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메프·이마트 등 경고 후 전화 끊도록 한 매뉴얼 도입...상담원들, "마음의 상처 한결 나아졌다"/ 김수정 기자
“야 이 XX야. 너 몇 살이야, 어디 사냐?”, “이 개XX야. 그냥 바꾸라고”, 수화기 너머로 행해지는 무차별적인 언어 폭력을 겪어야 하는 ‘감정 노동자’ 전화상담원들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상담사 OOO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웃음기를 머금고 친절한 목소리로 응대를 시작하지만 들리는 것은 욕설이다.
이처럼 콜센터에서 근무하는 전화상담원들이 겪는 문제는 심각하다. 폭언과 욕설은 기본이고 성희롱과 협박성의 발언까지 이어진다는 것. 콜센터에서 근무하는 김모(35) 씨는 “매일 같이 근무하면서 수많은 고객을 전화로 응대한다. 물론, 별 탈 없이 얘기를 잘 마무리 짓는 경우도 많지만, 화가 나서 욕설을 퍼붓거나 협박성 발언을 하는 고객도 적지 않다. 그럴 때마다 힘이 빠지고 우울해진다”고 말했다.
전화상담원들이 받는 스트레스와 전화로 갑질하는 진상 고객을 퇴치하기 위해 새롭게 도입된 제도가 있다. 바로 고객이 폭언과 욕설, 성적인 발언 등을 했을 때 경고를 2회 준 뒤에도 이것이 지속되면 상담사가 먼저 전화를 끊어도 좋다는 ‘먼저 전화 끊을 권리’다.
과도한 언어 폭력에 시달리는 전화상담원들을 위해 대형 마트, 홈쇼핑 업체, 신용카드사, 인터넷쇼핑몰 업체는 ‘먼저 전화 끊을 권리’를 매뉴얼에 도입하고 있다. 조선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위메프가 지난 달 31일 '고객의 성희롱·폭언·욕설 전화는 2회 경고 뒤에도 계속되면 상담사가 먼저 전화를 끊어도 좋다'는 매뉴얼을 도입했다. 조선일보는 이마트에서 지난 3월 '폭언과 욕설 고객 상담 거부' 내용을 담은 매뉴얼을 도입했고, 현대카드도 작년부터 폭언을 일삼는 고객의 전화는 상담사가 경고 후 먼저 끊도록 했다고 보도했다.
‘먼저 전화 끊을 권리’ 제도가 도입되고 나서 전화상담원들은 한결 전화를 받기 수월해졌다는 반응이다. 전화상담원 이모(26) 씨는 “고객이 욕설을 퍼붓고 성희롱을 일삼아도 2번의 경고 조치 후 전화를 먼저 끊을 수 있어서 마음의 상처가 덜한 것 같다. 회사에서 이런 제도를 시행해 주니 이전보다는 마음 편하게 근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자동응답시스템인 ARS가 화를 유발한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고객이 전화상담원과 연결되기 전 ARS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데 그 과정에서 시간이 소요되고 짜증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노트북 고장으로 제조회사와 상담 중 상담사와 언쟁을 벌인 적이 있다는 박모(48) 씨는 “구매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노트북이 고장 나서 이미 화가 나 있었다. 그런 과정에서 계속해서 기계를 상대하다 보니 답답했는데 겨우 전화상담원과 연결된 후 앞에서 쌓인 짜증이 표출된 것 같다”고 말했다.
ARS와 관련해서는 얼마 전 GS칼텍스에서 시작한 ‘마음 이음 연결음’ 캠페인 영상이 네티즌들의 눈길을 끌었다. 해당 캠페인은 기업에서 고객이 전화상담원과 연결되기 전 고객의 감정을 너그럽게 만드는 특별 통화 연결음을 들려주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 캠페인은 전화상담원도 누군가의 가족이라는 사실을 고객에게 들려주기 위해 세 가지의 통화 연결음을 제작했다. “착하고 성실한 우리 딸이 상담 드릴 예정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아내가 상담 드릴 예정입니다”, “제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우리 엄마가 상담 드릴 예정입니다”라는 3명의 음성을 들려준 후 전화상담원과 연결하자 실제로 고객들의 태도가 부드러워졌다는 것. GS칼텍스는 캠페인을 적용한 후 5일간 설문조사를 진행했고, 이 과정에서 상담원 스트레스는 54.2% 감소하고, 고객의 친절한 한 마디는 8.3% 증가, 존중받는 느낌은 25% 증가, 고객의 친절에 대한 기대감이 25% 각각 증가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