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예루살렘 수도 선언’은 100년 만의 미국발 ‘밸푸어 선언’...아메리카 퍼스트의 위험한 불장난 멈춰야
편집위원 이처문
승인 2017.12.11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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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위원 이처문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11월 2일 영국 외무장관 아서 밸푸어는 영국 내 유대인 사회의 저명인사 라이어널 월터 로스차일드에게 서한을 보냈다. “영국 정부는 팔레스타인에 유대인들의 민족적 고향을 건설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영국이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 민족국가를 인정한다는 이른바 ‘밸푸어 선언’이다. 영국의 의도는 미국 내 유대인들의 지지를 얻어 미국을 1차대전에 끌어들이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밸푸어 선언은 영국이 앞서 아랍인들에게도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독립국가 독립을 약속한 ‘맥마흔 선언’과 상호 모순된다. 영국의 고등판무관 맥마흔이 1915년 1월부터 1916년 3월까지 메카의 셰리프 마호메트의 자손인 후세인과 10차례에 걸친 서신을 주고 받으며, 전후 아랍인의 독립국가 건설을 지지하겠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부도수표’가 되고 만다. 영국은 1916년 5월 프랑스와 비밀리에 ‘사이코스 피코 협정’을 체결해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영토를 분할 지배하기로 합의한다. 영국이 이라크와 요르단을, 프랑스는 시리아와 레바논을, 러시아는 터키의 동부 지방을 각각 지배하고, 팔레스타인은 공동 관리하기로 한 것. 이후 ‘밸푸어 선언’은 1922년 7월 24일 국제 연맹의 승인을 받은 영국의 팔레스타인 위임 통치안에 포함됐다. 유대인과 아랍인 간의 오랜 불신과 대립의 씨앗은 이렇게 유럽 열강의 손에 의해 뿌려졌다.
밸푸어 선언 후 꼭 100년이 지난 지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공식 선언했다. 하지만 100년 전과는 달리 강대국들의 반응은 냉랭하다. 유엔 주재 유럽연합(EU) 소속 5개국 대사들은 트럼프의 선언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백악관 앞은 물론 세계 곳곳에서 무슬림들의 항의 시위도 잇따르고 있다. 아랍연맹은 트럼프의 선언이 국제법 위반이라며 ‘무효’를 선언했다.
이스라엘은 1967년 아랍국들과의 ‘6일 전쟁’으로 20년 전 요르단이 차지했던 동예루살렘까지 점령한데 이어 급기야 1980년에는 이곳을 ‘이스라엘의 완전하고 통합된 수도’로 법제화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이를 강점(强占)으로 규정한다. 예루살렘의 수도 지위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유엔은 1947년 예루살렘의 특수한 성격을 감안해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국제 특별관리지역으로 삼는다는 내용의 유엔결의 제181호를 내놓았다. 이 결의는 지금도 유효하다.
국제사회도 이스라엘이 1967년 이전 영토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팔레스타인의 입장을 지지하는 편이다. 반면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내줄 수 없다고 버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가 이스라엘을 두둔하고 나섰으니 긴장이 고조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의 선언을 놓고 ‘충격 요법’ ‘길들이기 전략’ 등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가 국제사회에서 오바마 행정부와는 다른 프레임을 가동해 일단 기존 판을 뒤엎어 파열음이 나도록 내버려둔 뒤 자기 방식대로 수습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끌려가지 않고 판을 주도하겠다는 트럼프 특유의 방식이다. 그런대로 설득력 있는 분석인 듯하다.
배경이야 어떻든 북핵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로서는 트럼프의 접근법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유엔의 결의까지 무시한 채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두둔하는 그의 행동은 ‘아메리카 퍼스트’로만 이해하기엔 뭔가 부족하다. 미국의 유대인 보수집단이 그의 절대적 지지세력이고, 그의 사위 또한 유대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렇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조차 반대하는 사안을 이렇듯 전격적으로 선언한 배경에 ‘힘의 논리’ 말고는 제시할 근거가 별로 없다.
트럼프는 중동의 화약고가 터지든 말든 내 갈 길을 간다는 특유의 ‘마이 웨이’ 방식을 과시한 듯하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평화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살얼음 같은 분쟁의 공간에 미국이 개입할 여지를 억지로라도 만들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밸푸어 선언’에서 힘의 논리를 터득한 것일까. 영국이 분쟁의 불씨를 뿌린 그 자리에, 100년 뒤 미국이 기름을 끼얹고 있는 형국이다.
평화보다는 분쟁이 미국이 개입하기에 더 나은 여건일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 또한 트럼프의 몫이다. 하지만 분쟁이 전쟁으로 비화하면 전략은 오판이 되고, 역사는 또 한 번의 비극을 되풀이할 뿐이다.
500년 전 팔레스타인을 점령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여러 종교의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을 자유롭게 오가게 했다. 아직도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예루살렘을 분점하고 있는 것은 종교 간 공존의 흔적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트럼프가 이런 종교 간 균형을 무시한 채 힘의 논리만 내세울 경우 화약고는 언제 터질지 모른다. 강자의 입장에서는 설득이나 협상보다는 힘의 논리를 선호할 수 있겠으나, 약자도 결코 엎드려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강자의 무력 행위는 약자의 테러를 정당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EU 5개국 대사들이 천명했듯이 예루살렘 수도 결정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협상을 통해 이뤄져야 마땅하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소유가 아니라 그곳에서 아픈 역사를 함께 해온 사람들의 공동 유산임이 분명하다. 더구나 예루살렘은 미국의 땅도 아니다. 공존을 파괴하는 미국의 대외전략은 전쟁을 부를 뿐이다. 미국-이슬람관계위원회의 니하드 아와드 대표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의 영토를 하나도 소유하고 있지 않다. 그는 ‘트럼프 타워’를 소유하고 있고 그것을 이스라엘인에게 줄 수 있다.”
밸푸어 선언이나 트럼프의 ‘예루살렘 수도 선언’은 힘이 없으면 당한다는 국제사회의 냉혹한 현실을 거듭 각인시켜 주고 있다. 아직도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 우리로서는 예사롭게 봐 넘길 장면이 아닌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