주되지 않았던 1970년대 그는 런던과 파리에서 6회에 걸쳐 리스트의 피아노곡을 선보였고, 베를린 페스티벌에서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라벨 피아노 전곡을 연주했다. 1992년엔 스크리아빈의 소나타곡을 녹음했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당대 최고’라는 찬사를 누린 미국 피아니스트)보다 뛰어나다는 평가가 나왔다. 세계 유명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프랑스의 권위 있는 디아파종상 수상, 프랑스 3대 음악상 수상…. 이후로도 그 명성은 계속 높아졌다. 백건우, 그가 ‘이 시대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사랑받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는 음악에 대한 이해와 연습에 늘 열중한다. 작곡가들을 하나하나 꼭꼭 씹어 섭렵한 뒤 자신만의 해석으로 녹여내는 탁월함도 남다르다. "음악은 거울이다, 거짓이 통하지 않는다. 좋은 음악을 위해서는 타고난 재주뿐 아니라 음악에 대한 태도, 인간성 연마까지 참 갖춰야 할 점이 많다." 그의 말은 음악적 진정성, 그것을 향해 있다. 젊은 시절 반짝 빛나는 연주를 넘어, 철학과 감수성이 녹아 있다. Q. 백건우에게 음악이란? A. "난, 내 인생 전부를 바친 음악에 아직도 샘솟는 열정과 호기심을 느끼고 있다. 음악 속에서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니 거기에 끌려서 살아온 인생, 갈수록 세계가 더 넓어지고 더 궁금해지고, 하고 싶은 게 더 많아져서 걱정이다. 요즘 고민은 전에 보이지 않던 게 보인다는 거다. 하면 할수록 그렇다.” Q. 지금의 음악세계를 구축한 나름의 철학이 있다면? A.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많다. 재주도 있어야겠지만 음악에 대한 태도나 인간성도 중요하다. 음악은 명백한 거울이기 때문에 거짓이 없다. 난, 젊었을 때는 감정적으로 곡을 연주하고 섬세하게 보지 못했다. 이제는 곡을 들었을 때 더 조심스러워지고 음악이 나한테 말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귀를 기울인다. 음악 프로그램을 구성하기까지 시간도 오래 걸린다. 일일이 악보를 만져보고 쳐보면서 구상한다. 다른 음악인들과 얘기를 많이 나누고 조언도 많이 구한다. 반복해서 연주하며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Q. ‘음악은 연주자를 비추는 거울이다’ 연주를 통해 비춰지는 인간 백건우는 어떤 모습인가? A. “내가 아무리 남의 흉내를 내려고 해도 결국은 자기를 그리는 것밖에 안 된다. 우리가 신이 될 수 없고, 인간으로서 인간을 상대하고 인간에게 호소한다. 바로 그것이 음악인 것 같다. 그래서 섬에 살면서 처음 클래식 음악을 듣는 사람들도 음악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연주하는 곡이 독일의 어떤 작곡가의 곡이고, 어떤 화음과 리듬을 사용했다고 설명하려 한다면 섬마을 주민들이 (그 연주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소리(음악)에 인간의 진실한 심정을 담는다면 누군들 이해를 못하겠는가. 그것이 음악이 갖는 힘이고, 그렇기 때문에 음악이 아름다운 것 같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으니까.” Q. 연주 준비 중 피아노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A. "아무리 열악한 상황에서 연주를 포기할 순 없다. 반복해 건반을 누르며 피아노를 길들여 나간다. 어떤 악기가 주어져도 할 수 있는 최고의 공연을 선보이는 것이 관객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디누 리빠띠(Dinu Lipatti)라는 훌륭한 루마니아 피아니스트가 있다. 그 분의 마지막 연주 때 얘기다. 굉장히 몸이 편찮아 의사가 ‘무대에 나가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청중과 약속을 했다’면서 끝까지 연주한 역사가 있다. 나 역시 책임을 다시 느끼고 한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 한다.” Q. 피아노를 하는 후배들에게 한 말씀 조언을 한다면? A.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어 무척 자랑스럽다. 다만, 앞 음악인생을 걸어온 선배로서 걱정되는 부분은 있다. 내가 피아노를 시작했을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재능이 있으면 시작은 쉬울 수 있다. 하지만 자기 재능을 자기가 키워나간다는 것이 참 어렵다. 결국은 ‘개인과 세계’의 싸움이니....” 그는 후학양성에도 관심이 많지만, 음악가들은 시골에서 농사짓는 분께도 배울 점이 있고 외국 여행을 하면서도 배울 수 있다고 강조한다. 폭 넓은 경험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워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의 강조점은 분명하다. “피아니스트는 ‘자기 소리’가 있어야 한다. 이게 있는 사람이 있고 없는 사람이 있다. 아름답다든지, 투명하다든지 자기만의 소리가 있어야 한다.”
[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백건우 편③]으로 이어집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