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정인
일주일에 한 번씩, 재활용품을 분리 배출할 때마다 그 많은 양에 번번이 놀랐다. 우리 아파트뿐 아니라 전국의 수많은 집들에서 쏟아져 나오는 양을 상상해보면서 문득 두려워지기도 했다. 특히 플라스틱과 스티로폼은 그 부피만으로도 위압적이어서 이 많은 것들을 이렇게 마구 내버려도 되나 싶은 죄책감이 들었다. 그럴 때면 재활용품을 내버리고 오는 뒤통수가 뜨뜻해져서 기분이 못내 께름칙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모든 것에 둔감해졌다. 어느 새 일상생활 곳곳에 침투해 있는 플라스틱의 편리함에 너무 깊이 길들여져 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이 많은 것들을 아직도 어딘가에 내버릴 데가 있다는 것을 다행스러워했다. 그런데 이젠 그 문제에 대해 철저하게 반성하고, 삶의 습관을 완전히 바꿔야 할 것 같다. 이미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 늦어버릴 것 같아서.
늦게나마 이런 자각을 하게 된 것은 각 지자체들에서 쓰레기 분리수거를 거부하는 사태가 발생했다는 기사를 보면서다. 그동안 우리가 버린 폐플라스틱을 수입해가던 중국이 수입 금지를 선언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중국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 미국, 유럽에서 플라스틱을 수입하는 세계 최대의 폐플라스틱 수입국이었다. 그런데 2018년 1월부터 더 이상 그것을 수입하지 않겠다고 공표한 것이다. 중국의 태도가 바뀐 것은 중국의 젊은 감독 왕구량(王久良)이 만든 다큐멘터리 <플라스틱 차이나> 때문이라 한다.
나도 그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 중국의 북부 어느 마을이라는 쓰레기 처리장의 풍경은 비참함과 안타까움 그 자체였다. 그곳에서는 폐플라스틱 더미 속에서 아이가 태어나 자라고, 플라스틱을 씻은 구정물에 세수를 하며, 플라스틱을 분쇄하고 재가공하는 과정에서 생긴 연기 속에서 사람들이 호흡하며 살고 있었다. 아이들은 심지어 플라스틱을 씻느라 오염된 물에서 폐사한 물고기를 잡아 튀겨먹기도 했다. 각종 폐플라스틱과 비닐을 압축하여 켜켜이 쌓아놓은 거대한 군락은 섬뜩하기조차 했다. 사람들은 그 속에서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일하지만, 아이들은 기초교육조차 받지 못하고 궁핍한 생활에 허덕였다. 그런 마을이 중국 내에 5000개나 된다니, 다른 나라에서 내버린 폐품을 재활용하여 산업 발전의 근간에 이용한 중국으로선 수치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건 중국의 사정이고 문제는 우리다. 우리는 플라스틱을 너무 많이 소비하는 나라다. 통계에 의하면, 1인당 연간 420장 정도의 비닐봉지를 쓰고, 100kg에 이르는 플라스틱을 소비한다. 2013년까지만 해도 세계 5위였는데 지금은 1, 2위를 다툰다.
세계의 한 해 플라스틱 생산량도 만만찮아 3억 3000만t이나 된다.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생산량을 다 모으면 83억t에 이른다는데, 이는 ‘코끼리 10억 마리의 무게와 비슷’ 하거나 ‘맨해튼을 3.2km 깊이로 묻어버릴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이렇듯 마구 생산하여 쓰고 버린 세계의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해류를 따라 흐르다가 태평양 한가운데 모여 ‘플라스틱 섬’을 만들었다. 그 규모가 우리나라의 7배에 이른다니, 바다 한가운데에 수천km의 폐플라스틱이 뒤엉켜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어쩐지 세기말적인 풍경이 연상된다.
그런데도 세계적으로 재활용되는 폐플라스틱은 20% 정도에 불과하다. 1995년부터 분리수거정책을 도입한 우리나라의 재활용률은 35% 정도라니 그나마 우리가 나은 셈이다. 그러나 나머지 65% 정도의 폐플라스틱과 비닐은 소각장으로 가거나 땅에 그대로 묻힌다. 비닐 등이 썩기까지는 500년 이상이 걸리고, 태울 경우엔 인체에 해로운 다이옥신이 발생하는 이 끔찍한 제품을 단지 편리하다는 이유로 인류 전체가 무지막지하게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땅속에 묻혀 있는 것도 그렇지만 바다에 떠있는 플라스틱은 더욱 문제다. 그것은 온갖 오염물질을 머금은 채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잘게 쪼개져 먹이로 착각한 물고기들의 뱃속으로 들어간다. 이 때문에 매년 바닷새 100만 마리와 해양포유류 10만 마리가 죽어나간다. ‘플라스틱 섬’ 근처를 날아다니다 죽은 알바트로스의 뱃속에서 각종 비닐과 플라스틱이 쏟아져 나오고, 스트로에 콧구멍이 막혀 숨을 제대로 못 쉬는 거북이가 발견되기도 하는 것이 다 이런 사정이다.
그런데 그 마지막 피해자는 결국 인간이다. 플라스틱을 먹고도 용케 살아난 물고기의 최종 포식자가 인간이니까. 우리가 마구 쓰고 버린 플라스틱은 부메랑이 되어 결국 우리의 목숨을 겨누는 것이다.
굳이 그런 물고기를 먹지 않아도 플라스틱에 과다 노출된 삶은 우리가 모르는 새 병들고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미 그 폐해에 대해 충분히 들었는데도 도저히 멈추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플라스틱 사용습관인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얼마 전, 한 방송에서는 플라스틱이 우리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실험한 결과를 보여주었다. 참가자들은 매 끼니나 간식을 먹을 때, 플라스틱 용기에 든 밥을 그대로 레인지에 돌리기도 하고, 뜨거운 음식을 비닐봉지에 담아 먹기도 하는 등 최대한 플라스틱을 많이 이용하는 방식을 취했다. 실험시간은 100시간이었다. 실험을 마쳤을 때,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두통과 소화불량을 호소했다. 그 중 실험에 참가하기 전까지 친환경적인 식생활을 했던 두 사람의 반응이 가장 먼저 나타났다. 그들은 다음날 벌써 신경이 예민해지고, 두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플라스틱의 폐해에 이미 둔감해진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쉬 인지하지 못하고, 개운하지 못한 몸이 단지 과로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처럼 아무런 자각 없이 계속 플라스틱을 쓰다가는 먼 후일 어느 날부터 각종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시달리고, 플라스틱으로 뒤덮인 땅에 집을 지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편리성에 현혹되어 아무 생각 없이 써온 플라스틱이 장차 우리의 환경을 <플라스틱 차이나>에 나오는 마을처럼 만들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인과응보이기에….
저작권자 © CIVICNEWS(시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