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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관과 절망에서 건져 올린 북미회담...‘쉽지는 않겠지만 그날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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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관과 절망에서 건져 올린 북미회담...‘쉽지는 않겠지만 그날은 온다’
  • 편집위원 이처문
  • 승인 2018.05.2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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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위원 이처문
편집위원 이처문
인간이 ‘경제적 동물’이라고 하지만 늘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건 아니다. 이런 사실은 간단한 게임에서도 알 수 있다. 1982년 독일 훔볼트대학교 베르너 귀트 연구팀이 개발한 ‘최후통첩 게임’이 그 중의 하나다. 게임의 규칙은 간단한다. 게임에는 제안자와 반응자, 두 사람이 참가한다. 제안자가 돈을 어떻게 나눌지 선택하면 반응자는 양자택일할 수 있다. 수용하든지 아니면 거부하는 것이다. 다만 제안을 내칠 경우 두 사람 모두 한 푼도 갖지 못한다. 이를 테면, 게임을 주재하는 사람이 제안자에게 10만 원을 건넨다. 제안자는 자신이 8만 원, 상대방에게 2만 원을 제시할 수 있다. 아니면 5 대 5, 또는 9 대 1 등 마음대로 분배할 수 있다. 반응자의 입장에서는 어떤 제안이 오더라도 받아들이는 게 합리적이다. 거부하면 한 푼도 못 받지만, 수락하면 조금이나마 득을 보기 때문이다. 설사 제안자가 9만 원을 갖고 나머지 1만 원만 제시하더라도 인간의 합리성을 가정한다면 반응자는 “오케이”를 외쳐야 옳다.
최후통첩 게임 경우의 수 매트릭스(사진: Creative Commons)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제안을 거부한다. 자신의 몫을 선택하는 과정에 ‘합리성’과 함께 ‘공정성’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제안자 역시 공정성을 감안해 상대방의 몫으로 40~50%를 제안한다. 반응자는 30%선을 수용할 수 있는 마지노선으로 여긴다고 한다. 개인의 이익 추구와 공정성 사이에서 번민하는 인간 본성을 보여준다. 제안자가 상대방이 받아들일 만한 적절한 금액을 제시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을 제시하면 거부당할 게 뻔하고, 이 경우 제안자 역시 한 푼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개인들의 이기적인 행동이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조절된다는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과 같은 맥락이다. 북미 정상회담의 불씨가 되살아나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거래의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회담 취소’라는 충격요법으로 멈칫하던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협상 테이블로 돌아오게 만들었다는 이유에서다. 트럼프의 ‘회담 취소’ 통보는 최후통첩 게임의 선상에서 이뤄진 게 아닌가 싶다.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조치에 맞대응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회담은 일찌감치 무산되고, 기대했던 ‘체제보장과 경제지원’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설사 트럼프의 회담취소 통보가 불공정한 제안이었다 하더라도 회담을 하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을 했을 터이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회담이 무산될 경우 얻을 게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김 위원장에게 보낸 공개서한에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 연락하라”는 거부하기 어려운 ‘미끼’를 달아놓은 거다. 김 위원장이 이를 수용하면서 북미회담은 급물살을 탔다. 트럼프의 최후통첩은 전격적인 2차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간 실무협의와 고위급 회담으로 이어졌다. 정작 고비는 지금부터다. ‘비핵화와 체제보장’이라는 거래가 쉽게 타결될 거라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모두 수용할 만한 ‘합리성과 공정성’이 도출되기를 기대할 뿐이다. 지켜보는 우리로서는 적어도 근거없는 비관론부터 잠재워야 할 것 같다. 어느 야당 인사는 트럼프의 북미회담 취소 발표 후 “문재인 정부가 근거 없는 낙관론과 장밋빛 환상에 취해 있는 동안에도 현실은 냉정하게 움직이고 있었다”며 그 책임을 정부에 돌렸다. 하지만 북미회담 불씨가 살아난 지금 이 비판은 부메랑으로 날아갔다. "상당수 정치권 인사들이 근거 없는 비관론과 잿빛 절망에 빠져 있는 동안에도 현실은 차분하게 움직이고 있었다"라고. 자신의 능력이 평균보다 더 낫다고 착각하는 경향을 ‘워비곤 호수 효과’라고 한다. 1970년대 미국의 작가 개리슨 케일러가 라디오쇼에서 소개한 가상의 마을이 ‘워비곤 호수’다. 이 마을 사람들은 모두 ‘남자는 힘이 세고, 여자는 잘 생겼고, 아이들은 똑똑하다’고 여긴다. 훗날 심리학자 토마스 길로비치는 자신이 평균보다 낫다고 과신하는 이런 현상을 ‘워비곤 효과’라고 불렀다. 지금 한국 정치권에도 ‘워비곤 호수’에 사는 인사들이 많은 듯하다. 너나없이 자신이 현 대통령보다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수백 가지 인지적 착각을 일으킨다(사진: Creative Commons)
안도현 시인의 말대로 <그날>은 결코 쉽게 오지 않을 것이다. 그날은 깨지고 박살나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다음에 오게 마련이다. 비핵화의 시기나 방법을 둘러싼 줄다리기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땀투성이가 될 것이다. 다만 그날을 위해서라도 이 땅에서 몸에 밴 비관과 냉소부터 걷어야 하겠다. 때론 하고 싶은 말을 참고 조용하게 지켜보는 것도 훌륭한 중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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