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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블로거의 연극 관람기, 대부분 붓이 굴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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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블로거의 연극 관람기, 대부분 붓이 굴절된다
  • 취재기자 배혜진
  • 승인 2015.05.10 1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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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기획사 주문 받아 글 올리기 태반..."비판적 글 쓰기 쉽지 않아요"
▲ 서울 동숭동 대학로에서 공연 중인 한 연극. 영세한 공연사들은 관객을 모으기 위해 젊은 층에게 영향력이 있는 블로거들에게 우호적인 연극평을 대가로 요구하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배혜진).
 평소 자신의 블로그에 음반 리뷰와 공연 리뷰를 즐겨 쓰는 정모(24, 대전 대덕구) 씨는 최근 대학로의 한 공연기획사로부터 연극에 무료 초대한다는 온라인 쪽지를 받았다. 그런데 그녀가 자신의 이름과 연락처, 관람을 원하는 공연시간대를 적어 연극 무료 초대를 받겠다는 답장을 보내자, 기획사는 무료 공연 예매가 됐다는 글과 함께 연극 관람 후 블로그에 글을 올릴 때의 요구사항이 적힌 일명 ‘포스팅 가이드’와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그 포스팅 작성 가이드엔 “대학로 OO 아트홀, 예매 순위 1위 연극, 대학로 추천 연극 1위”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고, 보내 준 사진은 한 티켓 예매 사이트에서 그 연극이 예매 1위에 랭크된 것을 보여주는 컴퓨터 화면을 캡처한 사진이었다. 그러니까 무료 연극 공연 초대의 대가로, 공연사 측은 블로그 리뷰 글에 포스팅 가이드처럼 적고 그 사진도 블로그에 올려달라고 은근히 요구한 것이었다. 정 씨는 연극관람 후 기획사에서 요구한 대로 리뷰를 작성했다. 그런데 포스팅 가이드를 따르다 보니, 그녀는 공연에 대해 호의적으로 공연후기를 적게 됐다. 정 씨는 “무료로 본 거니까 좋게 써야 한다는 의무감이 느껴졌어요. 그 공연의 홍보 담당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었죠”라고 말했다. 사실 정 씨는 리뷰를 올리기 직전에 티켓을 제공한 공연기획사에 ‘대가성 여부’를 블로그에 표시해야 하느냐고 질문했고, 기획사 측에선 “표시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 그냥 관람 후기를 남기는 거니 내용은 자유롭게 써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이미 무료 관람을 한 상태에서 그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정 씨는 “연극평을 좋게 써놓고 대가성 여부를 쓰기가 쉽지 않았죠"고 말했다. 이처럼 공연기획사로부터 경제적 대가를 받고 쓴 공연 리뷰가 대가성 리뷰임을 정확히 명시하지 않아 소비자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공정위는 2011년부터 '추천보증 심사 지침’을 시행하고 있다. 지침의 내용은 블로그 등에서 광고주로부터 경제적 대가를 받고 특정 상품에 대한 추천글이나 후기글을 올리는 경우 “위 상품을 추천(보증, 소개, 홍보 등)하면서 특정 회사로부터 경제적 대가(현금, 상품권, 수수료, 포인트, 무료제품 등)를 받았다”고 명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글자 수의 제한이 있어 이를 미처 다 쓰지 못하는 경우에는 “유료 광고,” “대가성 광고”라고 표시해야 한다. 이를 어길 경우, 광고주나 후원주에게 시정 명령과 함께 전체 매출액 대비 2%의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으며, 사안에 따라 형사 고발까지 가능하다. 하지만, 공연 리뷰는 주관적인 감상평이 대부분이므로, 대가성 여부가 표시돼 있지 않으면 대가성 글과 순수 후기글의 구별이 어렵고, 단속도 어렵다. 이름 밝히기를 꺼려하는 한 공연기획사 관계자는 블로거들에게 반드시 대가성 글임을 표시해달라고 말하지는 않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연극 팬의 입장에서, 주부 박순선(50, 부산시 부산진구) 씨는 자신이 봤던 공연 리뷰는 전부 솔직해보였다고 한다. 박 씨는 “나는 (써 있는) 그대로 믿었네요. 생각해보니 전부 최고로 재밌는 연극이었다고 적혔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이러한 홍보성 리뷰는 관객 동원에 큰 역할을 한다. 연극은 대부분 소자본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TV 등의 대중매체에 광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말마다 연극을 즐겨 본다는 유진주(23, 서울 강남구) 씨는 홍보성 블로그 글이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블로그를 보고 관람할 연극을 결정한다. 유 씨는 “블로그 외엔 연극 평을 알 수 있는 곳이 없어 그냥 믿어보자는 심정으로 블로그 글을 읽고 참고한다”고 말했다. 대가성을 표시할 것인지에 대한 블로거들 입장은 어떨까? 하루 평균 방문자수가 7,000명에 달하는 블로그를 운영 중인 직장인 이창민(26, 서울 금천구) 씨는 헤어샵에서 헤어 시술을 무료로 받고 후기를 올린 경험이 있다. 그는 공연 후기글을 쓰게 돼도 대가성 여부를 명확하게 표시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계획아다. 이 씨는 “블로그는 신뢰로 하는 거예요. 제 블로그가 투명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무조건 (대가성 여부를) 표시해야죠"라고 말했다. 이 씨와는 반대로, 광고주가 대가성 여부를 명시하라고 하지 않으면 표시하지 않겠다는 블로거도 있다. 단속에 걸려도 블로거는 사업자로 보기 어려워 처벌 대상이 아니며 대신 광고주와 후원주가 처벌대상이 되고, 무엇보다도 국내 대표 포털사이트는 올해 4월부터 대가성 리뷰는 온라인 상위 노출이 되기 어렵게 시스템을 개편했기 때문이다. 김모(24, 부산시 해운대구) 씨는 “대가성 여부를 표시하면 글을 안 쓰는 것만 못해요. (공정위에) 걸려도 광고주가 책임지겠죠”라고 말했다. 한 사회평론가는 광고주가 블로거에게 대가성 여부를 밝히라고 하지 않는 것은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이며, 블로거 또한 자신이 떳떳하지 않다고 고백하는 행위라며, 대가성 여부를 솔직하게 밝히는 것이 소비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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