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군 생활을 21개월 동안 하면서 군대라는 곳이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21세 청년들이 모여 하는 일이 부대 잡초 제거, 근처 도로 정비 등과 같은 단순 노동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물론 부대별 직책별 차이는 있겠지만, 사격이나 주특기 훈련이 주를 이루는 부대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군이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군대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체질은 그대로일 것이다. 시대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만큼, 우리 군도 모병제와 같은 획기적인 체질 개선을 통해 미래를 대비해야 할 때다.
군대 제대 후 몇 년이 지난 지금, 갑자기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 모병제에 대한 불이 지펴졌기 때문이다. 먼저 모병제에 대한 나의 의견은 부분적 찬성이다. 정예 군 육성과 징병제 부작용 해결과 같은 모병제 자체의 순수한 의도에는 찬성한다. 다만, 모병제를 내세워 정치적 욕심을 채운다거나 사회적 합의 없이 독단적으로 시행하는 모병제는 반대한다. 그러므로 총선을 앞둔 지금 모병제 결정을 논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총선 후 논의될 모병제는 찬성과 반대진영의 첨예한 의견대립이 예상된다. 그럼에도 나는 그 첨예한 대립 끝에는 반드시 모병제가 시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휴전 상태로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징병제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건강한 젊은 청년들을 징병하는 것만이 전쟁을 잘 대비하는 걸까. 단적인 예지만 내가 경험한 군대는 전쟁을 대비한다고 보기 어려웠다. 상부에 보여주기 식 훈련부터 군대 내 부조리한 체계와 비합리적인 일 처리 등 전쟁을 대비한다는 명분은 이미 부대 내에서도 희미해진 듯했다.
이러한 군대의 부조리와 비합리적인 체계를 겪고서 제대한 청년들은 군대에 대한 자부심보다는 부정적인 감정이 더 크다. 결국 이런 부정적 감정은 군대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로 이어지며 군대에 가지 않은 사람들까지 안 좋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나는 이러한 악순환의 근본적 원인이 징병제라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원해서 간 곳이 아니므로 장병들은 능동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이러한 장병들을 통제하기 위해 군은 강압적이고 비효율적인 시스템을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군대를 선진화하고 부대 내 자율을 늘린다고 하더라도 징집되어 간다면 근본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징집된 장병들은 이미 군대에 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불만이 쌓여 있으므로 지휘관과 장병들의 엇박자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결국 징병제는 부대 내 비효율적인 시스템을 유발하며 장병들의 능동적 참여도 억제하는 제도다. 단계적 모병제는 이러한 징병제의 역효과를 완화하며 첨단 기술과 정보가 군사력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최근 추세에 맞는 제도다.
물론 모병제가 시행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그러므로 단계적으로 모병제를 시행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 모병제의 첫 단계는 사회적 합의다.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모병제 찬성 의견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2012년에는 15.5%에 불과했는데, 2016년에는 27%, 최근 조사에서는 33.3%로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런 추세에 힘입어 모병제에 대한 찬성 의견을 과반수 이상 끌어내야만 구체적인 논의도 가능하다.
모병제라는 것이 결국 국민 중 누군가가 군대에 지원해서 가는 것인데 모병제 자체를 반대하는 의견이 크다면 애초에 시행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 모병제의 필요성을 국민들에게 강조해야 한다. 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병제는 우리 사회의 주요 논제가 아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물론 총선을 앞두고 의도성이 다분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모병제라는 불씨는 계속 살려가야 한다. 총선이 끝난 뒤, 전문가와 시민들이 중심이 되어 적극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고 모병제가 도입된 이후에는 어떻게 모집할 것인가의 문제가 생긴다. 이 문제는 우선 군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바꾸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실 징병제가 사라진다면 군대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하는 사람들도 자연스레 줄어들 것이다. 이와 함께 우리 군은 군대라는 곳을 명예롭고 자랑스러운 곳으로 생각하는 내부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이는 군인에 대한 적절한 임금과 복지혜택을 제공함으로써 어느 정도 인식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휴전 중인 나라다. 그래서 모병제에 관한 논의를 시작하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하지만 징병제만이 꼭 옳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무조건 모병제를 반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 현재까지 시행된 징병제의 여러 부작용을 똑바로 직시하고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낡은 징병제를 조금씩 손보기보다는 10년, 20년 뒤를 생각한 근본적인 해결책인 모병제 도입이 시급해 보인다.
*편집자주: 위 글은 독자투고입니다. 글의 내용 일부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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