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과 무소유
법정 스님과 김수환 추기경은 종교간 벽을 허물었다. 법정 스님이 성당에 가서 법문을 하고, 김수환 추기경은 절에 가서 강론을 했다.
그 뒤로 많은 절과 교회와 성당이 따라나섰다. 서로가 예수와 부처의 탄생을 축하하는 인사를 나누었다. 김수환 추기경은 2009년 2월 16일, 법정 스님은 2010년 3월 11일, 1년 정도 시차를 두고 세상을 떠났다. 이들 두 종교 지도자는 종교계를 뛰어넘어 사회 전반에 커다란 가르침을 안겨 주었다.
법정 스님은 ‘무소유’와 ‘버리고 떠나기’를 평생토록 보여 준 분이다.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것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
법정 스님은 어떤 스님한테서 선물 받은 난초 두 뿌리를 정성스레 기른 얘기를 하면서 거기에 일희일비, 노심초사하다가 결국 친구에게 줘버린 뒤 비로소 집착에서 벗어난 얘기를 썼다.
‘비로소 나는 얽매임에서 벗어났다. 날듯 홀가분한 해방감. 떠나보냈는데도 서운하고 허전함보다 홀가분한 마음이 앞섰다. 이때부터 나는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고 다짐했다. 난을 통해 무소유의 의미 같은 걸 터득하게 됐다고나 할까.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
1976년, 이 글이 포함된 에세이집 <무소유>가 출간됐다. 이 에세이의 제목 <무소유>는 법정 스님의 일부, 법정 스님 그 자체가 됐다. 이 책은 179쇄를 거듭한 우리 시대 최고의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김수환 추기경이 생전에 이 책을 두고 ‘아무리 무소유를 말해도 이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다’고 했다.
법정스님의 독서욕
법정스님이 전남대 상과대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출가를 결심한 1955년(24세)부터 10여 년간 사촌동생과 주고받은 미공개 편지글이 책으로 나왔다. <마음하는 아우야!>가 그것이다.
반세기가 지나 누렇게 색이 바랜 우편봉함엽서와 원고지에 쓴 편지에는 고뇌하는 젊은 수행자의 육성이 생생하게 들어 있다. 이 책에서 눈길을 끄는 것 중의 하나는 동생 박성직에게 구해달라고 하거나 읽어보라고 권유한 책들이다. 20대 청년 박재철(출가하기 전 이름-법정스님의 속명)의 다양한 독서 의욕과 고뇌를 볼 수 있다.
-<현대문학> 9월호가 나왔거든 신자네(고모님 딸) 누님한테서 돈 꾸어서 사 보내 주었으면 쓰겠다. (1955. 8. 12.)
-앞으로도 좋은 책을 많이 읽어라. 이태준 씨의 작품은 모두 훌륭한 것들이다(지금은 북쪽으로 가 계시는 분이다). 이름 있는 작가의 것을 골라서 읽어야 할 것이다. (1957. 10. 7.)
-내 책장에서 읽을 만한 것을 골라서 읽고 잘 보존하여라. 나프탈렌을 넣어두면 좀이 들지 않을 것이다. <원효대사>를 구해서 읽어라. (1958. 5. 13.)
-괴로움을 뚫고 기쁨으로! 라는 베토벤의 철학. 고난 속에서도 훌륭한 음악을 탄생시킨 베토벤! 나의 젊은 날의 스승이여! 책장 속에 로맹 롤랑이 쓴 <베토벤의 생애>가 있을 것이다. 아직 안 읽어보았다면 읽어 보아라. (1958. 9. 19.)
-마하트마 간디는 내가 존경하는 인물 가운데 하나다. 너에게도 많은 공감이 있을 것이다. (1959. 5. 1.)
-서울법대에 계신 황산덕 교수께서 지난해 여름부터 나에게 <사상계>지를 보내 주고 있다. 거기에서 유달영 선생님과 함께 함석헌 선생님의 글을 감명 깊게 읽을 수 있었다. (1959.10.11)
-어떤 위치에 있든지 책과 펜만은 놓치지 말아라. 책을 항상 가까이 하여라. 어떠한 위치에서나 인간성장을 쉬어선 안 될 것이다.
-인생은 상품거래 같은 장사는 아니다. 얼마의 밑천을 들였기에 얼마를 벌어들여야 한다는 것은, 인간을 생명이 없는 상품으로 오산하고 있는 것이다. 그저 성실하게,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내려 봐도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1961. 9. 12.)
-일체의 생활에 진실이면 통한다. 설사 눈앞에 손해 볼 일이라 할지라도 진실이면 그만이다. 결코 거짓된 것과 비굴에 타협하지 말아라. 가령 연애에도 진실이 아니면 그건 죄악이다. 무슨 일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진실하여라.
-거짓 없이 너에게 말하마. 형은 금생뿐이 아니고 세세생생 수도승이 되어 생사해탈의 무상도를 이루리라. 고통의 바다에서 헤매는 내 이웃을 건지리라. (1959. 3. 10.)
법정 스님은, ‘불교의 종교적인 면은 나를 질식케 하지만 철학의 영역은 나를 젊게 하고 있다’라고 고백했다. 수도자로서는 자신에게 가혹하게 철저했다. 법정 스님은 ‘장례식을 하지 마라. 관도 짜지 마라. 평소 입던 무명옷을 입혀라. 내가 살던 강원도 오두막에 대나무로 만든 평상이 있다. 그 위에 내 몸을 올리고 다비해라. 재는 평소 가꾸던 오두막 뜰의 꽃밭에다 뿌려라’라는 유언과,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된 모든 책을 출간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긴 채 2010년 3월 11일, 세수(세상의 나이) 79세, 법랍(출가한 햇수) 55세로 길상사에서 입적(불교에서 죽음을 일컫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