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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스타’에서 여유의 멋과 효율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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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스타’에서 여유의 멋과 효율을 보았다
  • 손희훈 시빅뉴스 스페인 특파원
  • 승인 2014.09.17 16: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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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얼마 전 우리나라 언론에서 한 이색 뉴스를 본 기억이 있다. 이 기사는 어느 회사가 점심시간 이후 오후 1시부터 6시 사이에 희망하는 직원을 대상으로 최대 1시간까지 낮잠 시간을 허용한다는 것이었다. 이 기사의 제목은 ‘한국판 시에스타(siesta)’였다. 기자가 현재 와 있는 곳은 바로 이 시에스타의 원조인 스페인이다.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작은 도시, ‘코르도바’ 라는 낯선 유럽 땅 조그만 도시에 도착해서 생활한 지도 어느 새 3주가 지났다.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처럼 대도시는 아니기에 처음에는 꽤 불편했지만, 이제 기자는 이 인구 30만 명에 불과한 조용한 소도시가 대도시보다 오히려 스페인 고유문화의 매력을 더 깊이 간직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시에스타다. 시에스타라는 말은 스페인어이며, 원래는 라틴어의 'hora sexta(여섯 번째 시간)’ 에서 기원했다고 한다. 스페인은 유럽 국가 가운데서도 일조량이 가장 많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스페인 사람들은 점심 식사 후 뜨거운 햇살을 핑계로 낮잠을 즐긴다. 한낮에는 무더위 때문에 일의 능률이 오르지 않으므로 낮잠으로 원기를 회복하여 저녁까지 일하자는 게 시에스타의 취지다. 많은 과학적 연구들이 오후 시간의 짧은 낮잠이 건강과 업무 효율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증명했다고 이곳 사람들은 말한다. 시에스타 시간이 되면, 모든 상점은 문을 닫고 거리는 고요해진다. 오직 길고양이들과 소수의 관광객만이 거리를 활보할 뿐이다. 시에스타 시간은 나라, 지역, 업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는데, 기자가 지내고 있는 코르도바의 시에스타는 보통 오후 1시부터 5시 사이다. 이 사이에 대부분의 업소들이 정말 문을 닫는다. 시내가 너댓 시간 동안 한산해진다. 한국에선 그런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지만, 스페인에서는 실제 상황이다.
▲ 시에스타 시간의 한적한 대학교 사무실(사진: 취재기자 손희훈)
시에스타는 근면성실을 큰 덕목으로 삼는 한국인들에게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문화다. 기자는 처음에 이 때문에 꽤나 골머리를 앓았다. 관공서는 물론, 마트, 미용실 등 거리 대부분의 상점들이 시에스타 시간에 문을 닫는다. 간혹 시에스타 시간에 문을 여는 식당이 있는데, 메뉴에 제한이 있어 원하는 음식을 주문할 수 없다. 그야말로 그 시간에는 모든 활동이 마비되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가장 활동적인 ‘오후’ 시간대에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기자는 오전 일을 보다가도 오후에는 ‘그놈의’ 시에스타 때문에 옴짝달싹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이 되기를 기다리기 일쑤였다. 처음에는 그 시간 동안 굉장히 초조했다. 이는 ‘빨리빨리’에 익숙한 한국 사람이 떨쳐버릴 수 없는 막연한 불안감 같았다. 먼 타국까지 와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멍하게 앉아 오후 시간을 보내고 있는 기자 자신의 모습이 초라해 보였다. 고국에 있는 부모 생각, 친구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더니, 어느새 시에스타가 훌쩍 지나가기도 했다. 걱정도 잠시, 기자는 금세 스페인 무드에 동화되고 있었다. 시에스타 시간은 약 너댓 시간이지만, 스페인 사람들은 그 시간 내내 낮잠을 늘어지게 자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스페인 사람들은 약 30분에서 1시간 동안만 낮잠을 자며, 이후에는 집에서 업무를 보거나, 밀린 집안일을 처리한다. 또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기자도 점차 시에스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됐다. 열심히 스페인어 공부에 매진하기도 하고, 식사를 준비하기도 한다. 요즘엔 팔자에도 없던 낮잠을 자기도 하고, TV를 보기도 한다. 스페인 사람들은 삶 속에 여유가 넘친다. 한 번 식사 시간이 2시간은 기본이다. 거리의 사람들은 절대 뛰지 않는다. 그들은 답답할 정도로 천천히 걷는다. 거리는 늘 한적하고, 사람들의 표정은 한결 같이 밝다. “Hola!” 하고 인사를 던지면, 모르는 사람한테도 웃으며 인사를 받아준다. 한 번은 기자가 고속버스를 타고 다른 도시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 고속도로는 말 그대로 차 한 대 다니지 않는 ‘뻥 뚫린’ 도로였다. 평소 한 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는데, 기자가 탄 버스는 무려 세 시간을 넘게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 이유는 버스 '기사님’께서 제한속도를 철저히 준수하다 못해 그보다 훨씬 느린 속도로 달렸기 때문이었다. 기자 일행은 울화통이 터졌지만, 그것이 스페인 문화이기에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 오후 2시임에도 불구하고 굳게 문을 닫은 거리의 상점들(사진: 취재기자 손희훈)
처음에는 스페인의 이런 느린 문화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스페인 사람들이 조금 더 빨리 걷고, 조금 더 일처리를 빨리 했다면 어땠을까? 지금 스페인이 겪고 있는 실업문제나 경제위기와 같은 국가 문제가 아마 닥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실제 스페인 정부는 2005년부터 시에스타에 익숙해져 있는 국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공공 분야의 시에스타 제도를 철폐했으며 점차적으로 시에스타의 전면 폐지를 추진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스페인 사람들 속내는 정부의 의도와는 다른 듯하다. 사람들은 일과 성공보다 즐거움이나 행복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것 같다. 아직 관찰 기간이 긴 것은 아니지만, 기자가 3주간 느낀 점은 스페인 사람들은 사회적 성공을 위해 아등바등 기를 쓰는 사람들은 아닌 듯했다. 한국에서는 각종 학원에 시달리고 있을 꼬마 아이들이 이 곳에서는 축구공 하나를 가지고 공원에서 먼지 나게 우르르 뛰어다니고, 어른들은 거리의 바에서 맥주 한 잔을 시켜 놓고 몇 시간이고 수다를 떤다. 그들은 자신이 어떤 직장에 다니고 어떤 사회적 위치에 있느냐 하는 것을 진지하게 의식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나라 현실이 스페인과 대비되면서 생각났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단 하나라도 더 잘 하기 위해 기를 쓰고 상대를 꺾으려는 강박관념에 빠져 있다. 그 바쁜 오후에 잠시만이라도 편안히 침대에 누워 각자 자신이 무엇을 향해 달리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어떨까? 기자는 스페인에 와서 가끔 꿀맛 같은 시에스타를 즐기고 있다. 영국 전 총리 윈스턴 처칠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 활력의 근원은 낮잠이다. 낮잠을 자지 않는 사람은 뭔가 부자연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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