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역사 간직한 낙안읍성... 옛 풍습 지키며 주민들 살아가는 전통마을
성벽 위에서 바라보는 잊을 수 없는 마을 경치, “꼭 다시 찾고 싶은 명소”
‘광해: 왕이 된 남자’, ‘대장금’ 등 영화 드라마 등 유명 작품 다수 촬영
누구나 한 번쯤은 과거로 뚝 떨어지는 상상을 한다. 노릇한 초가지붕과 나무를 얼기설기 엮어 만든 사립문, 달아오르는 온돌과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툇마루, 치맛자락과 도포자락이 바람에 흩날리는 풍경이 익숙한 조선시대의 마을에서 살아가는 것은 불편하지만 설렐 것이다. 조선시대 마을 상상은 생각만 해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이제는 상상에 그치지 않아도 된다. 조선시대가 과거 그때 그 모습 그대로 21세기 순천 낙안읍성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이름을 가졌던 낙안읍성은 삼한시대엔 마한, 삼국시대엔 파지성, 고려 말 이후부터는 낙안군 지역으로 남아있다가, 1908년 10월 15일 낙안군이 폐지되면서 순천군에 편입됐다. 그리고 1995년 1월 1일 전남 순천시와 승주군이 통합되어 순천시 낙안면이 됐다.
성곽은 조선 태조 6년(1397) 낙안 출신인 전라도 수군도절제사 양혜공 김빈길 장군이 왜구의 침입에 맞서기 위해 흙으로 쌓아 조성되기 시작했다. 세종 6년(1424)이 되던 해부터는 석성으로 쌓기 시작했으며, 그로부터 약 200년 후인 인조 4년(1626) 충민공 임경업 장군이 낙안군수로 부임한 이후 석성으로 중수됐다.
읍성 전체 모양은 장방형으로 성곽의 길이는 1410m, 전체 면적은 22만 3108m²다. 동쪽, 서쪽, 남쪽에는 성 안의 큰 도로와 서로 연결된 문이 있고, 네 군데의 치성이 있어 적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게 했다. 작은 읍성에 수많은 역사와 이야기가 담겨있다.
낙안읍성의 입구로 쓰이고 있는 동문을 넘어 읍성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바깥과는 사뭇 달라진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새파란 하늘 밑으로 물결치듯 자리하고 있는 산줄기, 쭉쭉 뻗어있는 나무, 정갈하게 쌓아 올린 돌담과 이 모든 것에 어우러지는 초가집이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담장 위로는 자목련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관광객을 맞이한다. 새들은 소란하게 지저귀고, 그에 화답하듯 바람이 잎사귀를 스치며 시원한 소리를 낸다. 낯설지만 정겨운 마을의 모습은 사람들 마음을 들뜨게 만든다.
동문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임경업 장군 비각이 보인다. 이곳은 인조 6년(1628)에 군수 임경업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비각과 그 안에 서 있는 비로 구성돼있다. 임경업은 조선시대 중기의 명장으로 인조 4년(1626) 전라도 낙안 지역의 군수로 부임해왔다. 그는 인조 6년 임기를 끝내고 자리를 옮겨갈 때까지 낙안읍성을 쌓는 등 어진 다스림을 베풀었다. 이 지역에서는 임경업 군수를 신봉해 매년 정월 보름이면 주민들에 의해 큰 제례가 이어지고 있다.
낙안읍성 안에서는 기와집을 찾아보기 힘들다. 백성들이 살던 초가집이 마을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인지 멋들어지게 지어진 기와집을 보면 시선이 빼앗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들어간 곳은 낙안객사였다. 낙안객사 또는 낙안지관으로 불리는 이곳은 왕명으로 오는 사신들과 고을을 찾아오는 기타 관리나 외빈들이 머물다 갔던 곳이다. 고을에서 가장 으뜸이 되는 건물로 동헌보다 격이 높아 낙안읍성 내 가장 중앙 상단에 위치하고 있다.
낙안객사는 세종 32년(1450)에 군수 이인이 건립한 후 인조 9년(1631)과 철종 8년(1857)에 중수했다. 현재는 객사 본전만 남아있어 전체적인 모습은 알 수 없으나 1900년대 초까지는 남아있었다고 한다. 낙안객사의 동쪽 방은 문관, 서쪽 방은 무관의 숙소로 쓰였으며, 객사 중앙 마루에서는 궐패와 전패를 모시거나 고을의 대소사 때 향궐망배례를 행했던 곳이다.
낙안 객사와 같이 낙안읍성에서 몇 안 되는 기와 건물인 동헌은 조선시대 지방관아다. 동헌은 사무당으로도 불리는데, 사무는 권력을 남용하거나 백성들을 함부로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이를 낙안읍성 당호에 담고 있다. 감사, 병사, 수사, 수령 등이 지방행정과 송사를 처리하던 동헌은 동쪽은 수령, 서쪽은 관리, 중앙 마루는 송사를 다루던 곳으로 사용했다.
동헌 입구인 삼문에서 흠칫하고 놀랄 수도 있다. 사람으로 착각할 법한 모형 포졸들이 삼문 앞을 떡하니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동헌 안에는 송사를 다루는 모습을 재현하는 모형이 있어 당시의 상황을 엿볼 수 있도록 만들어놨다. 포승줄에 묶여 꿇어 앉혀진 죄인을 심판하고 있는 수령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동헌 마당에는 곤장도 준비돼있다. 같이 온 동행인을 곤장 위에 엎어놓고 곤장을 치는 경험을 해봐도 좋을 듯하다.
낙안읍성의 한편에는 전통놀이를 할 수 있는 놀이마당이 있다. 투호 놀이, 굴렁쇠 굴리기, 링 던지기, 제기차기, 팽이치기, 그네뛰기도 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해놨다. 재미 삼아 친구와 내기를 걸고 전통놀이 체험을 하다 보면, 방문객들은 어느 순간 몰입해 놀이에 참여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이렇게 걷다 보면, 어느새 서문에 다다르게 된다. 서문에는 성벽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있다. 계단을 걸어 올라가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 위를 자박자박 걷는다. 따사로운 햇볕 속에서 발갛게 익은 볼도 키 큰 나무가 만들어낸 그늘 속에 들어가면 기분 좋게 식어간다. 대나무 군락에 바람이 스치며 내는 소리가 고요한 사위를 메운다. 성벽 밑에 핀 꽃을 구경하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조금만 걸으면, 낙안읍성에서만 볼 수 있는 장관이 펼쳐진다. 마을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모습은 감탄을 자아낸다. 성벽 위에서 초가집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우리나라의 옛 가옥이 만들어내는 정겨움과 고즈넉함, 자연과 어우러지는 마을의 풍경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관광객 조유란(24, 경남 진주시) 씨는 낙안읍성 안을 둘러보며 요즘은 볼 수 없는 경치들에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조 씨는 성벽 위에서 내려다보는 낙안읍성의 경치가 특히 기억에 남았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초가집과 걸리는 것 없이 펼쳐진 평지가 어우러져 답답했던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조 씨는 “꼭 다시 찾고 싶은 명소”라고 말했다.
성벽을 따라 걷다 보면, 성벽 밖으로 툭 튀어나온 부분이 있다. 이는 치(稚)라고 하는 곳인데, 성 밖의 동태를 살피고 성벽에 접근한 적을 공격하는 등 방어에 매우 중요한 군사적 건축물이다.
성벽 밖으로는 푸르른 논과 밭이 펼쳐져 있다. 풀잎이 바람을 따라 물결치는 모습은 도시에서는 흔하게 볼 수 없는 진귀한 광경이다. 생명감이 넘치는 모습이란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프레이저의 ‘황금가지’에 따르면, 중부 유럽에서는 곡식이 바람에 물결치는 모습이 마치 늑대가 그 사이를 달리는 듯하다는 이유로 "늑대가 보리밭을 달린다"고 표현했다고 한다
성벽 중간중간에는 마을로 내려갈 수 있도록 계단이 만들어져 있다. 물레방아를 발견하고 성벽에서 내려와 마을로 입성했을 때,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할머니 한 분을 뵐 수 있었다. 낙안읍성의 주민인 김복남(54, 전남 순천시) 할머니는 낙안읍성으로 시집온 이후 이곳의 주민이 됐다. 초가집에서 못 살겠다고 뛰쳐나간 사람들도 많았지만, 김 할머니는 이곳에 남아 계속 낙안읍성 안에서 살고 있다. 김 할머니는 마을 안에서 운영하는 체험장의 벌이가 줄어들어 홍보 차 한복을 입고 마을 곳곳을 누비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할머니는 “순천시에서 한복을 입으라했다”며 “그게 아니면 요즘 누가 한복을 입냐”고 웃음을 지었다.
마을 안은 고요하고 적막해 마음을 느긋하고 여유롭게 만들어준다. 소란스러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마을은 가끔 지나가는 경운기의 모터 소리만 울려 퍼진다. 유채꽃이 가득 피어있는 꽃밭,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장독들, 홀로 바쁘게 돌아가는 물레방아와 그 앞에 자리한 연못을 구경하는 재미에 푹 빠진다. 봄 내음 가득한 바람을 맞으며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누비고 같은 듯하지만 다양한 모양새를 갖춘 초가집을 보면, 낙안읍성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낙안읍성에는 90여 가구의 민가가 있다. 실제로 주민이 거주하고 있어 그 가치를 더하고 있으며, 보통 1가구당 2~3채의 초가집과 마당, 텃밭으로 구성된다. 초가집은 3칸 정도의 일자형 안채와 아래채, 그리고 농기구 등을 보관하거나 외양간으로 겸용하는 헛간채와 재래 변소로 이용하는 잿간으로 이루어진다. 낙안읍성에서는 우리 조상들의 과거 생활 모습과 옛날 마을의 풍경을 엿볼 수 있다.
낙안읍성은 실제로 주민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보니, 산책을 나온 낙안읍성의 주민들도 많이 있다. 낙안읍성의 주민인 우여남(81, 전남 순천시) 할머니도 산책 나온 주민 중 한 명이다. 우 할머니는 언제부터 낙안읍성에 살았는지 까마득할 정도로 오랜 세월을 낙안읍성의 주민으로 살았다. 우 할머니는 “낙안읍성은 산도 좋고, 물도 좋고, 사람도 좋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낙안읍성에서는 다양한 체험장이 있다. 두부를 만들 수 있는 두부 체험, 천연염료로 천에 염색을 해볼 수 있는 자연 염색 체험, 전통혼례를 치러볼 수 있는 전통혼례 체험, 여러 형틀을 이용해 옥사 체험도 할 수도 있다.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색 체험이다.
낙안읍성에서는 매년 음력 1월 15일 대보름날이면 ‘정월대보름 민속 한마당’이라는 축제가 개최된다. 이 때 임경업 장군 추모제와 이 고장 전래의 각종 민속놀이 경연 대회가 펼쳐진다. 또, 매년 10월 중에는 ‘낙안읍성 민속문화축제’도 개최된다. 큰 줄다리기, 성곽 쌓기 재현, 전통 혼례식 등 다양한 경연, 공연 및 체험 행사가 열린다.
낙안읍성은 옛 마을의 모습이 그대로 잘 보존된 만큼, 사극 촬영도 많이 이루어졌다. 영화로는 ‘광해: 왕이 된 남자’, ‘태극기 휘날리며’, ‘태백산맥’ 등 유명 작품이 이곳에서 촬영됐고, 드라마로는 ‘나의 나라’, ‘백일의 낭군님’, ‘대장금’, ‘동이’, ‘불멸의 이순신’ 등을 낙안읍성에서 촬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