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오스크로 상품 번호 입력해 구매하는 방식
구매자, “남 눈치 안 보니 편해요”...주민과 마찰도
카페와 음식점이 즐비한 경남 양산의 한 거리에 가게 안이 전혀 보이지 않게 빨간 불투명 필름으로 창문과 출입문이 가려져 있는 이질적인 가게가 하나 있다. 출입구는 골목 안으로 더 들어와야 한다는 화살표가 크게 붙어 있으며, “이색 데이트 코스”, “어른들만의 놀이터”, “티켓없이 홍콩가기”와 같은 커다란 홍보문구가 상당히 도발적이다. 무슨 19금 업소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 아래에는 “결혼 선물”, “기념일 선물”, “성년의 날 선물”, “솔로 위로 선물”이라는 문구도 있어 무슨 물건을 파는 업소라는 느낌도 든다. 내부가 보이지 않게 꽁꽁 감춰둔 이 가게의 정체는 바로 ‘무인성인용품점’이다.
무인성인용품점은 말 그대로 가게 내에 고객 외 다른 사람 없이 무인으로 운영되는 성인용품점이다. 무인성인용품점 입구에는 성인인증기계가 있어서 미성년자의 출입을 막고 있다. 운전면허증과 주민등록증 같은 정부 발행 신분증을 기계에 투입하면 잠겨 있던 가게 문이 열린다. 신분증을 통한 성인인증 외에도 회원가입을 통한 출입도 가능하다. 성인인증기계 화면의 회원가입을 터치한 후 이름과 전화번호 등 간단한 개인정보를 입력하면 회원가입이 완료된다. 회원가입 시 전화번호로 성인인증을 하기 때문에 회원가입 역시 미성년자의 입장을 막을 수 있다.
약 10-15평 정도의 가게 내부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뽑기 기계가 눈에 들어온다. 뽑기 기계에는 콘돔이나 자위기구 등 비교적 작은 크기에 해당하는 물품들이 들어 있다. 사람들은 뽑기 기계에 1회 1000원을 주입하면 재밌게 뽑아서 원하는 성인용품을 살 수 있다.
뽑기 기계 바로 옆에는 검은색 칸막이가 수십 개 빼곡히 짜여 있는 책꽂이 같은 구조물이 있다. 여기 작은 칸막이 박스마다 각종 성인용품이 종목별로 정리되어 있다. 이것이 성인용품 자판기다. 자판기 내부에는 콘돔과 같은 피임기구뿐만 아니라 성인용 코스프레 용품, 여성용, 남성용 자위기구와 같이 다양한 성인용품이 진열돼있다.
이곳 자판기 성인용품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가게 구석에 있는 키오스크 기계를 사용해야 한다. 자판기 칸막이 박스에 적힌 상품 번호를 입력하거나 키오스크 화면에서 상품을 찾아 선택한 후 결제하면 해당 상품 자판기 문이 열려 물건을 꺼내 갈 수 있다.
무인점포에는 직원이 없기 때문에 자판기 맞은 편에는 상품 사용법을 알기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상품 안내서가 비치되어있다. 여성자위기구, 남성자위기구 등 종류별로 안내서가 비닐에 싸여 있어서 가져갈 수는 없고, 그 자리에서 읽고 숙지해야 한다.
무인성인용품점을 방문한 최 모(25, 경남 양산시) 씨는 “성인용품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도 성인용품이 필요한 사람은 있다. 그런 사람들이 눈치 보지 않고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대학생 김 모(21, 부산시 사상구) 씨는 “안 그래도 최근 코로나 사태로 밀폐된 공간에 여러 사람이 같이 있는 것이 꺼려졌는데, 무인성인용품점은 그럴 걱정이 없어 거부감이 없다”고 말했다.
무인성인용품에 관한 인터넷 설문조사 결과, 사람들은 무인성인용품점에 대해 “피임문화가 더 잘 이뤄질 것 같다”, “우리나라 성문화가 점점 개방적으로 변해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큰 예시로 보인다” 등 긍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성인인증 시스템이 철저하지 않은 이상, 성에 관한 인식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미성년자들이 막연한 호기심으로 성인용품에 접하게 될 것 같다” 등과 같이 성인인증 시스템의 허술함에 따른 미성년자의 성문화 접촉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가게 입구에는 성인인증 기계가 배치되어 있지만, 주민등록증을 기계에 투입하면 본인인증 절차 없이 잠긴 문이 열린다. 그래서 어떤 이유로든 어른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있는 미성년자가 있다면, 충분히 출입할 수 있다.
경기일보의 7월 31일자 보도에 의하면, 경기도 부천의 한 무인성인용품점은 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 자리 잡고 있어서 학부모 주민들의 반대가 일고 있다고 한다.
무인성인용품점이 일반상가와 학교 근처에 자리 잡고 있는 것에 대해 미성년자 자녀를 둔 주부 조 모(48) 씨는 “요즘 세상이 무섭다. 아무리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고 미성년자 출입을 금지한다고 해도 성인용품 가게가 주위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며 우려의 모습을 보였다. 조 씨는 또한 “지자체에서 그 지역의 학교 수나 학생 수, 그리고 주거지역인지를 확인해서 사업 허가를 줬으면 한다”고 제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