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을 영원히 그리워할 거예요”...죽음, 그리고 뒤에 남겨진 이들의 납골당 꾸미기
취재기자 허시언
승인 2021.06.17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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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사진, 편지, 미니어처를 이용해 각각 다른 모습으로 꾸며
미니 꽃다발 납골당에 놓아두기도... “작은 꽃밭과 같은 모습”
손바닥만 한 미니어처 속에 고인의 삶이 차곡차곡 녹아있기도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먼저 떠나간 이를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은 언제나 변하지 않는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우리나라의 무령왕릉과 같은 옛 무덤만 봐도 그렇다. 피라미드 안에는 파라오가 생전에 쓰던 장신구, 그릇, 저장음식, 진귀한 보물들과, 심지어 저승에서 노동을 대신해 줄 인형도 같이 들어 있다. 무령왕릉 안에는 왕과 왕비가 사용했던 장신구, 무덤을 지키기 위해 돌로 만든 진묘수를 넣기도 했으며, 왕과 왕비의 관은 금과 은으로 된 꽃 장식을 달았다. 아주 옛날부터 죽은 이의 무덤에 생전에 좋아하던 것들을 같이 묻어서 저승에 가서도 이승에서 누리던 것들을 다 누리고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는다. 예나 지금이나 먼저 떠나간 이를 향한 마음은 똑같다.
사람은 죽고 나서 영혼은 자유롭게 어딘가로 흘러가지만, 육체는 재가 되어 이승에 남게 된다. 재가 된 육체는 이승에 머무를 곳이 필요하고, 그 장소 중 하나가 바로 납골당이다. 남겨진 이들이 먼저 떠나간 이가 보고 싶을 때, 그리울 때, 문득 생각날 때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는 곳이다.
납골당은 유골함이 들어갈 수 있는 작은 크기의 공간이 늘어서 있는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다. 마치 아파트 같은 형태로 옆 칸, 위 칸, 아래 칸이 있다. 납골당은 각자의 방식으로 꾸며져 있다. 아파트도 집집마다 다른 인테리어를 하듯이, 납골당도 그렇다.
칸마다 놓여있는 미니 꽃다발과 테두리를 따라 반듯하게 둘러져 있는 꽃 리스는 납골당 안을 색색의 꽃으로 물들게 만든다. 고인의 생전 사진과 가족사진, 손주 사진으로 복작복작하기도 하다. 정성스럽게 쓴 편지도 곳곳에 붙어있고, 고인의 생전 종교를 알 수 있는 묵주도 눈에 띈다. 자그마한 미니어처도 간간이 보인다. 칸마다 다르게 꾸며진 납골당을 보고 있으면 고인을 향한 애틋하고 그리운 마음이 가득 느껴진다.
납골당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은 미니 꽃다발이다. 다양한 종류와 색을 자랑하는 미니 꽃다발은 칸마다 꼭 한두 개씩은 놓여있을 정도다. 고인의 자리에 붙어있는 미니 꽃다발이 모여 납골당 안에서 하나의 작은 꽃밭을 이루는 듯한 모습이다.
미니 꽃다발 제작자 김윤미(42, 부산시 남구) 씨는 오랜 사회생활에도 불구하고 결혼과 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돼 제2의 직업을 찾으려 고군분투했다. 화훼장식기능사 자격증을 따고 꽃에 대해 공부하면서 새로운 적성을 찾은 김 씨는 꽃집을 오픈하려고 준비하던 시기에 코로나가 유행하기 시작했고 꽃집 오픈이 무산돼버렸다. 고민하던 김 씨는 온라인 판매로 눈을 돌렸다. 납골당 꽃은 수시로 바뀌기도 하고, 기일이나 명절에 꾸준한 수요가 있기 때문에 납골당을 장식할 미니 꽃다발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김 씨는 구매자들이 생전에 잘 해 드리지 못한 아쉬움과 고인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꽃다발을 찾는다고 생각하고 있고, 고인을 추모하는 곳에 둘 물건이기 때문에 더 정성껏 꽃다발을 제작하고 있다. 기분 상태에 따라 만드는 꽃의 느낌이 달라지기 때문에 항상 좋은 마음으로 제작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김 씨는 갑자기 주문량이 늘어날 때가 가장 힘들다. 구매자 모두가 고인에 대한 절절하고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바쁘다고 대충 만들 수는 없어 하나하나 신경을 써서 제작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한참 주문이 늘어나는 시즌에는 몇 주 동안 하루에 3~4시간씩 쪽잠을 자면서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지쳐있는 김 씨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은 구매자의 좋은 말들이다. 만들어드린 꽃이 예쁘다고 해주실 때, 김 씨의 꽃으로 마음을 전할 수 있게 돼 감사하다고 인사해 주실 때, 꽃으로 납골당이 환해졌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김 씨는 일을 하는 뿌듯함과 보람을 느낀다.
김 씨는 미니 꽃다발과 함께 메시지 카드도 함께 제작하고 있는데, 메시지 대부분의 내용이 ‘아픔 없는 곳에서 편히 쉬세요’, ‘보고 싶어요’, ‘사랑해요’다. 김 씨는 남겨진 사람들은 지금도 고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항상 추모하고 있다는 것이 고인께 전해지길 바라고 있다. 김 씨는 “사는 동안 힘들고 괴로운 일 모두 잊고 편히 쉬면서 이생에 남겨진 사람들을 잘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간간이 보이는 미니어처는 생전 고인께서 무얼 즐겨 먹었는지, 어떤 취미생활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게 해준다. 손바닥 안에 들어올 정도로 작은 미니어처 속에 고인의 삶이 녹아 있다.
미니어처 제작자 이외숙(49, 서울시 양천구) 씨는 취미로 물고기를 기르던 시절, 수조를 꾸미는 미니어처를 선물 받았다. 그것을 시작으로 미니어처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 씨는 교보문고에 전시된 조립식 키트로 만든 미니어처 하우스를 보고 미니어처에 빠져들게 됐다. 조립식 키트를 구입해 만들다 보니, 직접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독학으로 하나하나 미니어처를 만들기 시작했다. 취미생활 정도로만 즐기던 미니어처는 제작 의뢰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직업이 됐다. 납골당에 넣을 미니어처 제작 의뢰가 주로 들어와 자연스럽게 납골당에 넣을 미니어처를 제작하는 일을 최근에는 가장 많이 하고 있다.
이 씨는 작업량이 많아 잠도 못 자고 주문량을 맞춰야 할 때마다 힘들지만, 구매자들이 만족할 때, 감사하다고 인사할 때 미니어처 제작 일을 하고 있는 것이 가장 보람되고 뿌듯함을 느낀다.
이 씨는 구매자들이 납골당을 꾸미고 싶어 하는 이유를 더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없는 미안함과 후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고인이 늘 보고 싶고 그립기 때문에 생전에 고인이 즐겨 먹던 음식들을 모형으로나마 대접하고 싶어 한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이 씨는 의뢰받은 것보다 더 예쁘고 보기 좋게 꾸며 드리려고 신경 쓰며 제작에 임하고 있다.
구매자들은 이 씨에게 "항상 저 대신 딸 노릇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한다. 이 씨도 딸 같은 마음으로 정성껏 만들어 미니어처를 보내 드리고 있다. 이 씨는 “제 정성이 닿아 좋은 곳에서 편히 잠드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A 씨는 어린 시절 어버이날을 맞아 색종이 카네이션을 접어 할머니가 계신 납골당에 붙이고 온 경험이 있다. 그 당시에는 어린 마음에 어쩐지 쑥스럽고 부끄러워 붙이기 싫었지만, 부모님이 속상해하실걸 알았기 때문에 군말 없이 카네이션을 접고 짧은 편지를 썼다. 카네이션을 붙이고 올 적에는 이런 걸 왜 하나 싶기도 했다.
A 씨는 지금 생각해 보니 아버지가 손주들이 아직까지 할머니를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할머니께 보여드리기 위해 카네이션을 접으라고 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A 씨는 “코로나가 좀 가라앉으면 작은 꽃다발을 하나 사서 할머니 납골당에 놓아드려야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