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삼성자동차 노사가 파국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임금·단체협상 결렬과 함께 노조는 부분파업을 재개했고, 사측은 협상대표가 사임했다. 관련 협력업체들도 일감부족에 따른 경영난을 겪고 있어서 지역경제계의 우려가 높다.
르노삼성차 노조는 지난 9일 25차 임금 및 단체협상 본협상 결렬에 따라 10일과 12일 오전과 오후에 걸쳐 4시간씩 부분파업을 재개하기로 했다. 지난달 8일을 시한으로 1차 집중교섭을 벌여 쟁점을 논의했으나, 9일 협상에서도 합의점을 찾지 못한 것이다.
1차 집중교섭에서 노사는 최대쟁점이던 기본급 인상과 관련해 기본급을 동결하고 성과급을 지급하는 등 일부 합의점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노조가 작업 전환배치 시 노조합의를 새로운 쟁점으로 들고 나오면서 집중교섭 자체가 결렬됐다.
회사는 작업 전환배치 합의안은 인사·경영권에 관한 문제로 노사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맞섰다. 이런 쟁점이 대립하면서 노사는 회사 측에서 수출용 신차 배정을 위한 마지노선으로 정했던 지난달 8일까지 협상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그 이후 르노삼성차 상황은 크게 나빠졌다. 내수와 수출 판매는 지난 3월 1만 2796대로 전년 동기 대비 49%가량 줄었다. 르노삼성차 부산공장 생산물량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닛산 ‘로그’ 물량 역시 지난해 10만 대에서 6만 대로 줄었고, 9월 이후 신형 ‘로그’ 후속물량 배정도 사실상 물 건너갔다.
아울러 내년에 나올 신차 XM3의 유럽 수출물량도 스페인 공장에 뺏길 위기에 처했다. 스페인 공장은 부산 공장보다 파업 위험이 적고 생산성이 높은 것으로 르노 본사 측은 파악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르노삼성차 노사는 지난달 28일부터 2차 집중교섭에 들어가 다시 한번 타결책을 모색했다. 2차 집중교섭에서 노조는 회사에서 일방적으로 전환배치를 강행할 경우 해당 부서장을 징계하고, 해당 작업자는 통상임금의 500% 보상과 위로 휴가를 부여할 것을 수정 제안했다. 회사는 노조 요구에 맞서 글로벌 기준에서 벗어나는 인사·경영권 합의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 과정에서 회사 대표 이기인 부사장이 9일 사임, 물러났다.
이처럼 르노삼성차 노사가 점차 파국으로 치닫자 관련 협력업체와 지역경제계의 시름도 더욱 커지고 있다.
부산상공회의소(회장 허용도)는 최근 ‘르노삼성자동차 파업사태 관련 현황 및 협력업체 모니터링 결과’를 발표해 "부산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르노삼성차가 노사분규로 생산 차질을 빚으면서 지역경제 전반에 타격을 주고 있다"고 우려했다.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 등 지역수출이 급감하고 협력업체들도 고용유지조차 어려운 지경이라는 것이다.
긴급 모니터링 결과, 협력업체들은 15~40%에 가까운 납품물량 감소로 대부분 조업을 단축하거나 중단하고 있다. 또 생산량 감소로 잔업과 특근, 교대근무가 사라지면서 고용유지에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번 조사는 부산지역의 르노삼성차 부품별 주요 협력업체 33곳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르노삼성차에 서스팬션(suspension)을 납품하고 있는 A사는 “최근 납품물량이 15%가량 줄었다”며 “생산 감소로 작업시간이 줄면서 현장 근로자들의 급여도 20% 이상 감소해 퇴사하는 직원이 발생하는 등 생산 현장의 동요가 심하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시트를 납품하는 B사도 “납품시스템이 르노의 생산계획을 실시간으로 반영해 생산을 하는 ‘싱크로시스템’ 방식이라 르노의 차량 생산 감소분 만큼 납품물량도 줄고 있다”면서 “근로자들도 통상임금의 30~40%에 달하는 잔업수당을 받지 못해 불만이 높다”고 하소연했다.
엔진부품을 생산납품하는 C사의 경우는 “자동차산업 경기가 좋지 않은데다 르노의 납품물량마저 40%가량 감소해 최근 300%에 달하는 근로자 상여금을 일괄 삭감하면서 노사 간에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를 담당한 부산상의 조사연구본부 전종윤 조사역은 “르노삼성차는 부산 매출 1위 기업이고 수출도 2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지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기업”이라며 “노조파업 장기화로 협력업체뿐 아니라 지역사회 전체에 미치는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고 걱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