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오래된 추억이 떠오를 때가 있다. 방학 중 나는 할 일이 없어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초등학생 때, 쉬는 시간에 선생님께서 보여주셨던 <미스터 빈>이라는 영국의 코미디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미스터 빈>은 1990년부터 1995년까지 방영됐지만, 그 이후에 태어난 나도 알 정도로 유명한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빈’이라는 중년 남자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코미디답게 풀어낸 영화다. 처음 접한 당시 초등학생이던 내 생각은 가족이라곤 테디베어 인형 하나가 전부인 중년 남자가 혼자 이리저리 다니며 자기 나름의 일상을 착실히 즐기는 모습이 충격이었다. 마침 심심했던 때라 <미스터 빈>을 유튜브에 검색하니 공식 계정에서 영상이 올라오는 걸 볼 수 있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영상을 보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극장판도 있다는 걸 알게 됐고, 바로 다시 보기 VOD를 구매했다.
<미스터 빈의 홀리데이>란 영화는 빈이 프랑스 여행 추첨에서 당첨돼 프랑스로 휴가를 떠나는 내용을 그린 일종의 ‘로드무비’다. 휴가라기엔 빈이 언제 일했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빈은 캠코더로 자신의 휴가를 기록하고 즐긴다. 빈은 프랑스에 도착해서 또 예정된 일처럼 길을 헤매고, 기차를 놓치고, 레스토랑에서 최악의 식사를 한다. 만약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겠지만, 나였다면 벌써 지쳐서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빈에게 닥친 불행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캠코더로 영상을 찍다가 다른 사람을 기차에 탑승하지 못하게 만들고, 그 사람의 아들을 달래려다 도리어 화나게 만들어 뺨을 맞고, 죄책감에 부자 상봉을 도우려 하다 자신의 짐도 잃어버리고, 돈도 잃어버리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다. 내용만 이렇게 봐선 너무 슬프고 막막한 상황이지만, 빈은 이를 코미디로 풀어낸다. 이런 우여곡절이 있어도 빈은 좌절하지 않고 목적지인 휴양지이자 영화제로 유명한 프랑스 칸으로 향한다.
사실 영화는 코미디 프로그램 <미스터 빈>보다 조금 답답하고 지루한 감이 있다. 미스터 빈은 짧게 25분으로 이루어진 드라마를 90분짜리 극장판 영화로 늘리는 데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지나치게 빈을 곤경에 빠뜨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마무리는 결국 빈이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칸에 도착해 휴가를 만끽하는 모습이 잘 짜인 퍼즐 조각을 맞추듯, 쏙 맞아 들어가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미스터 빈>을 연기한 ‘로완 앳킨슨’은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빈’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미스터 빈을 좋아했던 나로서는 아쉬웠지만, 이참에 로완 앳킨슨의 다른 영화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미스터 빈이라는 드라마는 무려 25주년을 맞았지만, 지금 보면 현시대와 어울리는 점도 많다. 예를 들면, 혼자지만 주위의 시선에 위축되지 않고 일상생활을 즐기는 모습이라든가,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자신의 몫을 착실히 챙겨가는 그의 모습은 요즘 사람들의 모습과도 닮았다. 또, 옛날 방송을 보면 “요즘 TV 프로그램들은 왜 이런 프로그램을 못 만들까?”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든다. 하지만 요즘 시대가 변하고 1인 방송이 늘면서 시트콤을 포함한 개그 프로그램들이 힘을 많이 잃은 것 같다. 우리나라에도 <미스터 빈>과 같이 일상생활을 웃음으로 탈바꿈시켜주는 시트콤 시리즈가 인기를 끌 시대가 다시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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