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54개국 자녀 체벌 법으로 금지...법으로 체벌 허용국은 한국 일본 뿐
정부가 최근 ‘부모의 자녀 징계권’을 없애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아동의 행복을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선언한 문재인 정부의 공약에 따른 것이다. ‘부모가 자녀를 교육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는 현행 민법 제915조를 개정해 부모의 자녀에 대한 체벌을 근본적으로 막겠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자녀 체벌 금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되며 ‘부모의 징계권’과 ‘자녀의 안전권’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부모에 의한 아동학대는 꾸준히 증가해왔다. 17일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2017년 아동학대 사례는 총 2만2300여 건이 접수됐다. 이는 지난 2001년보다 10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학대 가해자는 부모가 전체 76.8%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특히 2017년 두 차례 이상 신고된 ‘재학대’ 사례 2160건 중 95%가 넘는 2053건은 부모가 저지른 것이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5일 ‘부모의 징계권 vs 아동의 안전권, 어떻게 볼 것인가’를 주제로 개최한 제1회 아동학대 예방 포럼에서 전문가들은 부모의 체벌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이세원 강릉원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부모의 징계권은 보호자가 아동에게 신체적 고통 또는 정신적 고통을 가해서는 안 된다는 아동복지법과 상충된다”며 “민법상 규정돼 있는 부모의 징계권은 폐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법을 개정하면서 체벌에 대한 사회 통념상 허용되는 예외를 두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복지부는 다음 달 개최되는 제2회 아동학대 예방 포럼에서도 ‘어린이집에서는 학대, 집에서는 훈육, 엄마 기준이 뭐예요?’를 주제로 공론의 장을 마련한다. 포럼을 통해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 차를 확인하고, 체벌의 범위설정을 위한 합의점을 모색할 계획이다.
자녀 체벌 금지법 개정에 대해 시민들의 의견은 찬성과 반대가 팽팽하게 엇갈리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지난달 24일 만 19세 이상 505명을 대상으로 성인 친권자 징계권 개정에 대한 찬반 여론을 조사한 결과 ‘심각해지고 있는 부모에 의한 아동학대를 근절하기 위해 찬성한다’는 찬성 응답이 44.3%, ‘자녀를 가르치다 보면 현실적으로 체벌이 불가피하므로 반대한다’는 반대 응답은 47%로 체벌이 필요하다는 반대 의견이 체벌을 금지해야 한다는 찬성 의견 보다 오차범위 내인 2.7%포인트 높았다.
부모의 체벌을 금지하는 국가는 세계적으로도 확산되는 추세다. 1979년 스웨덴을 시작으로 현재는 세계 54개 국가에서 가정 체벌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체벌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가정 내 체벌을 법적으로 허용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하지만 아베 총리도 최근 체벌 금지법을 추진하고 있다.
스웨덴은 아이가 보호받고 안전해야 한다는 정부의 지속적인 캠페인을 통해 사회적 인식을 바꿨다. 현재는 스웨덴 국민 90% 이상이 어떠한 경우도 아이에 대한 체벌과 폭력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인식하고 있다.
한편 김영주 법무부 여성아동인권과 과장은 아동 학대가 법조문 삭제로만 해결될 문제가 아닌 인식의 변화가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김 과장은 “정부가 체벌을 금지했을 때 국민들이 그 방향대로 이끌어질 것인지는 의문”이라며 “훈육의 제대로 된 방식을 먼저 제시하고 선행되어 국민 인식이 바뀌어야 법이 개정돼도 국민들이 따라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