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 정경희 한국커뮤니티커뮤니케이션 소장을 만나다
취재기자 조재민
승인 2020.07.28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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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힐링토크 진행, "세대 간 갈등 줄이기 위해 노력"
올해 처음 독서지원비 지원받아··· 토론 내용 책으로 엮을 예정
2020 장애인 미디어 콘퍼런스 개최, ‘나에게 더욱 특별한 시간’
신이 인간에게 두 개의 눈과 귀, 하나의 입을 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말을 하기 전 두 번 살펴보고, 두 번 듣고 신중하게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 즉 소통이다. 커뮤니케이션에 자신의 열정을 쏟아붓는 사람이 있다. 바로 한국커뮤니티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 정경희 씨다.
부산시 남구에 위치한 한국커뮤니티커뮤니케이션연구소는 아동 권리 증진, 장애인 인식 개선, 미디어 교육 활동 등을 진행하는 시민연구단체다. 2018년부터 정경희 소장은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시민들과 함께하는 공동체 활동을 했다. 활동을 진행하면서 그녀가 느낀 것은 공동체에 대한 ‘소통’의 문제였다. 그래서 소통에 대한 문제들이 연구돼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녀는 “기존 연구에서는 공동체 소통에 대한 연구가 없었다”며 “이 문제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룰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2018년 9월에 연구소를 설립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커뮤니티커뮤니케이션연구소에서는 여러 가지 교육 프로그램들이 진행 중이다. 그중에서도 역시 눈에 띄는 것은 ‘치유 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는 매월 지정된 날짜에 진행하는 ‘북토크’(Book Talk), ‘힐링토크(Healing Talk)’를 진행한다. 북토크는 한 달에 책 한 권을 정해서 읽고, 각자 개인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최근 진행된 북 토크에는 <90년대 생이 온다>라는 책으로 회원들과 얘기를 나눴다. 이 책은 90년대생들과 이전 세대와의 차이점을 짚어볼 수 있는 내용이다. 이 책을 선정하게 된 이유에 대해 그녀는 “세대 간 갈등이 한국 사회에서 큰 문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며 “회사 건물에 스타트업 기업이 많은 만큼 젊은 층들이 많아서 그런지 이번 북토크에 많이 참여했다”고 말했다. 이어 “서로 삶에 대한 패턴을 이해하면서 꼰대 테스트, 각종 퀴즈를 풀며 즐겁게 입장의 차이를 좁힐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한편 코로나19로 회원들과 만나는 게 제한된 상황. 정 소장은 “최근 미디어 콘퍼런스 준비와 코로나19가 겹쳐 모든 토크는 잠시 쉬고 있다”며 “지난 5월이 마지막 북토크 였는데, 코로나19 사태에 맞춰 <언컨택트>, <코로나 경제전쟁>이라는 책으로 회원들과 북토크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최근 연구소는 올해 처음 문화체육관광부와 연결된 ‘책 읽는 사회 문화재단’에서 독서 지원비를 지원받았다. 따라서 더 내실 있게 회원들과 토론한 내용을 묶어서 도서로 만들기 위해 계획 중이다.
‘힐링토크’는 바쁜 일상을 사느라 건강을 챙기기 어려운 현대인들에게 마음의 평온을 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공동체의 갈등을 커뮤니케이션으로 풀어본다는 연구소의 설립 취지처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마음을 치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치유하기 위한 첫 힐링토크의 주제는 ‘명상’이었다. 그녀는 명상에 대해 회원들과 얘기를 나누며 직접 요가 메트를 바닥에 깔고 명상을 진행했다.
힐링토크에는 특별 손님이 있었다. 바로 경주 마하보디선원 선원장인 감비랴냐나 스님이다. 스님은 회원들이 올바른 명상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면서 힐링토크를 진행했다.
정 소장은 힐링토크를 통해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을 받았다. 갈등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을 해결하기 위해 연구소가 앞만 보고 달려왔다면, 이제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욕심을 비워내야 한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그녀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내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정 소장은 “스님께서 마음의 혼란을 비워내고, 좋은 기운을 채워 넣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다"며 “힐링토크 이후로 회원들이 마음의 평온함을 느껴서 만족감이 높았다"고 했다.
또 연구소에는 맥주를 마시며 즐겁게 소통하는 토크 쇼인 비어 토크(Beer Talk)도 주기적으로 진행한다. 처음에는 그녀의 지인들과 시작하게 됐지만, 어느새 규모가 커져 회원들과 토크를 펼치게 됐다.
정 소장은 비어 토크를 진행하면서 알게 된 흥미로운 회원에 대해 얘기했다. 바로 최정호 회원이다. 최정호 씨는 군 입대를 한 후 갑작스레 찾아온 갑상선암에 의가사 제대를 했다. 그의 꿈은 원래 대금 연주자였지만 갑상선암으로 인해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전역 후 건강을 되찾기 위해 대학 산악 동아리에 가입해 산악활동을 꾸준히 했다. 히말라야 등반에도 다녀올 정도로 건강해진 그는 한때 자신의 꿈이었던 대금 연주를 회원들에게 해줬다. 정 소장은 “암에 걸린 사람은 의기소침할 거라는 편견을 깨고, 극복하고자 하는 밝은 에너지를 주변에 발산하는 회원”이라며 “덕분에 늘 좋은 기운을 받는다”고 말했다.
한국커뮤니티커뮤니케이션의 회원이 되기 위한 특별한 기준은 없다. 각자 개인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혼자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누구든지 연구소를 찾아가면 된다.
지난 6월에 개최된 ‘2020 장애인 미디어 콘퍼런스’도 한 회원의 고민을 발단으로 시작됐다. 연구소 회원 중 한 명이 발달장애를 겪는 아이를 뒀는데, 자신의 자녀를 포함한 발달장애인들의 특수교육에 대한 정부 지원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정 소장은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강의, 줌(Zoom) 시스템을 활용한 화상 강의 등을 진행하지만, 여기서 장애인들은 지원을 받지 못해 소외받게 된다”며 “따라서 이 문제를 같이 풀어보자는 취지로 미디어 콘퍼런스를 준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2020 장애인 미디어 콘퍼런스’는 그녀에게 더욱 특별한 시간으로 다가왔다. 다른 누구의 문제가 아닌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척추에 염증이 발생해 점차적으로 척추 마디가 굳는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장애를 앓고 있다. 어느 날 그녀의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엄마는 장애인이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녀는 “딸이 학교에 입학한 뒤, 우리 엄마가 장애인이라고 말하면 주변의 차별적 시선으로 인해 상처를 받을까 머뭇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장애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미디어 콘퍼런스 활동을 더욱 활발하게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따라서 정 소장은 이번 미디어 콘퍼런스 이후에 연구소 비전을 새롭게 만들었다. 바로 ‘장애인 인식개선’과 ‘아동 권리 증진’이다. 그녀는 두 가지 차원에서 연구소 활동을 더욱 활발하게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지난 19일 부산의 한 기초의회에서 전국 최초로 발의한 ‘장애인 관련 조례’가 상임위에서 보류됐다. 이 조례안은 장애인이 직접 신문, 방송, 영상 등의 미디어에 참여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지자체가 인프라를 구축하고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장애인 공동체 미디어의 교육, 제작, 운영을 비롯해 유통과 보급 등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조례안이다.
하지만 지난 의장 선거로 인한 구의회 내홍 등의 이유로 조례안이 보류됐다. 이에 대해 정 소장은 “처음부터 쉽게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이제는 다수가 이 조례를 원한다는 것에 대해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일이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또 “오히려 이번 일로 인해 배울 수 있는 점이 많았고, 내달부터 장애인분들의 목소리를 같이 담아낼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소장은 앞으로도 원활한 공동체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노력할 계획이다. 고등학생들에게 광고 기획·제작의 기회를 제공하는 ‘광고 빅뱅’을 내달 진행한다. 또 9월부터는 ‘소셜 크리에이터 양성과정’ 프로그램을 경성대의 비교과 프로그램으로 진행한다. 이어 동의대에서 진행하는 올바른 토론 활동을 위한 ‘굿 디베이터 양성과정’ 온라인 강좌 촬영을 마쳤다. 그녀는 “중증 장애인분들을 대상으로 미디어 교육을 진행해 장애인들이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우리 사회가 장애인 문제를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듯이 세밀하게 관찰하고,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