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컴컴한 복도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들린다. 자세히 보니, 두 개의 그룹이 쫓고 쫓기고 있다. 한 그룹은 사람들을 잡으려는 좀비들이고, 다른 한 집단은 그 좀비들을 피해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이다. 좀비들이 “우워어어억~” 하는 이상한 소리를 지르며 사람들에게 달려온다. 그 순간 사람들은 달려오는 좀비를 피해 달린다. 사람들은 기둥과 다른 계단 사이를 요리조리 달리며 순간적으로 튀어나오는 좀비들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을 피한다.
이 광경은 좀비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라 8월 22일 오후 6시부터 4시간 동안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벌어진 ‘좀비런’이라는 서바이벌 스포츠 게임의 실제 진행 모습이다. 좀비런은 국내 최초 ORG(offline reality game)게임이다. 이는 각종 장애물과 좀비를 피해 특정한 목적을 수행하는 좀비 컴퓨터 게임을 거대한 운동장에서 실제 참가자들이 특수 분장을 한 좀비들을 피해 미션을 수행하는 서바이벌 스포츠 게임이다.
좀비런에 참가해 처음으로 ORG게임을 접해본 사람들은 컴퓨터 게임이 아니라 실제 게임장에서 실제로 뛰면서 좀비를 피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재밌었다고 말한다. 유미홍(20, 부산 진구 부암동) 씨는 “좀비들 덕분에 강제로 뛰어다니면서 운동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힘들었지만, 운동도 하고, 게임도 하고, 여러 가지로 재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새로운 체험 놀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는 좀비런은 한 대학생의 생각으로 부터 출발했다. 2013년 연세대 축제에서 당시 이 대학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던 원준호 씨가 좀비를 이용한 컴퓨터 게임을 실제 운동장에서 펼쳐지는 서바이벌 게임으로 벌이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당시 축제 때 벌어진 좀비런이 뜨거운 반응을 얻자, 그는 좀비런이라는 ORG 서바이벌 게임을 주 사업 아이템으로 하는 ‘커무브’라는 청년 벤처기업을 세우고 판을 키웠다. 원 씨는 “좀비는 영화나 컴퓨터 게임 등을 통해서 일반인들이 가장 친숙하게 여기는 캐릭터다. 그래서 이를 실제 현실에서 진행하면 공포를 더욱더 조장할 수 있기에 좀비를 가지고 서바이벌 게임을 구성했다”고 말했다.
2013년 연세대 축제 이후 좀비런은 과천 서울랜드, 경남 합천 고스트 파크, 서울대공원, 인천문학경기장을 거쳐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으로 장소를 옮기면서 계속 개최됐다.
원 씨가 기획한 좀비런 게임은 단순히 참가자들과 좀비들이 쫓고 쫓기는 형태로 진행되지 않는다. 매번 좀비런이 개최될 때마다 일종의 스토리가 있다. 부산에서 열린 좀비런의 스토리는 이전에 열렸던 인천문학구장 스토리를 이어간다. 2015년 8월, 대한민국은 갑자기 발생한 좀비재난사태로 황폐화되고, 임시재난대책본부 KEDA는 부산 아시아드 경기장에 본부를 설치하고 좀비와의 최후의 전투를 준비한다. KEDA는 좀비와의 마지막 결전에 함께할 KEDA 특공대원을 뽑기 위해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죽음의 테스트를 개최한다는 스토리가 이번 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좀비런의 스토리다.
좀비런의 게임방식은 간단하다. 참가자들은 참가비를 주최 측에 내야 게임에 참가할 수 있다. 참가비는 좀비런 주최 회사인 커무브의 수입원이 된다. 참가자들에게는 게임 시작 전에 3개의 생명 띠가 지급된다. 허리춤에 찬 3개의 생명 띠를 좀비에게 뽑히면 생명을 잃게 된다. 컴퓨터 게임이 아니라 실제 게임인 만큼 생명 띠가 목숨을 대신하는 것이다. 참가자들은 마지막 관문까지 생명띠를 간직하고, 그곳에 있는 백신을 탈취한 뒤, 안전한 벙커로 탈출하면 승리자가 된다. 이번 좀비런의 스토리에 따르면 좀비를 퇴치하는 지구 특공대원에 뽑히는 영광을 앉게 된다. 게임 룰은 간단하지만, 막상 게임이 시작되면 참가자들이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 참가자들은 곳곳에 숨어서 나타나거나 쉬지 않고 달리는 다양한 좀비들에게 생명띠를 탈취당하지 않아야 하고, 그물과 같은 각종 장애물들을 피해서 쉬지 않고 1시간 동안 달려야하기 때문이다.
좀비런을 즐기기 위해서는 먼저 좀비런 티켓을 예매해야 한다. 보통 좀비런이 시작되기 한 달 전부터 티켓이 팔린다. 티켓은 매진될 때까지 얼리버드 티켓, 1차, 2차, 3차, 4차티켓으로 나눠서 판매되는데, 그때마다 가격이 조금씩 오른다. 가격은 2만 5000원부터 시작해서 3만 5000원까지 올라간다. 참가자는 남녀노소 제한이 없다. 이번에 5회째를 맞은 부산의 좀비런은 참가자 수만 3000명가량이다. 이는 좀비런 인기가 젊은 층에서 폭발적이란 증거다.
참가자들은 7개 팀으로 분류되어 저녁 6시부터 30분 간격으로 따로따로 출발했다. 그들은 출발 전 나눠주는 좀비런 티셔츠와 허리에 3개의 생명벨트를 착용 후 좀비를 피해 살아남기 위해 달렸다. 이들 앞에 높여 있는 좀비런의 관문은 총 3가지로 길이는 3km다. 1차 관문은 특공대원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자격이 있는지 알아보는 곳이다. 그 안에는 다시 3가지 코스로 나뉘어 있는데, 용사의 관문, 스파이더 트랩, 좀비러쉬 등의 이름이 붙어 있다. 2차 관문은 수많은 좀비들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테스트하는 곳이다. 1차 관문처럼 그 안에 다시 3가지 코스가 형성돼있는데, 집결호, 용감한 로맨스, 화이트아웃의 이름이 붙어 있다. 3차 관문은 특공대원이 되기 위한 마지막 관문으로 좀비를 피해 최종적으로 백신을 탈취하는 코스다. 모든 코스를 통과하기까지는 40분에서 1시간가량 걸린다.
좀비런의 하이라이트 코스는 바로 마지막 관문인 백신 탈취 코스다. 많은 수의 좀비가 숨어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와 참가자들을 쫒아오는 코스로 마지막 관문이라고 방심하다가 생명띠를 모두 뜯기는 십상이다. 김지영(20, 부산 진구 가야동) 씨는 백신탈취 순간까지 잘 피해서 왔지만 갑자기 나타난 좀비들을 보고 깜짝 놀라 주저 앉아버렸다. 김 씨는 “정말 무서웠다. 아무것도 없어서 안심하고 백신을 향해 갔더니 갑자기 곳곳에서 좀비들이 덮쳤다. 깜짝 놀라서 몸이 굳어버렸다”고 말했다.
좀비런 참가자들의 생명 띠를 뜯고 다녔던 좀비들은 이 회사가 고용한 서포터즈들이었다. 이들은 행사가 끝난 뒤에도 분장한 채 좀비런이 끝난 참가자들 곁에 다가가 놀래키거나 함께 사진을 찍었다. 좀비였던 문주환(25, 부산 진구 개금동) 씨는 “이 날 사람들에게 사진을 가장 많이 찍힌 날이다. 뿌듯하기도 하고 참가자들에게도 물론, 나 자신에게도 재밌는 추억을 많이 남겼다. 내년에도 부산에서 열린다는데 다시 한 번 참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음 좀비런 행사는 10월 31일 할로윈데이 때 서울랜드에서 열릴 예정이다. 서울랜드에서는 부산에서 특공대원의 자격을 얻은 생존자들이 다시 서울로 올라가 그 곳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관한 스토리으로 진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