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올해도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만산을 수놓았던 홍엽이 우수수 떨어졌고, 때이른 폭설 소식도 들려온다. 얼마 후면 사람들은 한 해를 잊으려 부지런히 송년회에 뛰어다니겠지. 하지만 아직은 따스한 햇살이 남아 있다. 겨울로 넘어가기 직전 가을과의 짧은 공존이 아쉽기만 하다.
공존. 참 인간적이고 감성적인 단어다. 어우러진 공동체의 삶은 푸근하기에. 하지만 나라를 보면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고 모든 게 엉망진창이니 이를 어쩌면 좋을까. 지금 대한민국에 정치가 있기나 한가. 여야 가릴 것 없이 눈앞의 이익에 골몰할 뿐, 국민 눈높이에는 한참 못 미친다. 마치 '누가 누가 못하나' 내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논리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맞서는 그 무지막지한 집착이 소름 끼친다.
‘너 죽고 나 살자’ 논리를 일본 철학자 다카하시 데쓰야는 '희생의 시스템론'으로 설명한다. 그건 나의 이익을 위해 상대를 쓰러뜨려야 한다는, 즉 이익은 내가 취하고 희생은 남에게 덮어씌우는 매커니즘이다. 다수결을 내세우는 척하면서 소수의 차별을 정당화하는 시스템은 악의적인 몰인간성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지금 우리는 그 ‘희생의 시스템’을 처절하게 목도하고 있다. 특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젊은이들은 머리에 스팀이 끓어올라 터지기 직전이다.
'삶은 곧 일이다.' 이게 바로 우리 사회의 생존전략이 아니던가. 그건 단순히 원하는 희망적 담론이 아니다.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하는 당위론적 명제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사회에서 탈락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란 정의에서 이탈해 소외되고 볼품없는 존재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취직은 삶이 걸린 절대절명의 과제가 된다.
그런데 ‘고용세습’ 비리 의혹이 걷잡을 수없이 터져 나왔다. 서울교통공사가 지난 3월 무기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한 1285명 중 재직자 자녀나 형제, 배우자 등 6촌 이내 친인척이 108명이란 의혹이 시발점이었다. 이어 기존 직원과 친·인척 관계인 근무자들이 추가로 발견되면서 기존 직원의 친·인척 채용 규모가 더 존재할 가능성이 커졌다. 뿐만 아니다. 가족수당 부당수령 사실 의혹도 제기되는 등 비리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앞으로 있을 국정조사에서 숨겨진 많은 채용 비리들이 드러나겠지만 그렇다고 ‘희생의 시스템’에 의해 일자리를 도둑맞은 청년들의 그 깊은 상실감과 허탈감을 어찌 메울 수 있으랴.
그래서 나온 신조어가 이른바 ‘유빽유직 무빽무직’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신형 버전인 셈. 실력이나 스펙은 뒷전이다. 먼저 빽이 있어야 취직이 가능하다는 이 부조리한 현실이라니. 고려장되었어야 마땅할 ‘음서제’가 아직도 횡행하는 데 젊은이들은 절망한다. ‘취업 공부(한) 내가 바보’란 대자보를 보라. 절규하는 그들을 직시하라. 그들은 결과의 평등이 아닌 단지 기회의 평등을 원할 뿐이다. 그런 최소한의 조건도 충족되지 않는다면, 그래서 법치가 상실된 대한민국은 더 이상 나라가 아니다.
필자가 무려 13년 전 썼던 칼럼 한 대목을 소개한다. "기아차 광주공장의 채용 비리가 노조 간부의 일탈행위를 넘어 '노사 합작'의 조직적인 취업 장사 의혹으로 고구마 줄기 엮이듯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지난 해 취업한 한 생산직 직원이 노조 간부의 친동생이었고 돈을 주고 입사한 어느 직원은 광주시 고위공무원의 직원채용 청탁 사실을 폭로하기도 했다…이 정도면 도덕적 타락의 극치 아닌가…지금 이 땅에는 먹고 살 수단을 구하지 못해 거리를 정처 없이 헤매는 젊은이들이 널려 있다. 이들에게 최소한 직장 문을 두드릴 기회라도 주어야 하지 않나."
그리고 11월 23일자 국제신문 사설 내용을 보자. "…의원이 현대자동차의 한 울산 소재 1차 협력사의 노조원 고용세습 행태를 폭로했다. 이 회사 소식지 등을 인용한 하 의원의 폭로에 따르면, 2011~2013년 입사자 30명과 올해 입사자 10명이 민주노총 소속인 노조가 추천한 노조원의 자녀와 친·인척이었다. 올해 신규 입사 정원은 12명이었고 그중 2명만 노조와 무관한 ‘일반인’이었다니 어이가 없다."
어떤가.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뭔가. 우리 사회의 진화 속도가 이토록 더디다. 이러고도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말할 자격이 있나. 첫 단추도 꿰지 못하는 주제에.
현실이 비록 그럴지라도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한 마디 희망과 위로의 말을 전해야겠다. 죽음과 고난을 상징하는 겨울이 시작되었지만 결코 포기하지 말라고. 마치 낭떠러지에 서 있는 듯한 살벌한 느낌이 온몸을 휘감아 돌더라도 끈기와 인내로 버티라고. 겨울은 과거를 밀어내고 앞날을 오게 하는 존재이기에. 어둠이 더할수록 새벽은 가까이 다가오는 법. 그러니 겨울은 절망의 순간이자, 희망의 시그널이기도 함을 잊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