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랜드마크는 어디일까? 부산타워, 광안대교, 영화의전당, 47년 만에 복원 도개한 영도대교, 그리고 부산의 스카이라인을 확 바꾼 해운대 마린시티 등등이 거론된다. 부산의 상징이 될 만한 건축물들이 부쩍 늘어난 요즘에 뭔가 딱 하나만 끄집어내 답하기엔 참 곤란하다. 게다가 동네 아파트나 오피스텔의 분양 광고에도 랜드마크라는 단어가 빠짐없이 등장하는 요즘이다 보니 랜드마크라는 용어가 주던 신선함이 어느새 빛이 바래진 건 아닌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아주 먼 옛날, 마을이 모여 도시가 됐고, 도시는 수평적으로 확장을 거듭해왔다. 넓게 펼쳐진 도시 공간의 외곽에서 도시의 중심을 찾아갈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는데, 바로 도시의 중심부에 수직적인 건물을 쌓아 올리는 일이었다. 시청사나 높게 치솟은 대성당이 그 역할을 맡기도 했다. 이는 도시 어느 곳에서나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랜드마크(landmark)라는 말의 의미 그대로 도시의 이정표는 도시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어느새 도시는 몰려드는 사람의 양적 규모만큼이나 수평에서 수직으로 팽창하기 시작했고, 하늘을 찌를 듯 높은 건물들이 서로 경쟁하듯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고층 경쟁이 시작됐다. 다른 건물보다 단 한 층이라도 더 높이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 이어졌고, 도시 곳곳에 고층 건물이 떡 하니 홀로 들어서는 어색한 풍경이 펼쳐졌다.
하지만, 비일상적인 고층 건물만이 랜드마크는 아니었다. 시각적인 상징성이 더 중요시되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붙들어 맬 수 있는 다양한 기술과 공법의 건축이 시도됐고, 이는 의외의 장소에 낯선 모습으로 들어서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도 했다. 규모와 높이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열광하고, 자주 찾아들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점점 더 중요해진 것이다.
최근 들어 랜드마크는 건축과 예술의 경계를 넘어 다양한 형태로 분화되고 있는 추세다. 높은 건물에 대해서 사람들은 무심해졌고, 새로운 기술이나 공법이 가져다주는 건축의 자부심 따위는 이미 오래전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새로 들어서는 자칭 타칭 랜드마크들은 일정 시간 대중에게 충분히 소비되다가 서서히 잊혀져 버리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고정된 건축물보다는 사람들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기대감을 갖게 만드는 공간이 진정한 랜드마크라는 의견이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혼자만 앞서가고 남보다 튀어 보이려는 건축물이 아니라, 시민 누구나 편하게 드나들 수 있고, 그 속에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의미 있는 공간이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건축과 예술, 그리고 상업과 공공의 영역이 파괴되는 요즘의 랜드마크는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건물은 최대한 높아야 이목을 끌었지만, 요즘 세대들은 높은 건물에도 무심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고정된 건축물보다는 사람들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기대하게 만드는 공간으로 눈을 돌리게 됐다. 그 공간에 가면 강한 존재감이 주는 아우라를 통해 보는 사람이 행복을 느끼게 한다. 한 도시의 프로필은 랜드마크와 익명의 건물들이 모여 만든 무대에서 사람들의 역동적인 삶으로 그려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