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친구에게 우연히 한 작가를 추천받았다. SNS에서 유명한 작가인데 내용이 가볍지 않고 글 하나, 하나가 좋다고 했다. 이번에 책도 냈다며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읽어보라고까지 권유했다. 그렇게 알게 된 작가가 박근호 작가다. 솔직히 처음에는 선입견이 있었다. ‘모두가 SNS에서 감성을 외쳐대고 있는데 특별한 게 있나?’ 하는 생각이었다. 명색에 신문방송학과에 다니고 있었으면서 SNS가 가진 이미지에 강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박근호 작가의 SNS에서 글을 읽고 나니, 당시 신작이었던 <우리가 행복해질 시간은 지금이야>를 고민도 하지 않고 구매했다. 그리곤 이전에 낸 책들까지도 모두 읽었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박근호 작가는 내 좁은 시야를 깨뜨린 최초의 작가다.
박근호 작가의 글을 읽으며 내가 등한시여겼던 ‘사랑’이라는 가치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고 조금은 더 긍정적인 자세를 취하게 됐다. 이전에는 ‘사랑이 밥 먹여 주나’라는 시니컬한 입장이었다면 이제는 ‘사랑이 있으니까 살아가는구나’하고 생각이 도약한 수준인 셈이다. 이렇게 바뀌게 된 건 글에 담긴 작가의 태도 덕분이다. 사람과 사랑을 대하는 태도에서 느껴지는 깊이와 따뜻함이 글에 그대로 전해져서 읽는 사람에게 전해진다.
그 작가가 최근 신작을 냈다. <미친 이별>이라는 산문집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산문집이 그간 책 중에 가장 좋았다. 책을 처음 폈을 때부터 멈출 수가 없어서 다음날 새벽녘이 되어서야 눈이 퉁퉁 부은 채로 책을 덮었다. 이 책을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역시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사랑이라고 해서 연인 간의 사랑만이 아니라 작가가 마음을 주었던, 주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사랑이다. <미친 이별>이 특히 좋았던 것은 이전에 읽어왔던 작가의 글보다 이번이 더 성장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글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는 내가 무얼 알겠냐마는 한 명의 독자로서 박근호 작가의 글이 좀 더 진솔해졌고 한 페이지, 한 페이지에서 사람을 멈추게 만드는 힘이 늘었다고 느끼게 됐다.
<비디오>라는 제목의 글을 이번 산문집 중 가장 좋아한다. 그건 이 글의 마지막 부분 때문이다. 마지막 문단을 읽고 꽤 오랫동안 멈춰서 울었다. ‘언젠가 어떤 상상을 할 때 가장 행복하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건 죽음 이후에 대한 상상이다. (중략)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모두가 한 마을에 같이 살고 있는 것이다. 가장 젊고 가장 건강했던 모습으로. 아주 큰 식탁에 미리 준비해둔 내 자리에 앉아 다 같이 저녁을 먹으며 우는 상상을 한다. 그 상상이 가장 행복하다.’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 슬픔, 애정이 따뜻하고 강하게 나를 덮쳤다. 그리고 나도 같은 상상을 했다. 아직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직 내 주변에 잘 남아주고 있다. 하지만 사람은 언젠가 떠나기 마련이다. 이별 이후 그들이 없는 삶을 살아내고 곧 내가 그들을 만나러 갔을 때 사랑하던 이들의 건강하고 환한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면 절로 눈물이 나지 않을까. 슬프고도 행복한 상상이다.
에세이를 읽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삶에 잠깐 발을 담그고 그 깊이가 얼마인지 물을 얼마나 차고 따뜻한지 바닥은 어떤 모양인지 느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에세이의 가장 큰 매력이다. 물론 이번 책은 산문이기 때문에 짧은 소설도 들어있다. 그러나 그 짧은 소설에도 작가의 생각, 분위기는 당연히 묻어있기 마련이다. 과거의 나처럼 사랑에 회의적이거나 이번에 박근호 작가의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다면 주저하지 말고 <미친 이별>을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