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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개봉한 영화 <감기>는 인간에게 전염돼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최악의 바이러스를 소재로 스토리를 전개한다. 바이러스는 실제 사회에서도 구제역이나 조류 인플루엔자 같은 방식으로 종종 나타나는데, <감기>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전염되는 감기가 어쩌면 인류의 존망을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바이러스가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갖게 한다.
하지만 <감기>는 관객들에게 바이러스에 대한 바람직한 수습이나 어떤 깨우침을 주진 않는다. 그저 관조적인 시선으로 그들이 처한 상황을 안타까워하는 것이 전부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사명감이 투철한 소방관, 그리고 감염된 아이와 직업정신 사이에서 갈등하는 의사다. 이들 주인공들의 행동은 그 누구도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기 어렵다. 그리고 도시 전체가 감염된 상황에서 ‘인간 살처분’이라는 충격적인 장면, 도시폐쇄, 비감염자 캠프의 인권유린 등이 처참하게 영화에서 그려지지만, 영화 내에서도, 밖에서도, 어느 누구도 그 상항에서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적절한 답을 제시할 수 없다. 이렇게 <감기>는 바이러스 상황이 너무나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어 관객에게 그저 안타까움만을 준다.
영화의 내용과 구성은 괜찮다. 바이러스와 관계된 인간성 상실이나 이기주의는 기존의 재난영화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포맷이지만, 사회 문제와 개인 문제가 적절히 배치되어 있고, 주인공 외의 조연들의 짧은 스토리들을 통해 바이러스를 겪는 다양한 개인들의 상황을 보여주는 장면은 꽤 신선하다.
<감기>가 개봉된 같은 연도에 출간된 정유정의 소설 <28>이 바이러스라는 비슷한 주제를 다뤘다. 사람들은 이 영화를 접했을 때 소설 <28>이 생각이 날 수밖에 없다. <28>은 개와 사람으로 감염되는 바이러스에 대처하고 사명감을 다하려는 수의사와 소방관, 인간을 증오하는 개,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기자를 주인공을 설정해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이와 비교해서, 영화 <감기>는 특정한 상황에 처한 다양한 개인들의 문제를 다루어 아직 우리가 겪지 못한 극단적인 현실이 사실적으로 피부에 와 닿는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짧은 상영시간 내에 너무 다양한 주제, 혹은 배제되었어도 될 만한 소재가 복합적으로 배치돼 있어 감동적 요소를 강요한다는 느낌도 든다.
많은 주제들 중에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지도자로서의 책임감이었다. 외교적으로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대통령 역이 외교를 포기하고 국민을 살리겠다는 의지는 지도자가 당연히 갖춰야 할, 현 시대에 필요한 지도자의 능력이다. 이 장면은 국가로서 국민에게 해야 할 일, 국가가 생겨난 이유를 깨닫게 하며, 이 시대의 지도자들에게도 큰 깨달음을 준다.
영화가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감기>는 개인보다는 사회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꼬집은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