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칼럼]미(美)~여(女)~문(文)/Amenity, Feminism and Lifeway ⑳
칼럼니스트 박기철
승인 2019.09.30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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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뇽 바로 밑에 아를(Arles)이라는 지역이 있다. 분명히 내가 한 번은 들어 본 적이 있는 마을일 것이다. 왜냐하면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의 삶을 이야기할 때 아를이라는 곳을 언급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고흐는 파리에서 아를로 이주하면서 비로소 자신의 그림을 그렸다. 우리가 고흐의 그림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림들은 대개 아를에서 그리거나 아를에서 지닌 강렬한 인상을 가지고 그린 작품들이다.
그런데 아비뇽 밑에 있는 아를이 고흐와 연관된 그 아를인지 몰랐다. 고흐의 흔적이 있는 마을이기에 꼭 가서 보고 싶었다. 기차로 20분 정도밖에 안 걸리는 아주 가까운 곳이었다.
기차역에서 내려 10분 정도 걸어가니 정말로 고흐가 그림을 그렸다는 바로 그곳이 나왔다. 통상 고흐 카페라고 하는데 정식 카페 이름은 고흐 그림의 이름처럼 밤의 카페(Le Cafe de la Nuit)라고 되어 있었다.
고흐는 1888년에 ‘밤의 카페 테라스’라는 그림을 그렸다. 그림에 문외한인 내게도 낯익은 아주 유명한 그림이다. 그 그림을 보면서 그곳은 아주 멋있는 곳이라고 상상하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와서 보니 그냥 그저 그런 수많은 길거리 카페들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사진은 실제보다 더 리얼하고 생생하면서 멋지고 아름답다는 것이 실감났다. 물론 고흐가 그 그림을 그리던 당시는 지금보다 더 멋진 곳이었을지도 모르며 특히 밤의 모습은 더 멋있었을지도 모른다. 100여년이 흐른 지금 그림에서의 멋진 모습이 세월에 사그라진 탓일까? 아니면 낮이기에 그림에서의 멋진 모습이 햇빛에 바랜 탓일까?
고흐는 이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이 그리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서 주체할 수 없는 마음으로 미친 듯이 그렸을 것이다. 이 그림을 그린 후 그린 ‘별이 빛나는 밤에’는 그러한 작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그는 그리는 대상을 객관적으로 그리지 않고 자신이 받은 인상을 주관적으로 나타냈다. 인상주의 회화는 원근법, 서사성, 고유색을 파괴했다. 고흐는 밤의 카페 테라스에 앉아 자신이 받은 주관적 인상에 따라 카페 테라스의 모습을 아름답게 파괴했다.
그러나 실제로 현실 속 세상은 고흐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리 아름답지는 못했을 것이다. 지금 내가 찍은 사진 속 모습이 그리 아름답지 못한 것처럼. 그래서 돈 맥글린이 부른 ‘빈센트(Vincent)’란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있나 보다.
♪This world were never meant for one as beautiful as you!♬
그 가사처럼 이 세상은 고흐 당신처럼 아름다운 사람이 살기엔 맞지 않는 곳일까? 과연 그가 생각하는 것만큼 세상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을까? 그리 생각하면 기분이 안 좋다. 고흐가 꿈꾸었던 아름다운 세상이 이루어지려면 여성스러운 삶의 문화로 우리 인류문명의 대전환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