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연히 SNS에 올라온 현대건설 고(故) 정주영 회장에 얽힌 중동건설 일화를 보면서 문득 친구 생각에 젖었다.
내게는 70년대 열대의 사막 중동과 지하 수백 미터의 서독 탄광에 '외화산업역군'으로 고난의 시절을 보낸 세 친구가 있다. 지금은 모두 70 고희(古稀)를 넘기거나 산수(傘壽) 팔순을 맞았다. 한때 6.3시위 제적과 도망다니는 아픔도 나누었었다. 나는 그때 해직 기자가 되어 하릴없이 거리를 떠돌면서도 늘 그 세 친구에게 존경과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 마음은 40년 세월이 덧없이 흘러간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러저런 때가 되면 전화나 문자를 보내고 안부를 묻고 가끔은 만나 짜장면을 먹고 소주 한 잔 기울이기도 한다. 한 친구는 서울에서 시인으로 활발하게 저술 활동을 하고 있고, 부산에 있는 두 친구 중 한 친구는 여전 열심히 회사 일을 하고 있다. 한 친구는 최근 건강 사정으로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그의 뒷바리지로 아들이 미국 명문 아이비리그 대학의 교수가 되었으니, 모두 다 그 험한 시대를 잘 살아왔고, 또 잘 살고 있는 셈이다. 나름의 성공한 삶이라고도 하겠다.
내가 그들을 친구로서 늘 존경하고 마음으로 후원을 아끼지 않는 것은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이 번영과 풍요를 우리가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어서다. 물론 우리가 60년대 초 소득 70달러의 헐벗고 가난한 빈국의 허물을 벗어던질 수 있기까지는 그 시절을 살며 피땀 흘린 수많은 이땅의 '민초'들이 겪은 엄청난 고난 극복의 역사가 함께하고 있다. 지금 풍요를 누리며 밥을 굶어보지 않은 세대는 그 시대를 알기는 하겠지만 '절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여기에는 또 정주영 이병철 같은 탁월한 경제지도자와 순간순간 힘든 결단을 한 여러 분야와 다양한 계층의 수많은 인재와 국민들의 끈질긴 노력과 희생이 한 박자가 된 '헌신'(獻身)이 당연히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차가운 북풍이 몰아치고 한설(寒雪)이 내리기 시작하는 모진 겨울로 접어드는 계절이다. 나이든 이들 친구들이 얼어붙는 이 겨울을 지나 다시 새봄에 따뜻한 손을 맞잡고 부산역 앞 초량 뒷골목 그 허름한 '중국집'으로 다시 한 번 갔으면 하고 기대한다. 그래서 국민소득 3만 달러, 세계가 놀라는 이 성취 앞에 내 친구들은 그때 그 '짜장면'만큼 행복해 하고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