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마침내 퇴임한다. ‘정권 심판’을 받은 ‘실패한 대통령’으로서다. 그는 “잊힌 삶-자유로운 삶”을 말한다. 그러나 그 원(願)이 그리 쉽게 이뤄지겠나. 그가 쌓은 한(恨)만큼, 역사는 자주 그를 소환할 터다. 그 운명을 안다면, 그는 잠시 숨을 고른 뒤, 회고록 쓰기에 나서야 한다. 그 기록, 더러 ‘반성문’을 말하나, 적어도 ‘징비록’만큼의 절실함은 가져야 한다. 격변기 5년의 무게를 가늠한다면, 그건 그 막중한 직책에의 당연한 의무다.
‘대통령 문재인’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역할, 어떤 선택을 했는가. 그는 재임 시절 책임-실정(失政) 앞에선, 참모 뒤에 숨거나 추종자를 동원하며 선택적 침묵-선택적 신념으로 일관했다. 임기 말의 국민분열-국정실패 앞에선, 후임에게 막말을 퍼부으며 선택적 정의-선택적 분노를 드러냈다. 그의 공을 다룬 기록은 넘쳐나지만, 그 한계는 뚜렷하다. 이제, 그는 주도적으로, 그 삶과 직책을 기록해야 한다.
특히, 그는 끝까지, ‘대통령직’에의 헌신과 금도(襟度) 대신 한 정파의 수장에 집착했다. 대통령이라면 참 부끄러울 꼼수로 ‘검수완박’ 법안을 공포했다. 본질적 내용과 입법 절차에서 문제가 많은 법에의 집착, 불순하다. 팩트를 뒤엎는 궤변으로 자화자찬하며, 한기(寒氣) 어린 비난으로 후임자를 저주했다. 졸렬하다. 끝까지 국민분열-국가혼란을 부추긴 오만과 독선, 정말 기이하고 볼썽사납다.
지난 5년, 한국 사회가 겪은 혼란과 퇴행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그의 실패가 국가발전과 국민행복에 미친 악영향은 간단하지 않다. 그러나 그는 ‘성공한 대통령’을 강변하며 후임자를 비난한다. "文만 모르는 트루먼 쇼"-그와 방송인 손석희의 특별대담을 지켜본 평가다.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불가피한 것, 그는 전임 대통령의 예우에 부응하며 국가-국민에게 남기는 과업을 다해야 한다.
1. “하산(下山)은 없다”-문재인의 참여정부 마지막 청와대 비서실장 부임 당시 발언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를 1년여 남겨둔 상황, 참여정부 끝까지 정상으로 가기 위해 최선을 다할 의지였다. 그러나 그의 바람과 달리 참여정부의 말로(末路)는 비참했다.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고, 퇴임 대통령까지 검찰 수사를 받았다. 그 대통령의 극단적 선택은 문재인의 ‘운명’ 같은 대권 도전의 계기로 작용했다(김상훈).
그는 취임 직후 노무현 대통령 추도식에서 다짐했다, ‘성공한 대통령-성공한 정부’를 만들겠다고. 그로부터 5년, 그는 다시 ‘하산’한다. 그 길은 올라가는 길보다 더 험하다. 그의 실패를 부른 국정운영 방식이며 끝없는 집착에서, 그 하산길의 험난함은 예고된 바다. 그가 임기 말까지 40%대의 국정 지지율을 유지했다 한들, 국민의 ‘정권교체’ 열망을 뛰어넘을 수는 없었으니.
그는 왜, 실패했나. 왜, 민주당에서 “文 퇴임사에 반성 담기길" 같은 자성까지 나왔나. 그건 ‘정권심판론’의 핵심이다. 국민들은 지난 5년 내내, 신념윤리를 앞세우며 책임윤리를 외면한 독선․오만, 공정․정의를 외면하며 내로남불에 침몰한 불의․부도덕을 심판했다. 그 성공-실패를 가름할 기준? 그의 취임 때 약속을 보라. 그 문맥을 되새긴 공약이행 평가론이 있다. 30개 공약 중 29개를 이행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행한 공약은 단 한 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다
우리는 ‘경험 못한 나라’, 그 기이한 실험의 결말을 보고 있다. ‘문재인의 실패’다. 당내의 ‘20년 장기집권 시나리오’는 커녕, 민주화 이후 ‘10년 집권론’의 철칙을 깨뜨린 첫 정부다. 집권 초기부터 외교안보․탈원전 정책에의 독주에 따른 민심 이반, 공정-통합을 내세우곤 ‘편 나누기’를 정치적으로 활용한 국민심판 자초…. 그는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혹독한 평가를 받는 대통령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2. 그는 어떻게, ‘성공한 대통령’을 말하나? 그 성공을 강변할 자화자찬성 기획이 많다. 대통령 비서실의 『위대한 국민의 나라-문재인 정부 5년의 기록-』, 말 그대로 국정운영․정책집행 기록물이다. 국정기록을 담은 『백서』 22권도 있다. 조국이 쓴 『가불 선진국』, 역시 1장부터 ‘문재인 정부의 성과’를 다룬다. 청와대발 ‘국민보고’ 형식의 영상물도 쏟아지고 있다. 그 ‘실패한 대통령’의 국정 기록, 그 어용적 논리에서, 낯 뜨거운 바 없지 않으리.
청와대는 국정 성과를 되돌아보는 ‘국민정책 평가투표’도 실시했다. 정책을 분야별로 나열, 선택하게 하는 방식이다. 그 선택지로 ①세계 10위 경제대국 ③세계 국방비 10위, 무기 수출 6위 군사강국 ④콘텐츠시장 규모 세계 7위 등이 있다. 선택지에 부동산, 탈원전, 소득주도성장, 일자리, 대북(對北)정책 같은 실정(失政)은 없다. 역시 평가의 공정성을 인정하기 어렵겠다.
한국 사회는 정녕, 청와대가 보는 그런 태평성대였나? ‘솔까말’(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그 총체적 혼란 국면을 ‘천하대란’으로 본 시각도 도도하다. 코로나 시대를 들지 않더라도, 온갖 불안․불만 심리가 사회 전반을 뒤덮고, 민생과 나라경제가 아주 어려운 이즘이다. 국민들은 시나브로 ‘나라의 꼴’을 생각하며 국가의 존재이유를 물어왔다. 그 ‘천하대란’, 권력 행사와 통치 역량에 그 원인이 있는 것 아닌가.
특히, 한국의 오늘-내일을 걱정할 그 ‘내전적 분열’의 원인은 뭔가. 길게 말할 나위도 없다. 대통령은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과 ‘기회의 평등-과정의 공정-결과의 정의’를 말하곤, 실천에는 분명 실패했다. 분열과 갈등의 정치, 특권과 반칙의 세상은 일상적 적폐 아니었나. 그 ‘정권심판’의 핵심요인을 외면한 자기평가는 역사를 오도할 언어적 유희일 뿐이다.
3. 문재인 대통령, 그로써 한국의 대통령직은 남루해졌다. 임기 내내 주요 현안에 침묵하고, 퇴임 무렵 대통령의 지혜와 포용 대신 자기변호와 정파적 술수에 탐닉한 결과다. "文, 별에서 온 사람 같다", 무능-무책임이 빚은 수많은 실정(失政)에, ‘내로남불’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공정 논란과 인사·선거중립 문제 등 정치 전반에 대한 그의 인식과 발언을 비판한 말이다.
후임 윤석열을 향한 그의 비난은 한기가 가득하다. 업무추진 방식, "마땅찮다”, “위험하다”고, 대북관계 언급에 “국가 지도자로서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조국 사태’엔 사과 대신 정치수사 의혹을 제기했다. “검찰총장의 중도 사임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오죽하면, “아름답게 퇴장하라”, “국민께 예의 지켜라” 같은 고언이 나오겠나.
이쯤이면, 그는 대통령의 품격과 금도를 잃었다고 할 만하다. ‘정권심판’에 무너지고 ‘국민선택’에 불복하는 것인가. “그가 왜, 그동안 각종 실패에의 사과․반성에 인색했는지 확인했다”, “마치 ‘별에서 온 사람’ 같은 인식의 근간에는 내 주장만이 옳다고 믿는 운동권의 전형적 선악 구도가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다(최진).
4.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조선조 문신 류성룡(柳成龍)은 임진왜란 통한의 기록 『징비록(懲毖錄)』을 썼다. 그는 전쟁기 영의정 겸 도체찰사로 당쟁과 전란 속의 군무를 총괄했다. 7년여 전란 동안 백성들이 겪은 참상을 기록, 그러한 비극을 자초한 조선의 문제점을 파헤쳤다. ‘징비(懲毖)’, ‘지난 일을 경계하여 후환을 대비한다’는 뜻이다.
대통령의 회고록․자서전은 한국 사회에도 관행이다. 민주화 이후,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대통령은 두루, 퇴임 2~3년에 그 기록을 남겼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는 회고록 절반을 출간(『약속의 땅』)한 뒤, 남은 2권을 집필 중이다. 그는 대필작가 없이 직접 회고록을 썼다. 솔직한 기억-사실적 묘사로, ‘회고록의 군계일학’이란 평을 듣고 있다.
오바마는 책(1권)에서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오른 여정부터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한 이야기까지, 첫 임기 3년여를 솔직하고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그는 내밀하게, 자신의 선택과 사고 과정을 곱씹었다. 그는 머리말에 썼다. 내가 공직에 몸담은 기간의 일들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싶었다고, 행정부가 맞닥뜨린 과제와 여러 선택에 영향을 미친 흐름을 설명하고 싶었다고.
5. 퇴임 대통령, 그가 남겨야 할 기록은 간단하지 않다. 벌써, 그에게 ‘징비록’을 남기라는 주문, ‘참회록’을 쓰라는 질책이 잇따른다. 무엇보다, 그의 신념윤리에 얽매인 국정운영 방식과 그 선택과정에 많은 국민의 의문이 따른다. 그는 왜, ‘통합-공존의 새로운 세상’, ‘평등-공정-정의’를 말하곤, 실제 정반대의 길을 걸었는가. 왜, 분열․갈등의 정치에 탐닉하며 특권․반칙의 적폐를 쌓아왔나?
‘우리 편’, 한국 사회의 내전적 분열을 상징하는 어휘다. 그는 ‘권력의 패러독스’에 중독, 공감능력과 자기절제를 상실했다. 국민들은 조국-추미애-박범계를 법무장관으로 쓴 그의 생각을 묻는다. 국가 정의를 실현해야 할 법무장관(Minister of Justice)이 국민에의 봉사 대신, ‘우리 편’ 우선을 강변한다? 그 자리에, 그런 인물을 쓴 발상만으로, 그는 공정-정의에서 실패했다. 국민들이 자주 권력의 책임윤리를 떠올리는 이유다.
“난 미국 국민의 변호사···대통령 변호사 아니다”-조 바이든 정부 초대 법무장관 지명자 메릭 갈런드의 인사청문회 발언이다. 그는 권력의 압박과 정치에 휘둘리지 않는 법무부 수장, 곧 검찰수사의 중립성을 다짐했다. 그 법무장관에의 기대는 그 명칭에 녹아 있다. 명칭에 걸맞게, 제 몫을 한 역사도 화려하다. 우리네 법무장관 흑역사의 확실한 반면교사다.
국정의 실패과정도, 직접 기록해야 할 바가 많다. <文 정부 대북 물밑 거래 내용 밝히는 ‘징비록’ 남겨야>(남성욱), <‘원전 흑역사’를 기억해야>(박원호)…. K-방역의 곡절이며 서해 공무원 피살 경위까지, 국가․국민에게 안긴 그 한(恨)의 역사도 분명 새겨야 한다. 그도 “결국 역사는 기록”이라고 말했으니, 대통령은 그 책무를 위해서도 그 ‘선택의 흐름’을 새겨줘야 한다.
곡종인산(曲終人散), 노래가 끝나자 사람들이 흩어졌다. 중국 당나라 시인 전기(錢起)의 말이다. 이것이 사람 사는 정리(定理)라고 했다. 우리 선출직 공직자의 퇴임 후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 시대의 리더를 호평하지 않는 정치․문화적 특질이다. 전임 대통령의 큰 공이 있더라도 작은 과를 들어 폄하한다. 하물며, ‘제왕적 권력’에 집착하며 민주주의를 훼손한 역정, 그 국가적 혼란 앞에 국민의 질책을 받아야 할 바도 결코 가볍지 않으리.
그럴수록 그는 국가․국민에게 역사적 기록을 남겨야 한다. 그건 ‘역사를 위한 변명’이어도 좋다, 어차피 그 권력의 정당성․합법성은 스스로 증명해야 할 터이니. 일본의 탐사보도 언론인 다치바나 다카시는 말했다, “개인의 역사는 곧 세계사”라고. 그 역사는 자신의 희로애락이 담긴 ‘개인사’ 서술을 넘어, 한 ‘시대의 역사’를 반영한 기록이라고.
하물며 대통령의 역사가 가진 무게는 어느 정도일 것인가. 그 기록은 굳이 옳고 그름의 판단과 진실 밝히기에 철저하지 않아도 좋다. 다만, 직책 수행의 중요 부분에 초점을 맞춘 기록은 남겨야 한다. ‘실패한 대통령’의 ‘기이한 퇴장’이 주는 파장과 역작용까지, 그 기록은 한국 사회에 ‘징비록’으로 큰 가치를 가질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징비록’ 쓰기, 분발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