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과 조카들과 함께 가족 모임을 갖고 가족애를 느끼다
미주리 동문회에서 공로패를 주어 감사히 받다
서울의 미주리대학교 동문회 회장인 국회의원 노웅래 의원이 2015년 망년회 모임 초청장을 보내왔다. 노 의원은 한국 동문회에서 나에게 공로패를 준비했으며, 또 옛날 제자들이 모셨으면 한다는 간곡한 뜻을 전해와서, 나는 고맙게 그 뜻을 받아들여 보내 준 비행기 표로 그해 11월 25일 서울로 갔다.
물론 제자들이 초청한 송년 모임에도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나는 나 혼자 가는 이번 여행 중에 어느 친구가 보내 준 편지에 제안한 것처럼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가식 없는 '나'를 집 밖에서 살펴보는 것, 나의 내면의 소리를 들어보는 것, 그런 의미를 찾는 여행을 하고 싶어서 글자 그대로 나 혼자 만의 여행을 계획했다.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에서 중요한 것은 세상 속에서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내가 잘하는 것, 못하는 것, 내가 꿈꾸는 것, 내가 버리고 싶어 하는 것, 내가 앞으로 몇 년 동안 하고 싶어 하는 것, 내 인생에서 놓치고 있는 중요한 것을 찾고 싶었다. 그리고 나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나를 중심으로 한 주변 인물관계를 살펴보아야 한다. 세상은 나 혼자만 있는 게 아니다. 나 다음으로는 처와 가족이 있고, 그 다음으로는 친구들이 있다. 은퇴인인 나에게 미국이나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등의 이슈는 별로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서울로 떠나는 아시아나 380 비행기는 11월 25일 아침 11시에 출발했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나는 비행기 좌석이 상당히 많이 비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놀랐다. 나는 2층 77번 J 와 K 두 자리를 차지하고 편안한 여행을 했다. 낮 비행기를 예약해서인지 아무리 잠을 청해도 두 눈이 말짱한 상태로 잠이 오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낮 비행기가 인기가 없는 이유를 알았다.
그러나 빈자리가 많아서 승무원들의 느긋하고 친절한 대우를 받았으며, 처음으로 한국영화를 세 개나 연속으로 보면서 눈물도 흘리고 아주 큰 감동을 받았다. 나는 원래 서양 영화도 좀처럼 보지 않았고 한국 영화를 더더욱 볼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 비행기에서 본 한국영화들은 한국영화에 대한 나의 인식을 전부 바꾸었다.
처음 본 <국제시장>은 한국에서 1000만 명 이상이 보았다고 하는데, 이 영화의 주인공이 나보다 겨우 몇 살 뒤였다. 흥남부두 철수 당시 나는 중학생이었고 부산까지 피난을 가지 못하고 고향 충북에 머물러서 영화 속의 당시 부산 정경은 생소했지만, 서독 광부의 어려웠던 사정과 월남전쟁에 가서 한 쪽 다리를 잃고 돌아온 주인공의 어려웠던 시절은 눈물이 나도록 감동스러웠다.
두 번째로 본 <장수상회>는 남 주인공이 자기 부인과 가족들을 완전히 잊어버리는 치매에 걸려서 헤매는 사정을 그렸는데, 남일 같지가 않았다. 내가 좀 아는 조영남의 전 부인이었던 윤여정의 뛰어난 연기는 내 눈물을 하염없이 흐르게 했다.
<장수상회>의 스토리는 이렇다. 온 동네가 바라는 첫사랑이 시작된다! 틈만 나면 버럭대고, 융통성이라곤 전혀 없는 까칠한 노신사 '성칠'은 장수마트를 지켜온 오랜 모범 직원이다. 그는 해병대 출신이라는 자부심은 넘쳐도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나 다정함 따윈 잊은 지 오래됐다.
그런 성칠의 앞집으로 이사 온 고운 외모의 '금님'은 퉁명스러운 성칠의 태도에도 언제나 환한 미소를 보여주는 소녀 같은 모습에, 성칠은 당혹스러워하고, 그런 그에게 금님은 저녁을 먹자고 제안한다. 무심한 척했지만 떨리는 마음을 감출 수 없는 성칠! 장수마트 사장 ‘장수’는 비밀리에 성칠에게 첫 데이트를 위한 노하우를 전수하고, 성칠과 금님의 만남은 온 동네 사람들은 물론 금님의 딸 ‘민정’까지 알게 된다. 모두의 응원에 힘입어 첫 데이트를 무사히 마친 성칠은 어색하고 서툴지만 금님과의 설레는 만남을 이어 간다.
그러던 어느 날, 성칠이 금님과의 중요한 약속을 잊어버리는 일이 발생하고 뒤늦게 약속 장소에서 금님을 애타게 찾던 성칠은 자신만 몰랐던 그녀의 비밀을 알게 된다. 인생에 가장 빛나는 순간 시작된 러브 스토리 마지막 사랑의 비밀이 밝혀진다.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 했다는 이 영화가 나 같은 노년층에게 좋은 영화였다.
그리고 마지막 본 영화 <세시봉>은 내가 미국으로 유학가기 전에 가 본 세시봉에 관한 기억과는 다랐지만, 끝까지 다 보았다.
서울에 도착하니 옷을 많이 입고 왔지만 생각보다 한국이 춥다고 느꼈다. 마치 한국전쟁이 난 1950년 한강이 얼던 기억을 되살리며, 나는 그동안 너무 덥고 따뜻한 곳(미국 LA 인근)에만 있었으니 이번 기회에 추운 맛을 톡톡히 보려고 한다.
서울 아들 집에서 첫날밤은 시차 때문에 예상대로 새벽 3시에 눈이 떠졌다. 일어나자마자, 나는 짐을 대략 정리했고, 날씨가 좋으면 새벽에 뒷산과 동네를 걷는 습관이 있는데, 그날은 날씨가 너무 차서 여행기를 썼다. 아침에 일어나서 동네 목욕탕에 가려고 해도 추운 날씨에 버스가 언제부터 다니는지도 모르니 참고 있다가, 6시에 방배로에 나가자, '은성 설렁탕'이라는 아주 깨끗한 설렁탕 집이 있어서 도가니탕을 1만원 주고 먹었다.
아들 집 Wi-Fi로 내 전화기에 연결하니 미국 지인들에게 카카오톡으로 연락도 할 수 있고, 또 내가 가지고 온 노트북을 편리하게 쓸 수 있으니, 역시 한국은 인터넷에 관한 한 미국보다 앞서 가는 IT 강국이다.
점심에 약속한 대로 교대역 근처에 있는 미따니요(三谷屋)에서 나의 제일 가까운 친구 '만조'를 만나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나누었다. 만조는 친구 재만이의 건강이 아주 안 좋고, 장규나 종형이도 만나지 못한다고 했다. 만조는 일주일에 세 번 투석을 하고 있는데, 그 어려운 건강 사정을 자세히 들었다. 만조는 이미 팔 순 잔치를 했다. 그는 나와 우리 친구 모두가 건강을 잘 챙겨야 된다고 말하면서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한 번 더 만나자고 했다.
나는 대학 친구들과 한일장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어서 가는 길에 서울 클럽에 들려 커피 한 잔 하려고 들렸다가, 중학교 선배인 김성웅 선배 내외와 딱 마주쳤다. 그동안 자주 연락도 못 드렸고 이번에 서울 온다고 전화도 못 드린 점을 사회하면서 우리는 참으로 세상은 좁다고 말하며 서로 웃었다.
일요일 점심에 막내 남동생 원철이가 주선한 가족 모임이 상록원에 있어서 우리 가족 30명이 모였다. 나는 조카 은정이가 결혼한 새 신랑을 만났고, 종근당에 입사한 다른 조카 은영이가 회사에서 만난 청년과 2월 27일 결혼식을 올린다고도 발표해서 모두 축하해 주었다. 그리고 내일이 원철이 생일이라고 생일파티를 겸하여 저녁 값을 원철이가 냈다. 나도 내고 싶었지만 우물쭈물하다가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나는 다음 기회에 한 번 동생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이 가족 모임에 아들 철준이 내외와 손주 윤석, 하은이를 데리고 갔다. 둘째 동생 원흥이는 하연이와 두규 두 아들을 데리고 왔고, 셋째 동생 원일이 내외는 큰아들 철민이 하고 왔다. 셋째 동생 원식이 내외는 철희와 딸 나영이를 되리고 왔으며, 다섯째 동생 인순이와 여섯 째 동생 경자는 아들 원석이 내외가 손자를 되리고 왔으며, 일곱째 동생 원철이, 그리고 막내 동생 영자는 두 아들이 미국에 있어 남편 해창이와 왔으니, 실로 엄청난 식구들이다. 오늘 참석 못한 식구를 총망라하면, 군대 일개 소대 45명이 넘는다고 누가 말했다.
점심을 먹고 집에서 쉬다가 저녁에는 서울 클럽에 가서 식사를 했는데, 오늘이 아들 철준이와 며느리 다미의 결혼 13주년 기념일이라고 한다. 훌륭한 결혼생활 13년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겨울에 서울을 찾은 건 처음이었지만, 이렇게 가정의 축복스런 기념식에 참석한다는 것은 정말로 흐뭇하였다.
월요일 점심에는 김성웅 선배와 롯데 백화점 안에 있는 Aqua 식당에서 정식을 들었는데, 이렇게 고급요리의 값이 얼만지 모르지만 대단한 식사였다. 점심을 먹으면서 지난 3년 동안 못 만난 친구들의 이야기로 꽃을 피웠으며, 나는 <50달러 미국 유학> 책을 드렸고, 김 선배는 요즘 방영하는 드라마 <징비록>을 다른 이름으로 송복 교수가 출간 한 <서애 류성룡: 위대한 만남>이라는 책을 선물로 나에게 주었다.
서문을 읽어 보니, 이 책은 400년 전 위대한 류성룡이 이순신 장군을 발탁하여 임진왜란이라는 난국을 극복한 아프고 어려웠던 역사를 정리하면서 지금 현실이 그때와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지금 우리에게는 류성룡도 없고 이순신도 없다는 탄식이 절로 나오는 듯했다.
저녁은 예약된대로 동대문 근처의 Marriot Hotel에서 제자들인 노웅래, 유석렬, 조영하, 박종민과 함께, 미주리에서 공무로 한국을 찾은 김상순과 안 솔로몬(Ann Solomon)을 만났다. Ann Solomon은 1982년에 저널리즘 스쿨을 졸업하고 지금은 미주리 대학의 International Enhancement Director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대만과 홍콩에 가는 길에 한국에 들려 한국 미주리 동문회 파티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했다.
엄청난 규모로 지은 이 호텔을 나는 처음 보았다. 지하철 4호선 9번 출구로 나가니. 바로 호텔 지하로 연결되는 이 엄청난 호텔을 보고 한국 경제의 규모가 매년 달라진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이번 여행 목표 중 하나는 아들 철준이 사무실을 가보고 또 태평양 법무법인의 대표 변호사인 오양호 변호사를 만나는 것이었는데, 마침 오양호 변호사가 점심에 초청하여 점심을 같이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철준이 사무실을 돌아보면서, 이 법인체 속의 철준이의 역할을 대략 짐작할 수 있었으며, 그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철준 이를 너무 자랑스럽게 보았다.
이번 여행은 재한 미주리 총동문회의 회장인 마포 갑구 노웅래 국회의원이 주선한 공로패를 받는 것이었다. 저녁 시상식에는 철준이 내외와 동생 영자, 그리고 동생 원흥이도 참석했고, 약 120명 정도가 모였다. 그중에는 많은 저널리즘 제자들이 참석했다. 임상원, 정만수, 이민규, 우병동, 강승구, 이종민 교수들과, 언론인으로서는 LG AD 사장 김종립, 이용식 문호일보 논설실장, 허인구 미디어 클리에티브 사장 등이 참석하여 나의 시상을 축하해 주었다.
나는 간단한 인사말에서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고맙고 반가우며, 팔순이 되어서야 철이 들어 지난 날을 되돌아보며 많은 분들에게 좀 더 잘 해주지 못한 것을 후회하면서, 앞으로는 좀 더 가깝게 지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나는 이 자리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을 알고 있다는 엄청난 복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일행은 식이 끝나고 무교동 맥주집에 가서 2차로 맥주를 마시면서 헤어지기를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