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치마에 응급환자 회피 모습 그려.. "열악한 환경에서 과로 시달리는 직업인 우롱" / 신예진 기자
MBC 드라마 <병원선>이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하며 인기몰이 중이 가운데 현실과 다른 극중 간호사의 모습에 시청자들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30일 첫 방송을 탄 <병원선>은 메디컬 드라마로 배를 타고 의료 활동을 펼치는 의료진들이 섬마을 사람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4회까지 방영한 이 드라마는 초반부터 시청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지만 극 중 간호사를 표현하는 방식에 문제가 제기됐다. 이미 드라마 예고 영상을 공개했을 때부터 간호사들과 간호학과 학생들로부터 현실감이 없다고 항의를 받은 데다 첫 방송 후 시청자들도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을 쏟아냈다. 현재 MBC 시청자 게시판에는 ‘간호사를 존중해 달라’는 글이 쇄도하고 있다.
드라마 <병원선>에 등장하는 간호사들은 이렇다. 극 중 간호사 유아림은 병원선 내에서 무릎 위까지 오는 짧은 치마와 몸에 밀착되는 간호복을 입는다. 예고편에서는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위급한 환자를 마주하면 의사 뒤로 숨고 환자들 개인 정보를 떠벌리기도 한다. 지난 31일 방송에서는 재벌이 예쁜 의사를 보고 싶다고 코드 블루를 띄우라고 독촉하자, 그에 응하는 모습도 그려졌다. 코드 블루란 심폐소생술(CPR)이 필요한 응급환자가 발생했다는 방송이다.
방송이 나가자, 인터넷에는 현직 간호사가 문제의 장면을 조목조목 따지는 글이 올라왔다. 게시글에 따르면, 활동성에 지장을 주는 치마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 전이며, 간호 학생도 학교 내 실습 시 가운 안에 짧은 옷을 입지 않는다는 것. 또 코드 블루 장면에 대해서는 “병원 시스템을 우롱하는 처사”라며 “사람 목숨과 직결되는 코드라 병원 전 직원이 집중하는데 일반 환자가 시켰다고 코드를 띄울 간호사는 세상에 없다”고 설명했다.
현직 간호사 박모(32, 경남 창원시) 씨는 “<병원선>을 시청하고 상처받았다”고 기자에게 토로했다. 박 씨는 “제작진은 본인들이 그려낸 드라마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생각한 적 없는 것 같다”며 “드라마 속의 간호사처럼 놀고 먹기에는 ‘임신순번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현실의 간호사는 과도한 업무와 불합리한 처우에 항상 노출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 씨는 “간호대를 졸업하고 간호사 면허를 취득한 사람이 매년 쏟아지는데도 간호사의 수가 부족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간호사 인력 부족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며 간호사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이 주목받기도 했다. 간호사들은 강도 높은 업무와 3교대 근무, 무례한 환자들의 폭언 등에 시달릴 뿐 아니라 사람 생명이 달린 일이라 조그만 실수도 허용되지 않는 엄격한 분위기에 항상 긴장한다. 하지만 사회적 인식이나 처우는 높지 않다. 이에 간호사 뒤에는 항상 ‘극한 직업’, ‘눈물 나는 직업’, ‘3D 직업’ 등 다양한 꼬리표가 붙기도 한다.
대학 병원에 한 달 가량 입원한 경험이 있는 성시훈(27) 씨는 “드라마 등 미디어를 통해 보이는 사소한 것들이 간호사에 대한 인식을 낮추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성 씨는 “한국의 의학 드라마들은 항상 간호사를 의사 밑에서 일하는 수동적인 인물로 그린다”며 “의학적 자문을 구하지 않고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환자인 내가 봤을 때도 의사와 간호사는 수직 관계가 아니었다”고 비판했다.
이 밖에도 네티즌은 “한국 드라마만 간호사들을 어리버리한 사람으로 연출한다”, “재미로 보더라도 어느 정도 기본적인 정보는 갖춰야지”, “작가가 간호사 업무 고증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내가 가본 병원 중에서 간호사가 치마를 입은 것을 본 적이 없다” 등의 댓글을 남겼다.
한편, MBC는 쏟아지는 시청자들의 항의와 피드백 요구에도 묵묵부답이다. 이에 한 네티즌은 “MBC가 파업하는 중인데 시청자와 소통할 리가 없지”라며 “사장이 자기네 직원들 말도 안 들어 주는데 직원들이 시청자 말을 들어주고 싶겠나”라고 웃지 못할 글을 남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