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자연 함부로 대할 권리 있나?"... 인간 '자연정복 광기' 다룬 영화 '폼포코'
부산시 연제구 조윤화
승인 2020.06.01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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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인간은 인간답게가 아니라 동물같이 죽는다”고 헤밍웨이는 말했다. 각자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아왔든지 간에 생의 끝에 선 모든 인간은 동물보다 특별할 것 없는 죽음을 맞이한다. 인간중심주의를 유쾌하면서도 신랄하게 비판하는 영화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을 본 뒤, 인간의 몰염치함을 꼬집는 헤밍웨이의 말이 떠올랐다.
영화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은 인간의 신도시 개발로 삶의 터전을 잃게 된 너구리들이 본래의 땅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유쾌하게 담은 영화다. 영화 속 너구리들은 조상부터 전해 내려오는 특별한 ‘변신술’을 이용해 인간들에게 자연의 위대함을 일깨움으로써 신도시 건설을 중단시키고 숲을 되찾으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너구리들의 변신술은 ‘테마파크를 홍보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인간 자본가들의 거짓말 앞에서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다. 또한, 인간에게 저항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던 변신술은 숲에서 인간을 몰아내려는 너구리들의 계획이 실패하게 되면서 본성을 버리고 인간세계에 융화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영화는 “인간이 자연을 함부로 대할 권리가 있는가?” 관객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늙은 너구리 오로코 할멈은 인간의 개발이 이뤄지고 있는 민둥산 언덕을 가리켜 ‘광기의 언덕’이라고 불렀다. 근대인들은 자연에 대한 정복을 인간 이성의 위대한 승리로 이해하고, 이성적이지 못한 많은 것들에 ‘광기’라는 이름표를 붙였다. 그러나 너구리들이 보기에 멀쩡한 산을 깎는 등 자연을 파괴하지 못해 안달이 난 인간이 광기에 사로잡힌 것처럼 보인 것이다.
영화 초반, 나레이션(“나무를 베어내고, 산을 깎아 평지를 만들고, 논밭을 메우고 옛집을 부숴~”)과 함께 굴착기를 비롯한 중장비가 나뭇잎을 갈아먹는 연출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아무런 죄의식 없이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을 ‘자연을 갉아먹는 벌레’에 비유하고자 했던 감독의 의도가 드러난 장면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 영화는 도쿄의 ‘다마뉴타운건설계획’이라는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일본 정부는 고도 경제성장 시기였던 1965년 도쿄로 몰려오는 사람들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심에서 1시간가량 떨어진 농촌지역에 다마뉴타운 조성 계획을 수립했다. 애초 40만 명을 수용할 수 있을 거란 건설 계획과 달리 현재까지 다마뉴타운에 남아있는 인구는 22만 명을 겨우 넘는다. 주택 수요의 중심이 도시 교외에서 도심으로 역전되고, 뉴타운에 동시에 입주한 동일세대가 고령세대가 되면서 다마뉴타운은 고령화 현상과 더불어 빈집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경제성장 시기 무분별한 개발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이익을 위해 자연과 동물의 삶의 터전을 파괴하는 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시절은 지나갔다. 이제 자연과의 공존을 위해, ‘폼포코의 너구리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되돌려 줄 수 있을지 고민할 시점이다.
*편집자주: 위 글은 독자투고입니다. 글의 내용 중 일부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