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계의 우먼파워’ 김혜경에게 마케팅의 길을 묻다 / 차용범
[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김혜경 편①]에서 계속. 이 글은 인터뷰 시점이 5년 전 2013년인 까닭에 일부 내용은 현 시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맑은 천성과 일에의 근성으로 편견 딛고 승승장구
나긋나긋 광고 얘기를 하는 그의 표정은 아이마냥 맑고 밝다. 그 속에서, 날카로운 눈매 속의 견고한 카리스마는 실상 때때로 드러난다. 인터뷰에 빠져들 때, 그의 휴대폰이 요란스레 운다. 컬러링이 예사롭지 않다. 영국 국민가수 아델(Adele Laurie Blue Adkins)의 곡이다. 올 제54회 그래미상에서 6개 부문을 휩쓴 24세의 젊은 여성, 그 가수를 좋아한다. “젊은이들의 트렌드를 빨리 습득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의 맑은 천성과 일에의 근성은 그를 이끈 견고한 고리일 터. 그는 2008년 현대기아차그룹 최초의 여성임원이었다. 3년 뒤엔 여성임원 중 최고위직인 전무에 올랐다. 그가 외국계 광고회사 TBWA에서 지금의 이노션으로 옮긴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이 걱정했다. ‘야생마’ 같은 그가 현대기아차의 보수적 기업문화에 적응할 수 있겠느냐는 것. 여성이 살아남기 힘든 조직이라는 편견도 한몫했다. 그는 걱정과 편견도 잘 극복했다.Q. ‘보수적’이라고 소문난 현대기아차그룹 첫 여성 전무다. 그룹문화에 적응하기 힘들지 않았나?
“조금 걱정하긴 했지만, 뜻밖에 그렇지 않더라. 정몽구 회장님부터 여성의 역할에 대한 관심도 많고, 여성이 사회에 활발히 진출해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고. 이노션 같은 광고회사는 더 그렇다. 외부에선 그룹문화를 ‘보수적’이라고 규정하지만, 난 그런 걸 느낀 것이 한 번도 없다.” 그는 인정한다. 현대․기아차와 대기업에 여성 고위임원이 적은 것은 사실이다, 중도 포기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면서 다짐한다. 여성의 사회활동, 회사의 도움과 지지도 필요하지만 여성 스스로 ‘잘 버텨내야’ 한다는 것을. 회사 일이 여자에게나 남자에게나 힘든 건 마찬가지, 누구나 하루에 몇 번씩 그만두고 싶은 순간이 있다. 다만, ‘나한테 부끄럽지 말자’는 생각을 하면서 버틴다는 것이다.현대차를 ‘사랑받는 브랜드’로… 광고의 몫 많이 남아있다
Q. 기아차가 최악의 부진에 시달릴 때 마케팅을 총괄, 큰 성과를 거뒀다. 지금 맡고 있는 현대차 마케팅은 어떤가?
“현대차 마케팅이 더 어려운 것 같다. 기아차는 당시 2등 브랜드라 여러 새로운 시도의 장벽이 낮았다. 현대차는 ‘전통’ 있는 브랜드라 실험적이고 모험적인 마케팅을 하긴 쉽지 않다. 새 시도를 하면서도 과거 전통과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를 함께 가져갈 수 있는 마케팅 전략이 필요한데 참 쉽지 않지…” 그는 현대차 마케팅의 방향을 ‘잘나가는 브랜드’가 아닌, ‘사랑받는 브랜드’가 되기 위한 것으로 설명한다. 현대차가 좋은 차를 만들고 감성 품질을 높이고 있다면, 이노션은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감성 마케팅을 하며 뒷받침을 하는 역할이다. 핵심은 ‘진정성’, ‘현대차’라는 브랜드를 누구에게나 와 닿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현대차는 지금 공격적 마케팅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 브랜드 슬로건은 "New Thinking New Possibility(새로운 생각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이다. 고객이 기대하는 것 이상의 새로운 경험과 가치를 창조, 고객에게 사랑받는 브랜드로 우뚝 서겠다는 다짐이다. 현대차의 올 상반기 경영실적은 ‘대단한 성장세’다. 총매출 42조 1000억(전년 대비 9.9%+), 영업이익 4조 8800억(21.0%+), 사상 최고다. 품질고급화 및 차별성 있는 마케팅 전략 등을 통해 유럽 재정위기 속에서도 견조한 성장세를 이어갔다는 평가다. 당연히, 광고의 기여도 상당했을 터, 그는 광고도 일정한 역할을 했겠지만, 현대차의 저력, 특히 품질 자체가 대단한 결과로 본다. “현대차의 광고엔 아직 노력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그는 단언한다. 워낙 크고 오랜 브랜드인 만큼, 더 많은 고객의 기대를 더 많이 만족시켜줘야 한다고. 정의선 부회장도 늘 ‘새로워야 한다’는 화두를 주지만, 새로우면서 본질을 놓치지 않는다는 것, 참 쉽지 않다. 자동차산업 자체가 기계만도, 패션만도 아닌, 문화의 총체이고, 구매심리를 읽기도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여성도 실력과 열정 있으면 사회 속 성공한다
그 어려운 광고계에서 파워우먼으로 큰 그, 원래 무슨 일을 해도 참 지기 싫어했다. 아니, 무조건 이겨야 했다. 지는 게 죽기보다 싫은 성깔을 건드린 소싯적 이야기가 있다. 대홍기획 시절, 그보다 일을 못하는 것 같은 남자직원이 먼저 대리를 달았다. ‘일 못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 남자보다 더 씩씩하게 일하고 회사에서 살다시피 한 그, 여자라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했다. 모든 여성직원의 서명을 받아 팀장께 찾아갔다. “김혜경, 대리 안 시켜주면 여직원들 다 그만둘 거예요.” 결과는? 된통 깨졌다. 무지하게 혼쭐났다.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리는 대목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가 여성 최초 대리가 됐다는 거다. 어쩌면 그는 오늘을 사는 직장여성에겐 멘토일 수 있는 최적의 모델이다.Q. 여자이기에 받는 불이익 같은 건?
“불이익이 많지는 않다. 승진도 실력 있고 (자신처럼) 깡 부리는 사람이면 할 수 있다. 무턱대고 날 따라하진 말라.” 그는 생각한다. 여자라서 더 잘 할 수 있는 부분 있고, 여자라서 세상을 바라보는 측면도 다를 수 있다. 남자가 지니지 못한 특성을 이용해서 광고주를 설득할 수도 있고, 더 부드럽게 이해시킬 수 있다. 때에 따라서는 여성성을 잘 활용하면 좋다.Q. 여자로서의 단점 또는 한계는?
“굳이 꼽는다면 술자리에서 남자들이 형, 아우 할 때나, 접대, 영업에서 느끼는 한계다. 단, 이런 성의 장벽까지 넘어서야 하는 불리한 점보다는 여자로서 누리는 이점이 많다. 단언컨대, 여자라서 덜 깨진다는 것. 이건 사실이다. 술을 먹거나 골프를 치며 풀어야 할 문제, 여성은 잘 못하지만, 본질적으로, 일로 풀어가는 방식, 그게 유리할 수도 있다.”Q. ‘여성 광고인’으로, 현업을 지킬 수 있는 원동력은 뭔가?
“외국엔 CEO나 크리에이티브 파트장에 여성이 적지 않다. 앞으로 우리나라도 그럴 것으로 기대한다. 나 또한 기획-제작을 함께 맡고 있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광고본부장은 큰 도전이었다. 남자들도 힘들어하는 직책이니까. 내가 맡고 있는 브랜드를 좀 더 좋은 브랜드로 계속 키워나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겁도 나고….” 그러나, 무엇보다 “이 정도는 안돼, 더 나아져야 해”라는 자신에의 채찍질과 일에의 열정으로 굳건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의 경영이론(?) 같은 얘기, 우선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내가 다할 수 있다’는 생각 대신 그 일을 보완해 줄 좋은 동료와 선후배를 ‘내 사람’으로 만들어 풀어가는 것, 역시 중요하다. 자신감을 갖고 자신의 장점을 현업에서 끌어내는 것, 그가 주는 교훈이다.‘여성인재 적극활용’, 사회인식 확산 필요… 점차 나아진다
Q. 우리나라 여성의 사회진출, 이대로 좋은가? 아쉽다면 어떻게 보완해야 하나? 제도인가, 문화인가?
‘여성=허풍(虛風)’이란 말이 있다. 여성인력의 사회진출 이슈가 있을 때마다 여성판사 임용률이 남성을 앞섰다느니, 외무고시에서 여성 합격자 비율이 남성을 앞섰다느니 하지만, 이런 양적 팽창이 모든 것 해결해 주나? 일과 직장의 양립을 가로막는 요인은 제도인가, 문화인가? 그 역시 문화 부분에 아쉬움을 갖고 있으면서, 앞으로의 기대 역시 크다. “아직 여자가 집안일을 다해야 한다는 의식은 여전하다. 여성은 오롯이 직장에만 신경을 쓸 순 없고, 굉장히 많은 역할을 맡아야 한다. 우리 사회, 아직 여성에 대한 기대수준이 낮은 듯 하나, 신입사원 선발 때 여성발탁 비율은 훨씬 높다. 사회(기업) 발전을 위해 여성인재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인식, 더 넓어져야 한다.” 여성이 더 디테일하다, 더 감성이 풍부하다, 이런 부분에 그는 큰 기대를 건다. 현대차의 회장․부회장 같은 최고경영층도 점차 감성문화를 중시하는 경향이라고 귀띔하기도 하며.Q. 결혼 예찬론자로 소문났다는데.
“결혼 예찬론자는 아니고, ‘태어났으니 다 해 봐야 한다’는 주의다. 호기심을 갖고도 안 해보면 아쉬울 것 아닌가. 이혼 빼곤 다 해 보고 싶다. 배우고 경험하고 성숙하는 과정 아니겠나. 경험의 폭을 넓힌다는 면에서, 가능하면 아기도 낳아보는 것이 좋다고 본다. 그래야 인간적인 깊이감이 생기고, 그것은 광고를 하는데도 중요한 요소다. 간접경험도 있지만 경험 없이 감을 잡는다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부산의 현대인물을 찾아서, 김혜경 편③]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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